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불의 예술(멋)

산수유

느림보 이방주 2006. 12. 15. 08:16

 산수유


퇴근하고 저녁 5시에 이화령에 올라갔다. 이화령 옛날 고갯길은 1시간이면 땀을 내기에 족하다. 어둑어둑해지는 것 같아서 등산용 랜턴을 목에 걸고 갔다. 오르막길에서 은티마을의 입구가 마주보이는 곳에서 대개 되돌아오곤 했었다. 전에는 내가 정한 반환점까지 40분이 걸렸는데 오늘 25분 걸린다. 그간 이 고갯길과의 싸움이 補陽에 효험이 있었나 보다. 사실 가까이 있으면 더 가까워지고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 아닌가?


한참을 더 올라갔다. 도로 아래로 연풍 고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악희봉, 마분봉, 그 아래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연풍 나들목 모습이 그림이다. 거기 불이 들어오면 완전히 꽃밭이다. 들판도 이제 휴면에 들어 간 것 같다. 여름에는 그렇게 싱그럽게 숨쉬던 산야에도 찬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잠자리를 펴는 것도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괴정리 초등학교 앞을 지나 은티로 들어가는 길이 새끼줄을 늘여놓은 것 같다.

 혼자 사는 사택 책상 앞의 산수유

그리로 계속 들어가면 구왕봉과 희양산이 우뚝 솟았다. 구왕봉과 희양산이 만들어낸 은티마을 입구에 낙락장송이 눈에 보일 듯하다. 그 우람하고 청아한 모습이 마음속에 그림을 그린다. 은티마을을 안고 있는 골짜기는 女根의 모양을 꼭 닮았다고 해서 남성이 들어가면 氣가 사위어 버린다고 한다. 장송 울창하게 우거진 그 안에 女根谷의 의미가 재미있다. 그래서 남성이 사위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 男根石을 세워 놓고 해마다 致誠을 드려서 女根의 거센 기운을 잦히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은티마을의 그 재미있는 풍습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은티마을 남자들의 고개는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이야기가 적지않은 마을에 전해내려오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 숙인 남성에 대한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사내들의 관심거리인가 보다.


女根 모양의 지형에 男根이 들어가면 사위어 나온다는 그 깊은 사유가 참으로 동화처럼 아름답다. 남근을 닮은 자연석을 꼭 박격포의 '차려포' 자세로 세워 놓고, 그 우람한 모습을 모든 남성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침을 꼴깍 삼켰을 것이다. 고개 숙인 남성을 일으켜 세우는데 여성의 기운을 다스리고자 한 착상이 사실은 좀 치졸하지만 재미있다. 여성의 기운을 다스리기보다 넘어설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소박한 국민성 탓인가? 또 사랑하는 그대 안에서 남성은 어차피 사위어 버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어찌 잊었단 말인가? 하기는 그것을 다 알면서도 끊임없이 솟아오름을 추구하는 것은 남자들의 미련함 때문일 것이다. 또 그 황홀한 골짜기에 들었다가 살아나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언젠가 제천 금수산 자락의 동산을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 자연적으로 솟은 그야말로 우람한 남근석을 바라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아랫도리 뿌리 부분은 서너 아름이 넘고, 거북이 머리를 닮은 꼭대기가 하늘을 향하여 성을 내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울퉁불퉁한 석질은 솟아오르는 핏줄 같았다. 게다가 내 키로도 두어 길은 넉넉히 될 것 같았다. 산 줄기에서 솟아 오른 남근이 어느 산신령의 힘의 심벌이라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힘찬 모습과 거대함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 근엄한 체했던 내모습이 아내 앞에서 완전히 구겨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남성의 진실한 모습이 아닌가?

                                                     제천 동산의 남근석

한번은 박달재의 서원휴게소에 들른 적이 있는데 휴게소 마당에 소나무로 깎아 세운 남근이 있었다. 그 모습을 많이 닮은 소나무를 깎고 다듬어 세워 놓은 것이었다. 동산의 자연석 만큼 크지는 않지만, 사람의 손이 간 것이라 그런지 힘 좋은 사람이 누워서 하늘을 향하여 총대를 세우고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힘차게 꿈틀거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꺼떡거릴 자세였다. 나는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를 웅얼거리며 몇 바퀴를 돌았다. 무릎 아래 다리에 힘이 쪽 빠지는 느낌이었다.

 

박달재 서원 휴게소의 소나무

 은티마을 사람들이 거센 여근의 기를 넘어서기 위하여 강정제를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산촌에 지천인 산수유도 강정제인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동의보감에서도 발기가 안 되고 정액이 저절로 흘러나올 때 산수유를 차로 달이거나 술을 담가 먹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더구나 무릎의 연골까지 보강한다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최고의 補陽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희양산은 시루봉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다. 이만봉을 거쳐 백화산에 이르면 백두대간은 1000m가 넘는다. 그러나 백화산도 단숨에 오르는 정력을 가졌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이만봉을 오르려면 거쳐야 하는 분지리로 들어가는 계곡이 무릉도원의 석문을 여는 듯 하다. 이만봉과 백화산에서 발원한 물이 마을을 적시고 계곡에 모여 분지 저수지가 되었다. 분지리가 오지라고 하지만 이제는 거기도 3번국도,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굴길이 두 개나 뚫려 옛날 호랑이 나온다던 분지는 이미 아니다. 또한 女根 닮은 골짜기를 찾는다면 은티마을 빰치는 모양이다. 계곡이 좁고 깊으며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굴길까지 뚫렸으니 말이다. 그 골짜기를 내려다 보기만 해도 진땀이 흐른다.


나무들은 온통 붉고 노랗다. 아직 초록을 벗지 못한 놈도 있고, 이미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뼈다귀를 드러낸 놈도 있다. 억새는 이미 씨나래를 다 흩어버렸는가? 이름처럼 억센 잎줄기만 바람에 칼 가는 소리를 내고 울고 있다. 시드는 가을의 풍요가 스산하다.


돌아오는 길, 은티의 골짜기와 마주치는 길가에 산수유가 소복하다. 홍역하는 아이 열꽃처럼 붉어 곯아떨어지기 직전이다. 가지마다 홍옥을 동글고 갸름하게 깎아 소복하게 매단 것처럼 아름답다. 그야말로 정열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두세 가지 꺾었다. 진한 갈색으로 퇴색된 채 매달려 있는 이파리 한 장도 놓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산수유는 그 열매가 남성에 좋다고 하지만, 다른 꽃보다 서둘러 피는 꽃은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노랑색이기도 하다. 봄바람이 치맛자락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여자들의 오금을 간지를 때 이 꽃은 노란 폭죽처럼 피어난다. 이 화사한 폭죽의 축제 같은 꽃을 보면서 가슴에 불이 붙지 않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수유야말로 성을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과 기운을 태탕하게 하는 신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산한 이화령 옛길에도 가끔씩 차가 지나간다. 말똥바위 뾰족한 봉우리 너머로 노을이 구름 한 장을 검은색 실루엣으로 남기더니 꼴깍 숨을 거두었다. 이내 돌아내려가는 산모롱이가 어둑어둑하다. 길가에 참나무, 키 큰 전나무들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도 내게는 예사롭지 않다. 아직은 낯선 산길에 선비를 위협하는 산적이라도 굴참나무 잎을 가랑이에 소복하게 붙이고 달려들 것만 같다. 바람에 쌓인 낙엽이 부스스 날린다. 랜턴을 이마까지 올리고 불을 켰다. 전등에서 쏟아내는 불빛이 숲 사이를 헤집는다. 갓길을 조금씩 뛰었다. 산수유 열매 하나가 떨어진다. 가을을 한 알 놓친 것만큼 아쉽다. 아랫도리에 남았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남성은 이렇게 사위는 것인가? 다시 걸었다.


산수유 가지를 들고 아주 조심스럽게 돌아오는 길, 소주에 엷게 취한 듯 묘한 상념에 젖어 어둠 속에서도 느티나무 고운 낙엽 밟히는 소리가 고적한 음악처럼 들린다. 이화령에서 가져온 산수유를 책상 책꽂이에 꽂아 보았다. 전날 주워온 모과가 산수유 붉은 빛깔 때문에 더 노랗게 보인다. 더할 수 없이 빨갛게 익은 사과를 하나 옆에 놓아 보았다. 노랑 모과 두 개,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검은 색으로 숨을 거둔 모과 한 개, 붉은 사과. 그리고 산수유 가지가 그런 대로 그림이 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氣가 살아나는 기분이다. 동산의 남근석도, 서원휴게소의 남근목도 넘어설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을 들고 문득 산수유 가지를 바라본다.

이화령의 가을이 한눈에 보인다.

연풍의 산야가 한눈에 보인다.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

내 사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아니, 내 삶의 가을을 본다.


아까운 하루라고 의미를 두려 애쓰지 말자.

의미는 찾으면 찾을수록 도망가는 것…….

사위는 氣를 잡으려 애쓰지 말자.

그도 또 잡으면 잡을수록 도망가는 것…….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산수유

그 붉은 열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는 돌아오는데…….

(2006.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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