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엄마의 시험 감독
부여 궁남지에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1학기말 고사가 다가온다. 학교에서 치르는 정기고사 때 담임교사들이 항상 고민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학부모 시험감독 함께하기에 참여할 학부모를 선정하는 일이다. 학부모 시험감독 함께하기는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는 학부모들이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시간을 긴장된 상태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한 30분만 지나면 두리번거리면서 의자를 찾는다. 그러나 사전 교육 때 부모님들도 의자에 앉는 것을 지양하도록 한다. 그러니 이 분들이 한 시간만 견디는 것이 아니라 10분 쯤 쉰 다음 바로 이어서 또 한 시간을 견디어 그렇게 하루 3,4 시간을 견디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학교에서 내신 성적을 산출하기 위한 평가 과정이 아주 공정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 학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평가 과정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하도록 한다. 대개 감독 교사들은 시작종이 울리기 전에 입실한다. 그리고 끝종이 울리면 즉시 답안지를 회수한다. 감독의 엄정함, 시험 문제의 치밀함, 문제 인쇄와 보관 과정이 철저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면 매체들의 악의에 찬 보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다음에는 평가 과정을 더욱 공정하게 운영하게 된다는 점이다. 학부모는 어떤 면에서 시험 감독이라기보다 평가 과정의 감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이 더 긴장하고 출제에서부터 채점까지 더 긴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엄마들이 모두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4일간 감독할 자모님들을 구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큰애기들은 대개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愚子가 부장교사 시절에는 그걸 못 구하느냐고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담임교사가 되니까 난감했다. 중간고사 때는 자진 희망자 세 분이 학교에 나와 그런 대로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기말고사는 4일간이다. 최소한 한 반에 네 분씩은 되어야 한다. 네 분이 희망하면 나오신 분들이 종일 4 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정통신문을 보내도 반응이 없다. 직장을 가지지 않은 엄마가 39명 중 거의 15명 정도 된다. 게다가 자영업을 하는 분들도 자식을 위한다면 하루쯤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20명도 더 된다. 그런데 묵묵무답인 건 분명히 아가들의 훼방이다.
너희가 그러면 나도 너희를 배신할 수밖에 없다. 愚子는 머리를 짜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최근에 개통된 CoolMessenger SMS를 활용하면 된다. 한방에 문자를 20방씩 날린다. 요금도 물론 온 국민이 부담한다. 일전에 교육정보부장이 왜 안쓰느냐는 게 바로 그거다. 손해날 건 없다. 한 번 날려보자. 전화하는 것보다 시끄럽지 않아 좋다.
월요일(21일) 14시 05분에 문자를 날렸다. 아주 간단히
자모님
시간 나시면 기말고사 시험 감독 부탁드립니다. 하실 수 있는 분은
6월3일, 7월1,2,3 일 중에서 하루만 선택하여 문자 보내 주세요. 담임 드림
헛일이 아니었다. 1차로 20명을 보내고, 2차 문자를 보내기 위해 저장된 전화번호를 선택하기 전에 답멜이 왔다.
저는 7월 1일 가능합니다. 린자엄마.
저도 가도 될까요? 안자엄마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 때나 좋아요. 홍자 엄마
2차 멜을 보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보냈다. 계속 온다. 네 분이면 되는데 다섯 분에서 끊었다.
죄송합니다. 2학기 때 부탁드립니다.
나는 거절한 자모님들께 죄송할 일도 아니면서 죄송했다. 이쯤 되면 큰애기들의 횡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아가야 너희가 그러면 나도 꿈틀댄다. 나는 쾌재를 올렸다. 사실 SMS 벌써 몇 번째 써먹었다. 아가들은 그걸 모른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건가?
종전에 명자가 한 말이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님, 성적통지표 다시 한 장 출력시켜 주시면 안돼요?"
"왜? 게시판에 붙여 놓게?"
愚子는 평소처럼 어깃장을 놓았다.
"아아니요."
"그럼?"
"엄마가 자꾸 성적표를 내놓으래요."
"그래? 엄마가 성적표 내준 걸 아셔?"
"글쎄요. 선생님, 엄마가 어떻게 성적표 내준 걸 알까요?"
"글쎄 어떻게 아시지? 엄마들끼리 통하는 거 아냐?"
"그냥 짐작해서 그러나 봐요. 그런데 꼭 보여드려야 얘기가 끝날 것 같아요."
愚子는 다 안다.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 놓았기에 내 머리가 가렵다. 귓바퀴가 붉어지지는 않았을까? 아가들아! 나는 너희가 성적통지표를 부모님께 통지하지 않는 것을 다 안다. 나도 다 그렇게 그 시절을 지냈으니까. 그러나 나 때는 SMS가 없었다. 아주 안전했지. 아가들아 요즘은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는 세상이란다. 엄마들이 비밀도 잘 지켜 주시고---------. SMS도 있고------.
어떤 엄마는 담임 얼굴을 한 번 뵙고 싶다고 했다. 보면 실망일 텐데. 인문고등학교에 愚子처럼 다 낡고 어지간히 삭아버린 담임이 어디 있다고-----. 만나면 아마도 학부모로 온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교무실 담임선생님에게 잡혀온 기분일 것이다. 愚子는 그게 미안하고 안쓰럽다. 자모님들을 만나기는 싫다. 만나면 바로 실망할 테니까. 자모님, 그냥 멀리 두고 보세요.
이제 며칠 지나면 아가들이 교실에서 엄마를 만날 것이다.
" 어, 울엄마가 어떻게 왔지?"
상상할수록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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