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특집
까치설날에는
내일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까치설날이다. 설날이 되면 임진생인 나는 생애 두 번째 계사년을 맞으니 두 살배기가 되는 셈이다. 이번 까치설날에는 두 살배기 아기 같은 정갈한 마음으로 만두를 빚어야겠다. 딸, 며느리, 아들과 둘러 앉아 지난해의 과오와 새해의 소망을 함께 싸서 하얗고 정갈하게 빚어야겠다. 대문에 붙여 악귀를 쫓아낸다는 세화도 그만두고, 사(獅)를 기다려 소망을 빈다는 윤목도 그만두고, 요즘 같은 세태에 묵은 세배도 어려운 일이다. 세찬(歲饌)이라니 담백하게 만두나 빚으련다.
아내는 간을 맞추어 화합처럼 만두소를 버무리고, 나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황희 정승의 청렴처럼 정갈한 만두 반대기를 만들련다. 며느리랑 딸내미는 고운 손으로 소망을 싸서 복을 빚어라. 미더운 아들아, 자네는 들락날락 가족들 뒷자리나 좀 봐 주게. 손을 멈추고 잠시 잠깐 눈을 맞추며 사랑을 확인하고, 이만큼이라도 까치설날을 맞을 수 있는 현재에 감사 드리자.
아내여, 만두소는 풍성해야 하니 신선한 채소를 장만하고, 꿩고기가 아니어도 고기는 잘게 다져야 한다네. 고기를 너무 많이 넣으려는 욕심일랑 내지 마소. 고기는 탐욕의 근원이니 마음까지 기름지고 오만해진다네. 담백한 맛이라야 담백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김치를 적당하게 넣어 탐욕을 중화시키게. 두부를 으깨고 당면을 넣으면 품격 높게 담백해질 수 있다네. 사돈댁에서 보내주신 지고추를 다져 넣으면 매콤한 향이 조화롭겠지. 사랑은 종종 매콤한 향도 있어야 한다네. 정갈한 재료를 잘 섞어야 음과 양,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당신이 삼십여 년 사랑으로 가꾸어 화목의 꽃밭을 일구어 왔듯이 말이야. 다만 명절을 맞아 음지에서 가난과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잃지 말자.
나는 온 세상을 다 감싸고도 남을 만두피를 만들어야 한다. 반대기는 속이 거짓 없이 들여다보일 만큼 얇아야 하겠지. 더 얇은 곳도 더 두꺼운 곳도 없이 길쭉하지도 네모나지도 않고 동글동글하게 밀어야지. 세상은 모두 공평한 것,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여자나 남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양지나 음지나, 하얀 사람이나 검은 사람이나 모두가 소중하다네. 누구는 두텁게 싸주고 누구는 서늘하게 싸줄 수는 없으니 똑 같은 사랑을 실어 반대기를 밀어야 한다.
우리 막내 예쁜 딸내미야 너는 무슨 소망을 담아 만두에 싸려느냐? 너는 그냥 지금처럼 부지런하고 고운 마음이나 간직하려무나. 보고 또 보아도 귀한 우리 며느리 아가야, 듬직한 아들아, 너희는 어떤 복을 빌어 싸려느냐? 사랑은 믿음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니,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꾸밈없는 마음으로 대하며, 곧 빛을 볼 새 생명이 한 송이 모란꽃으로 곱게 피어나기를 빌어라.
사랑하는 내 자식들아, 이 나라 청춘들아, 너희가 오늘을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나는 다 안다. 끊임없는 구속과 입시 지옥, 취업의 굴레 속에서 개성을 잃고 낭만을 상실해버린 아픈 청춘을 왜 모르겠느냐. 어렵게 사회의 문을 들어서서도 새벽부터 한밤까지 휴식 없는 초과근무에 지친 너희의 아픔은 바로 내 아픔이다. 그래도 비정규직 청년, 청년 실업자들의 아픔을 돌아보아라. 너희의 고달픈 현실이 오히려 부러운 친구들이 있지 않느냐.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프지 않는 청춘을 만들어 주어야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니까 그것은 내가 대신 참회하겠다.
나는 다시 한 번 빌어본다. 청년들에게 노력한 만큼 꿈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를 만들어 주소서.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나서 여유와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소서. 권력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도 깨우쳐 주소서. 날이 밝으면 함께 일터로 나가고, 어두워지면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 주소서. 우리 젊은이들이 한발 내디디면 꿈을 이루는 길이 되고, 말 한마디마다 삶이 열리는 세상을 만들어 주소서.
만두는 함께 만들고 함께 먹어야 함박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우리네 삶은 동반자가 있어야 즐겁고 화목하고 운이 길하다. 그래서 까치설날엔 누구라도 찾아와야 행복하다. 이번 까치설날에는 온 세상 사람이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계사년에는 모든 사람들이 아플 때 고통을 함께 나누고 즐거울 때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어두운 곳은 밝아지고 차가운 곳은 따뜻해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무나 찾아가도 그에게 행복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까치설날, 이번 까치설날엔 두 살배기가 되어 만두를 빚으련다. 내년 이날에는 ‘까르르’ 웃는 손자를 볼 꿈을 꾸며 만두나 빚으련다. 내년 가치설날엔 온가족이 더 큰 함박웃음을 웃었으면 좋겠다. 온세상 젊은이들이 꿈을 심어 이루는 까치설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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