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책 만드는 시민 문학하는 대중

느림보 이방주 2013. 12. 5. 22:01

책 만드는 도시 문학하는 대중


 

내가 처음으로 책을 만들어 본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이다. 국어 선생님이 개인 문집 만들기를 과제로 낸 것이었는데, 그 경험은 매우 소중한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내용을 실어야 하나? 문집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크기는 어떻게 할까? 표지는 어떻게 할까? 어느 하나 명쾌하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마감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도움을 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 더욱 몸이 달았다.

 

꿈이 절실하면 구원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국어 선생님이 부탁했는지 미술 시간에 문집 표지 만들기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제목조차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미술선생님이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얼결에 ‘구슬’이라고 말해 버렸다. 선생님은 문집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면서 붓을 들어 멋지게 구슬을 그려 놓았다. ‘구슬’이라는 제목도 멋지게 썼다.

 

걱정하던 표지 도안이 완성되니 문집이 다 만들어지기나 한 것처럼 홀가분했다. 용기를 내어 바로 내용을 구상했다. 우선 차례를 적어 보았다. 집안의 내력과 가계도, 가족 구성과 가족 소개, 집의 건물 구성과 쓰임새, 내가 쓴 몇 편의 산문과 시, 아버지의 한시, 나의 일기 등을 내용으로 차례를 정했다. 차례에 맞게 한권의 책이 될 만큼 원고를 모아 깨끗한 종이에 펜으로 또박또박 썼다. 마지막 정리는 국어수업 시간에 했는데 선생님이 차례를 보시더니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었다. ‘구슬’이라고 문집 이름을 붙인 계기를 표지 이면에 넣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도 해주었다. 표지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면에 그림을 그려준 미술 선생님을 소개했다. 차례대로 엮으니 바로 책이 되었다.

 

어렵게만 생각되었던 문집이 완성되었다. 펜으로 책 한권을 다 쓰는 게 힘들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개인문집 전시회에서도 ‘구슬’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생님은 ‘구슬’의 말미에  ‘문집은 오늘의 기록이다. 그리고 개인의 객관화이다. 글은 개인이 대중에게 가는 길이다.’라고 평어를 써 주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인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구슬’을 만들었던 경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교사가 된 후에 아이들이 개인문집을 만들거나, 문학회의 동인지 편집을 지도할 때 큰 도움을 주었다. 교지 편집을 지도할 때에도 그때의 경험을 살렸다. 교지도 학교 문화의 기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 스스로 집단 사고를 통하여 기획하고, 원고를 청탁하고, 원고를 정리하고, 책을 디자인하는 일을 맡기고 수시로 조언을 하면서 책에 목적을 두지 않고, 과정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학생들은 힘들어 했지만 교지가 출간되자 두 배로 기쁨을 느끼는 눈치였다.

 

문단에 나온 후에 몇 권의 작품집을 낼 때도 ‘구슬’의 기억과 그동안의 경험을 살렸다. 문학회의 주간이나 회장으로 동인지 편집을 주관할 때도 ‘개인의 객관화, 대중에게 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잊지 않았다. 문학은 글을 통해서 개인의 사상이 객관화되어 대중에게 다가가는 길이고 소통의 통로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다.

 

지난 12월 4일,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청주․청원 1인1책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1인1책 만들기 행사는 전에도 들었지만 그냥 넘겨 버렸는데 이번에는 꼭 한 번 들러 보고 싶었다. 150여권의 책들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저자는 초등학생으로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저자들은 기성 작가의 지도를 받아 자신이 쓴 시나 수필, 가족들의 글을 엮어 책을 만들었다.

 

전시된 책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다양한 저자와 작품의 높은 수준에 놀랐다. 문인이든 문인이 아니든 각자의 생각은 다 고귀하다.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조금만 도와주면 누구나 가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문인의 생각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듯이 문인이 만든 책만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된 책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도 꼭 한 번 들러보라고 권했다.

 

글은 개인이 객관화되어 대중에게 나아가는 길이다. 문학은 개인의 사상이 대중에게 전해지는 통로이다. 책은 개인의 역사를 보관하는 그릇이고 그것이 모이면 지역 문화의 기록이며 민족문화의 보물 창고가 된다. 1인 1책을 낸 150여명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 있는 사상이 시민에게 전달되도록 기회를 마련한 청주시의 사업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직지를 인쇄한 역사만큼 위대한 문화 역사의 재창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청주 문화의 품격을 제고한 것이다.

 

시민에게 멀리 느껴지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 문학도 대중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혼자 먹는 밥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지만 둘이 나누면 고귀한 문화가 된다. 혼자 쓰는 글은 넋두리가 되기 쉽지만 독자에게 읽히고 독자가 의견을 되돌려 준다면 곧 소통의 문화가 된다. 소통되지 않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청주는 책 만드는 문화의 도시, 문학하는 대중이 살아가는 도시이다. 직지심경을 인쇄한 문화적 사고가 어린 학생들에게 개인 문집 만들기를 가르치게 했고, 그것은 다시 1인1책을 만들기 사업의 주춧돌이 되어 끊이지 않고 청주에 이어지는 문화의 핏줄이다. 세계 인쇄문화의 발상지라는 높은 문화 역사는 오늘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시민 각자에게 영양이 되고 있다. 나는 청주시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시민의 손을 잡아 이끌어 준 모든 분들에게 뼈저리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201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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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3-12-15 오후 5: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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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 (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
내가 처음으로 책을 만들어 본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이다. 국어 선생님이 개인 문집 만들기를 과제로 낸 것이었는데, 그 경험은 매우 소중한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내용을 실어야 하나? 문집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크기는 어떻게 할까? 표지는 어떻게 할까? 어느 하나 명쾌하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마감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도움을 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 더욱 몸이 달았다.

꿈이 절실하면 구원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국어 선생님이 부탁했는지 미술 시간에 문집 표지 만들기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제목조차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미술선생님이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얼결에 '구슬'이라고 말해 버렸다. 선생님은 문집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면서 붓을 들어 멋지게 구슬을 그려 놓았다. '구슬'이라는 제목도 멋지게 썼다.

걱정하던 표지 도안이 완성되니 문집이 다 만들어지기나 한 것처럼 홀가분했다. 용기를 내어 바로 내용을 구상했다. 우선 차례를 적어 보았다. 집안의 내력과 가계도, 가족 구성과 가족 소개, 집의 건물 구성과 쓰임새, 내가 쓴 몇 편의 산문과 시, 아버지의 한시, 나의 일기 등을 내용으로 차례를 정했다. 차례에 맞게 한권의 책이 될 만큼 원고를 모아 깨끗한 종이에 펜으로 또박또박 썼다. 마지막 정리는 국어수업 시간에 했는데 선생님이 차례를 보시더니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었다. '구슬'이라고 문집 이름을 붙인 계기를 표지 이면에 넣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도 해주었다. 표지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면에 그림을 그려준 미술 선생님을 소개했다. 차례대로 엮으니 바로 책이 되었다.

어렵게만 생각되었던 문집이 완성되었다. 펜으로 책 한권을 다 쓰는 게 힘들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개인문집 전시회에서도 '구슬'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생님은 '구슬'의 말미에 '문집은 오늘의 기록이다. 그리고 개인의 객관화이다. 글은 개인이 대중에게 가는 길이다.'라고 평어를 써 주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인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구슬'을 만들었던 경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교사가 된 후에 아이들이 개인문집을 만들거나, 문학회의 동인지 편집을 지도할 때 큰 도움을 주었다. 교지 편집을 지도할 때에도 그때의 경험을 살렸다. 교지도 학교 문화의 기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 스스로 집단 사고를 통하여 기획하고, 원고를 청탁하고, 원고를 정리하고, 책을 디자인하는 일을 맡기고 수시로 조언을 하면서 책에 목적을 두지 않고, 과정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학생들은 힘들어 했지만 교지가 출간되자 두 배로 기쁨을 느끼는 눈치였다.

문단에 나온 후에 몇 권의 작품집을 낼 때도 '구슬'의 기억과 그동안의 경험을 살렸다. 문학회의 주간이나 회장으로 동인지 편집을 주관할 때도 '개인의 객관화, 대중에게 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잊지 않았다. 문학은 글을 통해서 개인의 사상이 객관화되어 대중에게 다가가는 길이고 소통의 통로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다.

 
ⓒ 이방주
지난 12월 4일,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청주·청원 1인1책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1인1책 만들기 행사는 전에도 들었지만 그냥 넘겨 버렸는데 이번에는 꼭 한 번 들러 보고 싶었다. 150여권의 책들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저자는 초등학생으로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저자들은 기성 작가의 지도를 받아 자신이 쓴 시나 수필, 가족들의 글을 엮어 책을 만들었다.

전시된 책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다양한 저자와 작품의 높은 수준에 놀랐다. 문인이든 문인이 아니든 각자의 생각은 다 고귀하다.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조금만 도와주면 누구나 가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문인의 생각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듯이 문인이 만든 책만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된 책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도 꼭 한 번 들러보라고 권했다.

글은 개인이 객관화되어 대중에게 나아가는 길이다. 문학은 개인의 사상이 대중에게 전해지는 통로이다. 책은 개인의 역사를 보관하는 그릇이고 그것이 모이면 지역 문화의 기록이며 민족문화의 보물 창고가 된다. 1인 1책을 낸 150여명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 있는 사상이 시민에게 전달되도록 기회를 마련한 청주시의 사업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직지를 인쇄한 역사만큼 위대한 문화 역사의 재창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청주 문화의 품격을 제고한 것이다.

시민에게 멀리 느껴지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 문학도 대중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혼자 먹는 밥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지만 둘이 나누면 고귀한 문화가 된다. 혼자 쓰는 글은 넋두리가 되기 쉽지만 독자에게 읽히고 독자가 의견을 되돌려 준다면 곧 소통의 문화가 된다. 소통되지 않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청주는 책 만드는 문화의 도시, 문학하는 대중이 살아가는 도시이다. 직지심경을 인쇄한 문화적 사고가 어린 학생들에게 개인 문집 만들기를 가르치게 했고, 그것은 다시 1인1책을 만들기 사업의 주춧돌이 되어 끊이지 않고 청주에 이어지는 문화의 핏줄이다. 세계 인쇄문화의 발상지라는 높은 문화 역사는 오늘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시민 각자에게 영양이 되고 있다. 나는 청주시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시민의 손을 잡아 이끌어 준 모든 분들에게 뼈저리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