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가슴에 박힌 가시덤불을 '시민보다 먼저 근심하는 마음'으로 거두어 주십시오. 그 방편의 하나로 수름재 부근에 토지를 임대라도 하여 소박한 만남의 광장을 조성한다면,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도 보고, 원거리 통근하는 시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도 될 것입니다.”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07년 5월 18일자 충청권 일간지인 충청투데이에 ‘가시덤불을 거두는 시정’이란 제목으로 투고했던 칼럼의 일부이다.

당시 수름재는 충북의 북부지방으로 출근하는 시민들이 세워 놓은 차들이 마구 점령하였다. 갓길, 안전지대는 물론 인도까지 빈틈만 있으면 차를 세웠다.

승용차를 함께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당번차를 만나 이곳에 자신의 차를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행상인들의 차까지 뒤범벅되어 인도를 통행하는 사람들도 불편했고, 교통사고 위험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인 줄 알면서 필자도 여기 차를 세워 놓고 출근한 후 종일 가슴을 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차를 세우는 곳이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아마도 민원이 들어갔을 것이다. 차를 세울 수 없어 각자 자기 차를 타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 장려하는 승용차 함께 타기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원거리 통근하는 유류비 절약에도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충청투데이 지면을 빌어 청주시장에게 건의하였다. 다시 청주시 홈페이지 ‘시장과의 대화’난에 이 글을 탑재하여 담당자로부터 '좋은 의견을 주어 감사드리며 다음 예산에 반영하겠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필자의 칼럼을 읽은 한 후배 교사로부터 시내 근무 기간이 끝나면 틀림없이 수름재 만남의 광장에 차를 세우고 승용차 함께 타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믿음을 보내주는 후배가 고마웠지만, 카풀주차장이 세워지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후 청주시에서는 주중에는 시내 예식장 주차장을 몇 군데 빌려서 '카풀 주차장'이란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런데 최근에 가시덤불에 덮였던 수름재 바로 그 자리에 '수름재 카풀 주차장'이 완공되어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감개무량하였다. 이 일은 작은 일이라면 작은 일이다. 그러나 작은 일에 소시민은 크게 감동한다. 목민관의 작은 관심으로 시민은 날마다 행복하고, 가계에 보탬이 되고, 국가는 부강해지고, 지구 환경은 생명력을 지닌다.

이렇게 선우후락(先憂後樂)한 목민관은 자리에서 떠났지만 지금도 매일 몇 그루씩 나무를 심고 있는 셈이 된 것이다. 정치란 별게 아니다. 시민의 근심을 덜어주는 것이다. 시민의 가슴에 가시덤불을 거두는 시정의 본보기를 보면서 민주주의가 우리고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되어 행복감에 젖었다.

칼럼을 읽고 그런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후배 교사는 내년 3월이면 소망처럼 만남의 광장에서 동료를 만나 승용차 함께 타기로 출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 일이라도 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