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와 총각 선생
이방주
창문이 환하게 밝았다. 이제 일어나서 집 앞 우물에 나가서 쌀을 씻어야 한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가위 명절 아침인데 벽지학교 총각선생인 내 모습이 너무나 청승맞아 보일 것 같았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 '엊저녁에 씻어 놓을 걸, 아니 밥을 아예 지어 놓을 걸, 아니 그냥 한끼 굶으면 어떨까.' 모두가 처량하고 난처할 뿐이다.
누가 창문을 두드린다. 순아다.
"선생님 아버지가 여덟시쯤 진지 드시러 저희 집에 오시래요."
"아, 그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멋쩍게 대답은 했지만 갈 마음은 전혀 아니었다. 고민이 오히려 커졌다. 한가위 아침에 큰댁 작은댁 온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복하는 자리에 어색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말이나 되나. 내 또래 처녀가 둘씩이나 있는데 어떻게 들어선단 말인가? 그러면서 시골 처녀답지 않은 순아의 언니와 나이 많은 조카가 떠올랐다. 부엌에서 분명 키는 멋없이 크다는 동, 옷이 구겨졌다 동, 총각 냄새 난다는 동 쑥덕거림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또 간다고 해도 어른이 계시는데 빈손으로 갈 수가 있나? 아무것도 없는 벽지에서 더구나 명절날 아침에 무얼 장만한단 말인가?
일어나자. 일어나는 거야. 그리고 당당하게 우물에 나가 쌀을 씻고, 석유풍로에 불을 댕겨 밥을 짓고 두부찌개를 끓이자. 나만의 명절을 보내는 거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우선 마을 앞 냇물에 나가 맑은 물에 머리를 감았다. 돌아오는 길 하늘이 파랗다. 들판에서 수수 익는 냄새가 나는 듯했다. 사람들이 좋은 옷을 입고 몰려간다. 어른들은 애써 무게를 짓고 아이들은 경쾌하다. 고향에서는 어떻게 명절을 맞을까? 지금쯤 작은댁에서 제일 큰집인 우리 집으로 하얗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제 하루 종일 오지 못하는 막내를 생각하며 모롱이를 바라보셨을 것이다.
시골 학교는 한가위 이튿날 운동회를 한다.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체육대회가 아니라 동네잔치이다. 아이들 프로그램보다 어른들의 놀이가 더 많다. 외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만나 술잔을 나누고, 골짜기에 들어박혀 살던 이들이 동창을 만난다. 처녀들이 좋은 옷을 입고 나와 교정에서 사진을 찍는다. 솜씨 좋은 집에서는 국밥 장사를 한다. 총각들은 맘에 두었던 처녀를 한적한 곳으로 이끈다. 시골학교는 이렇게 영역 안팎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한가위 당일 하루만 휴일이었던 시절, 하루만에는 집에 다녀갈 수 없을 정도로 교통도 불편한 벽지학교의 총각선생은 객지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야 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콧잔등이 시큰하다.
이제 쌀을 씻어 밥을 지어야 한다. 진아 엄마가 챙겨준 두부찌개 냄비에 물만 붓고 끓이면 혼자만의 명절도 그런대로 흡족할 것이다. 코펠에 쌀을 담아 우물로 나가려는데 순아가 또 왔다.
"선생님, 왜 안 오셔요. 쌀은 왜 씻으려고요?"
지난 봄 졸업했지만 순아 아버지는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낮에는 밥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내가 벌인 야학에 나와 공부한다. 산골 맑은 공기를 마시고 계곡에 발을 씻어 얼굴도 마음도 곱다. 순아는 아예 팔짱을 끼고 나를 끌었다.
"순아야 가족끼리 모이는데 내가 가면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쑥스럽기도 하고……."
가족들이 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단다. 스물세 살 햇병아리 선생도 여기서는 큰 손님이다. 모두 기다린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순아가 끄는 대로 따라갔다. 열네 살이나 된 순아는 팔짱을 끼고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한다. 코스모스가 참 예쁘다느니, 저 쪽 골짜기에 들어가면 다래가 한창이라느니 하면서 어색한 나를 달래려고 무진 애를 쓴다. 어린 순아가 누나만큼 고맙다.
가족들은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늦둥이 귀여운 막내딸을 둔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권하는 대로 상석에 앉았다. 자취 생활하는 총각선생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진수성찬이다. 집에서라면 이런 상에서 어른들과 음복주를 마시는 것은 막내인 내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심부름하기에 바쁠 뿐이었다.
차례인데도 메를 올린 모양이다. 탕국, 자반고등어, 전, 나물, 등 기제사 음식이다. 송편은 우리와는 모양이 다르고 달떡이라고 했다. 강원 충청 경상 삼도 접경 마을인 이곳은 충청도라기보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풍습을 많이 따르고 있었다. 어른이 눈치를 챘는지 연유를 설명해 주었다. 순아 어머니가 감주를 내오면서 자꾸 권하고, 젊은 주부인 순아의 올케도 과일을 내왔다. 순아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처럼 낭자머리를 하고 은비녀를 꽂고 있어서 고향집에 간 것만큼 푸근했다.
어른이우리 집안의 차례나 기제사 제도를 묻고 나는 대답하는 동안 한 가족이 된 듯했다. 순아의 오빠들은 형이 되고 조카들도 다 동생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는 동안 순아 언니가 시골에서 어떻게 구했는지 커피를 내왔다. 나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 먼저 빨개지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창피스러웠다. 그래도 분위기에 젖어 얼른 일어서야 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가을 하늘이 더 푸르게 익어가고 있었다. 누렇게 무르익은 볏논에 고추잠자리가 날아든다. 순아가 팔짱을 낀 채 조잘거린다. 예쁜 여동생이라도 둔 것 같이 즐거웠다. 순아 어머니가 챙겨준 달떡, 전병, 두부부침, 배추김치, 마른 반찬들은 가난한 자취생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 해 한가위는 벽지 학교 총각선생에게도 전혀 외롭지 않은 날이었다.
하늘은 올 한해 우리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다. 세 차례의 태풍이 농어민의 가슴에 시퍼렇게 멍을 남겼다. 성폭행과 살인, 어린이 납치, 청년실업자의 좌절, 비정규직의 소외, 제자리를 모르는 교육정책, 대기업의 파렴치한 노동착취, 서민을 배반하는 정치와 경제 권력, 같은 갈라진 마음이 우리를 더 아프게 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한다. 올 한가위는 밝음으로 와서 아픔을 걷어갔으면 좋겠다. 힘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보름달 같이 가득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울분과 좌절로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에게도 보름달처럼 밝고 투명한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당한 사람의 상처도 저지르는 사람의 좌절도 밝고 깨끗하게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벽지학교 총각 선생의 서글픔을 달래 주던 순아네 가족처럼 나누는 사랑을 베풀었으면 좋겠다. 나누는 것이 곧 사랑이고, 권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2012.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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