목성균 수필가 생가 방문
▣ 방문일 : 2014년 8월 4일
▣ 생가지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유상리 윗버들미
▣ 함께 간 사람 : 친구 연선생
▣ 만난 사람 : 한윤상(목선생님 생가에 살고 있는 분 70대 중반) 이용언(75세 목선생님 생전 친구)
목성균 선생 수필전집 『누비처네』를 읽으면서 연풍면 유상리를 직접 가서 보고 싶었는데 오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유상리를 가고 싶다니까 친구가 생일인데 점심을 사줄테니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출발했다. 그런데 생신을 맞은 분은 어머님이셨다. 가족들이 다 모여 있는데 빈손이다시피 들어섰으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어머님은 친가가 반기문유엔사무총장 집안이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반총장 생가 바로 아래 유명한 장수촌에 가서 닭죽을 먹고 생가를 방문한 다음 어머님을 모셔다 드리고 연풍으로 출발했다. 간간이 비가 쏟아져서 운전하기 나쁠 텐데 친구는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니 좋았다. 청주서 연풍까지 이어지는 국도가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서 내가 연풍에 근무하던 몇 해전과는 아주 다르다. 적석리 나들목에서 적석리 입석리를 거쳐 유하리에서 윗버들미(유상리) 쪽으로 들어갔다. 유하리 오수초등학교 있는 곳에서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는 골짜기가 매우 좁은데, 골짜기로 계속 들어가 유상리가 가까워질수록 넓어져 마치 별천지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마을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2차선이었다. 바로 몇해 전만해도 비포장길이었는데 목민관이 두메까지 살피는 배려를 눈에 보는 듯했다. 마을 길도 정비가 잘 되고 주변 논밭이 아주 깨끗하다. 특이한 것은 비가 내리는데도 적막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밭에 일을 하고 있는 사람, 그냥 우산을 쓰고 마을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생가를 묻기 좋았다. 비에 젖은 마을이 낭만적이고 생기에 넘쳐서 옛날내 고향에 간 것처럼 친근하게 여겨졌다.
우선 요골 마을로 들어가다가 참깨를 베고 있는 농부(이용언 75)를 만났다. 연세가 지긋해 보여서 목성균 선생을 아냐고 물어보니 2년 선배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고 같이 고기잡고, 같이 담배를 배우고, 같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말썽까지 같이 부렸다고 했다. 그분도 아주 잘 생긴 상호인데다가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가릴 것은 가리고 비칠 것은 비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목선생을 회상하는 듯했다. 또 윗버들미와 요골에 대한 애착이 목선생 못지 않았다. 이야기도 목선생 수필을 다 읽은 듯 청산유수이다.
그분에게서 목선생님 수필에 나오는 지명이나 마을 분들에 대해 상세하게 들었다. 나는 취재 수첩을 거내서 적어간 지명들에 대해 하나하나 물었다. 이런 분이 계실 줄 알았으면 인물들의 이름도 적어가지고 올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거야 막걸리라도 한 병 사 가지고 다시 한번 오면 된다.
이용언씨에게 들은 지명과 목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
윗버들미 : 유상리이고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요골이다. --'요골 놈의 입에 새우젖 사려'하는 작품의 구절이 생각나서 물었더니 그 분도 웃으면 그 말을 기억하였다.
지름티고개: 수안보로 통하는 큰 고개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지만 길은 남아 있다고 한다. 차가 바로 고개 아래가지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요골에서 아주 멀리 보였다. 하얀 비구름이 감돌고 있어 사진이 잘 안나올 것 같았다.
갈매실 냇가 : 갈매실은 유하리로 내려가는 곳인데 현재는 그 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고가도로가 난 곳이고 그 아래 냇가를 말한다.
은고개 :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터널 위가 은고개인데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며 연풍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지름길이었다.
쇠재 : 장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요골 바로 왼쪽에 있다. 포대봉쪽이다.
포대봉 : 요골에서 유하리를 바라보면서 오른쪽 산봉우리이다.
유지봉 : 요골에서 유하리를 바라보면서 왼쪽 산봉우리이다. 지름티고개가 윗버들미의 진산이라면 이 두 봉우리가 요골에서 보면 좌청룡 우백호처럼 윗버들미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목성균 선생의 일가에 대하여 : 부친은 면장 조합장 등을 거친 유지이고 선비였으며 대단한 인품을 지닌 분이셨다. 목성균 선생은 책을 읽기 좋아하고 점잖았으며 농사일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효심이 지극하고 젊은이들의 모범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나는 사람에게 목선생님 생가를 물으니 바로 가르쳐 준다. 생가는 동향인데 그렇게 크지 않으나 아주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옛집의 모습이 아니고 최근에 새로 지은 반양옥이다. 유리문을 달아 방풍을 하였으며 출입문도 오늘날 아파트 현관문에나 쓰일 것 같은 철문으로 달았다. 중형 승용차 한대가 주차 되어 있고 별채도 사람이 거처하는지 깨끗하다. 마당에는 일부 잔디가 깔려 있다. 마당 한켠에 고추를 심어 풋고추가 달렸다. 앞집과 경계를 이루는 블럭 담에는 하얀 조롱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이렇게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들과 산이 그의 문학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하니 70대 중반되는 분이 나왔다. 한윤상이라고 했다. 목성균 선생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 초가삼간 옛집이 있었는데 목선생이 중풍에 걸린 부친의 거동을 쉽게 하기 위해서 옛집을 헐고 새로 지었다고 한다. 새로 지은 집은 목선생이 부친 병환이 위중해지고 모친이 연로해지자 청주로 모셔가고 집이 비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에 매도한다는 말이 있어 자신이 매입하였고 일부 손질을 해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집은 더 손댈 곳은 없지만 군수께서 안내판이라도 하나 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산이 낳은 문인의 집이 아닌가
비는 계속 내리는데 차를 돌려 골짜기를 나왔다. 길가의 과수원마다 그 유명한 연풍사과가 살을 찌우고 있었다. 빗속에서 하루종일 운전하며 같이 다닌 친구에게 고마웠다. 속이 후련하다. 다시 한번 가서 이제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목성균 수필가 생가 - 부친을 위해 옛집을 헐고 새로지었다고 한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한윤상씨와 친구 연선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당에 조롱박과 잔디가 깔려 있는 마당
생가 바로 앞길에서 본 윗버들미 요골 마을의 모습
생가로 들어가는 길
목성균 선생의 2년 후배라는 이용언씨(75) 참깨를 베다 말고 앉아서 그의 생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요골에서 바라본 쇠재 방향(장연으로 넘어가는 고개)
요골에서 바라본 지름티고개(수안보로 넘어가는 고개)
포대봉-쇠재로 가는 골짜기를 이룬다
유지봉-마을 동편에 있다. 목선생 생가에서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
요골에서 유하리 쪽으로 멀리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고가도로가 보인다-왼쪽 골짜기로 가면 터널이고 터널 위가 연풍으로 넘어가는 은고개이다. 고가 도로 아래 갈매실이 있고 갈매실 냇가가 바로 거기다.
윗버들미 한창 살을 찌우고 있는 사과밭-이것이 바로 향 깊은 연풍 사과이다
(201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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