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호박죽과 카레라이스

느림보 이방주 2010. 11. 10. 12:48

 

 

 

 

 어느 가을날 아침이다. 싸리꽃처럼 청초한 큰아기가 하얀 종이 가방을 들고 연구실에 들어왔다. 한손으로 기다란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가방에서 작은 도시락 하나를 꺼낸다. 노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호박죽이었다. 눈에 부끄러운 웃음이 가득하다. 걱정마라. 나는 호박죽을 아주 좋아한단다.

 

영어회화 시간에 원어민 교사인 에이미 선생님Amy Larsen이 할로윈데이Halloween Day를 맞아 학생들과 함께 귀신 형상을 한 호박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길목인 할로윈데이에 호박등에 불을 밝혀 잡귀를 쫓는 서양 풍습을 가르친 것이다. 우리 민속으로 말하면 동지에 붉은 팥죽을 쑤어 잡귀를 쫓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서양 풍습 수업을 마치고 남은 호박을 집에 가져가 죽을 쑤어 와서 서른아홉 아가들이 달게 먹은 것이다. 생각할수록 기특한 일이다.

어린 날 나는 호박죽을 아주 싫어했다. 우선 노릇노릇한 색깔이 싫었다. 그리고 단맛이 싫었고, 호박죽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동부나 팥알이 입안에서 부서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그 시대에는 하얀 쌀밥에 잘 익은 김치를 얹어 볼이 미어지게 먹고 싶었다. 소망도 아랑곳없이 어머니는 툭하면 호박죽을 쑤었다.

 

호박죽을 쑬 때는 껍질 벗기는 일이 무엇보다 고역이다. 모지랑숟가락으로 만질만질한 껍질을 힘들여 벗겨야 한다. 어머니는 그 일을 호박죽을 싫어하는 나를 시켰다. 그래서 호박죽이 더 싫었다.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해서 말은 못하고 ‘빡빡’ 소리를 내며 호박 껍질을 마구 긁어댔다.

 

나이를 먹고 식성이 바뀌어 이제는 호박죽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뷔페를 먹을 기회가 있으면 호박죽을 먼저 찾는다. 늦가을이면 잘 익은 호박을 몇 덩이씩 가져다주는 이가 있어서 아내가 종종 호박죽을 쑤어 준다. 그때마다 과식하게 된다. 그래도 배탈이 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는 법은 없다. 호박이 우리 몸에 잘 맞는 것도 그렇게 알 수 있다.

 

큰아기가 자져온 호박죽은 간이 잘 맞았다. 드문드문 들어 있는 팥알이 씹힐 때마다 고소한 맛이 호박의 단맛에 어울렸다. 빛깔이 좋아서 침을 삼키면서도 아껴 두었다가 혼자서 먹었다. 그러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호박죽을 먹으면서 거기에 담긴 엄마의 달고 고소한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수업을 하고 남은 호박을 집으로 가져간 큰아기 마음이나, 호박죽을 쑤어 보내준 엄마의 마음이나, 그걸 안고 와 동무들과 나누어 먹는 마음이나 모두 학급의 동무를 겨레붙이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몇 해 전에 후지산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첫날은 날이 저물어 산장에서 밤을 보내게 되는데 산장에서 저녁식사로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먹지 못하기에 아주 난감했다. 호박죽은 좋아하면서 색깔도 모양도 별다른 차이가 없는 카레를 먹지 못하는 것은 편벽된 식성이라는 것을 잘 안다. 굶고는 산을 오를 수 없다. 다른 반찬도 없어 할 수 없이 카레에 비벼서 먹었다. 그런데 아침에 또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또 먹었다. 음식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죄가 되겠지만, 그날의 식사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었다.

 

어둠을 헤치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후지산 일출이 시작되었다. 하늘을 반으로 나누듯 낮게 깔려 있는 회색 구름 위로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장관이다. 그런데 하늘빛만큼 아랫배가 아릿아릿해 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목구멍에서 자꾸 역겨운 카레 향이 올라온다. 배는 점점 더 우글우글 끓기 시작한다. 일출의 장관이 모두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산은 풀 한 포기 없이 온통 화산재뿐이다. 아무리 두리번거려 보아도 몸을 숨길 수 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일본인들은 신앙처럼 후지산으로 끊임없이 올라온다. 큰일이 닥쳐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한바탕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이 고요하다가 예리한 칼날이 한 차례 아랫배를 긋고 지나간다. 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런색 쓰나미가 되어 온산을 뒤덮을 기세이다. 닥쳐올 국제적 망신이 두려웠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어렵게 참아 공중화장실을 찾아 해결했지만 난처했던 그날의 고통스러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카레가 더욱 싫다.

 

어린 시절 호박죽의 노란색을 싫어한 것은 철모르는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모두 노란색이다. 호박죽이 그렇고 고구마도 그렇다. 감자는 노릇노릇하게 눌어야 고소하다. 기장밥도 노랗다. 김장김치도 고춧물이 들어 노랗게 익어야 맛있다. 노란색은 우리가 사는 땅의 색깔이다. 우리 땅은 어디를 가도 붉거나 누런 황토이다. 그래서 땅의 색깔에 물든 호박이 우리 체질에 맞는 모양이다. 땅은 생명의 바탕이고 삶의 언덕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같은 노랑인데도 카레를 몸이 받아주지 않는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런가 보다.

 

호박죽을 먹노라니 서구의 민속을 배우고 나서도 호박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는 큰아기가 미덥다. 마치 잘 익은 호박의 텁텁한 윤기처럼, 꾸밈없이 어여쁜 그 모양새처럼, 형용할 수 없는 맛처럼 그런 믿음 말이다. 카레로는 도저히 흉낼 수 없는 우리 음식에 대한 믿음이 세상을 덮을 듯이 밀려든다.

                                                                      (2010. 11. 10)

 

 

호박죽과 카레라이스
[에세이 뜨락] 이방주
2010년 11월 18일 (목) 19:51:22 지면보기 10면 중부매일 jb@jbnews.com
   
이방주

어느 가을날 아침이다. 싸리꽃처럼 청초한 큰아기가 하얀 종이 가방을 들고 연구실에 들어왔다. 한손으로 기다란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가방에서 작은 도시락 하나를 꺼낸다. 노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호박죽이었다. 눈에 부끄러운 웃음이 가득하다. 걱정마라. 나는 호박죽을 아주 좋아한단다.

영어회화 시간에 원어민 교사인 에이미 선생님Amy Larsen이 할로윈데이Halloween Day를 맞아 학생들과 함께 귀신 형상을 한 호박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길목인 할로윈데이에 호박등에 불을 밝혀 잡귀를 쫓는 서양 풍습을 가르친 것이다. 우리 민속으로 말하면 동지에 붉은 팥죽을 쑤어 잡귀를 쫓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서양 풍습 수업을 마치고 남은 호박을 집에 가져가 죽을 쑤어 와서 서른아홉 아가들이 달게 먹은 것이다. 생각할수록 기특한 일이다.

어린 날 나는 호박죽을 아주 싫어했다. 우선 노릇노릇한 색깔이 싫었다. 그리고 단맛이 싫었고, 호박죽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동부나 팥알이 입안에서 부서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그 시대에는 하얀 쌀밥에 잘 익은 김치를 얹어 볼이 미어지게 먹고 싶었다. 소망도 아랑곳없이 어머니는 툭하면 호박죽을 쑤었다.

호박죽을 쑬 때는 껍질 벗기는 일이 무엇보다 고역이다. 모지랑숟가락으로 만질만질한 껍질을 힘들여 벗겨야 한다. 어머니는 그 일을 호박죽을 싫어하는 나를 시켰다. 그래서 호박죽이 더 싫었다.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해서 말은 못하고 '빡빡' 소리를 내며 호박 껍질을 마구 긁어댔다.

나이를 먹고 식성이 바뀌어 이제는 호박죽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뷔페를 먹을 기회가 있으면 호박죽을 먼저 찾는다. 늦가을이면 잘 익은 호박을 몇 덩이씩 가져다주는 이가 있어서 아내가 종종 호박죽을 쑤어 준다. 그때마다 과식하게 된다. 그래도 배탈이 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는 법은 없다. 호박이 우리 몸에 잘 맞는 것도 그렇게 알 수 있다.

큰아기가 자져온 호박죽은 간이 잘 맞았다. 드문드문 들어 있는 팥알이 씹힐 때마다 고소한 맛이 호박의 단맛에 어울렸다. 빛깔이 좋아서 침을 삼키면서도 아껴 두었다가 혼자서 먹었다. 그러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호박죽을 먹으면서 거기에 담긴 엄마의 달고 고소한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수업을 하고 남은 호박을 집으로 가져간 큰아기 마음이나, 호박죽을 쑤어 보내준 엄마의 마음이나, 그걸 안고 와 동무들과 나누어 먹는 마음이나 모두 학급의 동무를 겨레붙이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몇 해 전에 후지산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첫날은 날이 저물어 산장에서 밤을 보내게 되는데 산장에서 저녁식사로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먹지 못하기에 아주 난감했다. 호박죽은 좋아하면서 색깔도 모양도 별다른 차이가 없는 카레를 먹지 못하는 것은 편벽된 식성이라는 것을 잘 안다. 굶고는 산을 오를 수 없다. 다른 반찬도 없어 할 수 없이 카레에 비벼서 먹었다. 그런데 아침에 또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또 먹었다. 음식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죄가 되겠지만, 그날의 식사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었다.

어둠을 헤치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후지산 일출이 시작되었다. 하늘을 반으로 나누듯 낮게 깔려 있는 회색 구름 위로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장관이다. 그런데 하늘빛만큼 아랫배가 아릿아릿해 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목구멍에서 자꾸 역겨운 카레 향이 올라온다. 배는 점점 더 우글우글 끓기 시작한다. 일출의 장관이 모두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산은 풀 한 포기 없이 온통 화산재뿐이다. 아무리 두리번거려 보아도 몸을 숨길 수 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일본인들은 신앙처럼 후지산으로 끊임없이 올라온다. 큰일이 닥쳐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한바탕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이 고요하다가 예리한 칼날이 한 차례 아랫배를 긋고 지나간다. 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런색 쓰나미가 되어 온산을 뒤덮을 기세이다. 닥쳐올 국제적 망신이 두려웠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어렵게 참아 공중화장실을 찾아 해결했지만 난처했던 그날의 고통스러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카레가 더욱 싫다.

어린 시절 호박죽의 노란색을 싫어한 것은 철모르는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모두 노란색이다. 호박죽이 그렇고 고구마도 그렇다. 감자는 노릇노릇하게 눌어야 고소하다. 기장밥도 노랗다. 김장김치도 고춧물이 들어 노랗게 익어야 맛있다. 노란색은 우리가 사는 땅의 색깔이다. 우리 땅은 어디를 가도 붉거나 누런 황토이다. 그래서 땅의 색깔에 물든 호박이 우리 체질에 맞는 모양이다.

땅은 생명의 바탕이고 삶의 언덕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같은 노랑인데도 카레를 몸이 받아주지 않는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런가 보다.

호박죽을 먹노라니 서구의 민속을 배우고 나서도 호박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는 큰아기가 미덥다. 마치 잘 익은 호박의 텁텁한 윤기처럼, 꾸밈없이 어여쁜 그 모양새처럼, 형용할 수 없는 맛처럼 그런 믿음 말이다. 카레로는 도저히 흉낼 수 없는 우리 음식에 대한 믿음이 세상을 덮을 듯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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