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어느 월요일 직원회가 세미나실에서 있었다. 갑자기 행정실장이 초과근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참모회의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 짐작된다.
요점은
첫째, 불요불급한 초과근무를 삼가해 달라는 것이다. 하루에 30명 정도가 초과근무를 하니 많지 않으냐는 것이다.
둘째, 시간을 사실대로 기록해 달라는 것이다. 당직근무자는 우리 직원이 아니니 그 분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자는 말까지 했다. 표현이 참으로 사람 죽이는 발언이다.
불요불급한 초과근무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30학급에서 30명 정도의 초과 근무는 매우 정당하다고 본다. 학년부장과 교감을 더한다면 담임 몇 명은 아이들이 있는데도 그냥 퇴근해 버린 것이 된다. 그 정도의 퇴근이 학교 관리자들이 우려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떻게 들으면 이 말은 교사들이 초과근무수당을 위해서 할 일도 없는데 남아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교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아니라면 두 시간 정도의 초과 근무는 기록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된다. 그런데 그건 그의 권한이 아니다.
당직근무자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말은 교육감도 교사들에게 할 수 없는 말이다. 내가 후배 선생님들에게 '우리 그렇게 살자' 이렇게 말한다 해도 오해할 분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육행정직 사무관들이 관례처럼 되어 있는 사무관이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사람은 교육행정 사무관이나 그 상급자들이다. 아마 그들이 부끄러움이란 낱말의 의미를 알고 양심이 있다면 바로 사표를 내야 할 것이다.
이 말에 아주 심하게 기분이 상했으나 젊은 선생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서 참았다. 말을 하면 또 길어지고 길어지면 1교시 수업에 차질이 온다.
그런데 일주일 후 조회 시간에 에어컨 문제에 대하여 어떤 담임교사의 건의가 있었다. 담임 교사는 0교시가 덥다는 것이고, 교장은 환기를 시키고 아이들에게 절전을 가르치면서 좀 참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1교시보다 0교시가 더 더운 상황을 관리자들은 모르고, 건의한 담임교사는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소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아주 길어졌다. 0교시가 더운 이유는 밤새 닫았던 교실에 허겁지겁 달려온 40명 아가들의 열기를 보태기 때문이다. 땀이 줄줄 흐른다. 이것을 관리자들은 모른다. 담임들이 0교시 시작 2,30분 전에 와서 문을 열게 하는 것도 알 턱이 없다. 열게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연다. 9시 가까이 출근하는 행정실장이 알 까닭이 없고 교실에 들어가보지 않는 관리자들도 파악이 안될 것이다.
나는 절약을 가르치자는 교장의 설득에 완전한 공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동감이라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교장이라면 아침에 담임교사보다 먼저 3학년 교실을 들어가 볼 것이다. 그리고 수업의 효과를 고려하여 결정할 것이다. 그래도 그 말에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실장이 교장 다음에 일어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을 또 했다. 마치 교육부 장관처럼 교사들을 타이른다. 교장선생님의 설득에 이미 많은 교사들이 수긍이든 아니든 정리된 상황에서 그의 말은 불필요를 넘어 건방진 행위였다. 이번에도 선생들은 듣고만 있다. 이 사람들에게도 끓는 피가 있을까? 나도 젊었을 때 이랬을까? 이렇게 자존심을 구기고서도 똥은 피하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행정실장이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 개념이 서지 않은 것일까? 내가 입을 열 때를 기다리는 것일까? 나는 37년을 지켜온 자존심을 위해서 또 입을 열었다.
관리자로서 7시 30분경 출근해서 돌아 보았느냐? 교육행정은 교사들의 양심에 걸러져서 목적지인 아이들에게 침투된다는 특성을 이해하고 있느냐. 행정실장으로서 하루에 학교를 몇 바퀴나 도느냐? 감동행정이란게 뭔지나 아느냐?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지난 주에 나왔던 초과근무에 대한 것까지 말을 해 버렸다. 실장이 공개 사과를 했다. 나는 부끄러움이란 대목에서 교육행정 사무관들의 승진 과정에 대하여 얘길 하려다가 너무 심한 것 같아 참았다.
교사들은 초과근무를 신청하고 승인받아 실제로 근무했으면서 깜빡 잊고 근무확인 일지에 서명을 안하고 가는 경우나 초과근무를 해야 하는데 깜빡 잊고 사전에 승인신청을 못한 경우의 구제 방법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면 선생들은 감동한다.
에어컨 가동 문제도 담임교사보다 관리자가 먼저 와서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것을 본다음 교실의 열기를 체크한다면 역시 담임교사들이 몸둘 바를 모른다. 이건 몇 번만 하면 된다. 이게 감동 경영이다. 학교 관리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손이 있는 대로 다 행동에 옮겨야 효과를 얻는다. 그래야 경영의 대상들이 감동한다. 이것이 감동 경영이다. 솔선하지 않는 가르침은 잔소리이다. 그것을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나가야 한다.
얘길 다 하지 않은 것이 후회도 되었지만 후련했다. 말 한 뒤에 교장 교감의 정리가 없어서 섭섭했다. 말하기 전보다 말하고 난 이후에 더 괴로웠다.
내가 남아 있는 것도 불요불급한데 초과근무수당을 위한 것은 아닐까?
나는 근무한 시간보다 더 시간을 달지나 않았을까?
그러나 한 점 양심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耳順이 가까운 나이에 그까짓것 귀넘어 듣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한 이주 정도 나는 6시 경에 퇴근해 버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가들이 흩어진다. 오후 보충수업이 없는 날은 더 일찍 퇴근하니 그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랬더니 수업 시간에도 흩어진다. 이를 어쩐다. 그러고 보니 나뿐만이 아니라 초과근무하는 교사들이 줄었다고 한다. 한 15명 정도로 줄었다. 바람직한가?
이렇게 나가는 것은 정말 하찮은 관리자의 잘못된 생각으로 이왕에 다져지는 학교 전통의 주추를 빼는 일이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잠깐이다. 인근에 그런 학교가 있다고 원로교사들이 저녁을 먹으면서 걱정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만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6월 28일 스쿨메신저를 통해 선생님들께 이 글을 썼다.
존경하는 선생님들께
날씨는 우중충하지만 바람은 시원하네요.
저는
지난번
"불요불급한 초과근무"
"경비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
파문으로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멍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얘기를 시원스럽게 하지 못해서 더 가슴이 아팠는지도 모릅니다.
耳順이 다가오는데도 귀는 아직 순해지지 않았는지,
좁아 터진 속알머리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건지,
그 이후 교실에 들어가기도 싫고
그렇게 이쁘던 아가들이 멀어지고
일찍 퇴근해도 2학년 2반 교실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율학습 지도 당번 날이나 사감 날을 제외하고는
그냥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퇴근해 버렸습니다.
퇴근해서 산을 한 바퀴 돌면서 땀을 흘리기도 하고
누워 TV를 보기도 하고
그동안 못보던 책도 읽고
글도 한 편 구상하니
이쁜 아가들은 점점 까맣게 멀리 잊혀져 가더군요.
어제 교실에 들어가 보니
저희 큰아빠처럼 그렇게 잘 따르던 저희반 아가들도
이제는 저를 멀리 하는 것 같았어요.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걸까요?
어젯밤 志學園 사감을 하면서
정수기 위를 지저분하게 해 놓은 아가들을 야단치다가 문득
불자가 절에 가는 것은
스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뵈러 가는 것이듯이
우리들의 신앙은
교육행정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큰애기들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간의 속좁은 사고를 벗어버리기로 했습니다.
본질을 잃은 교육행정을 향하여 말해야 할 건 말하되
아가들이 나의 신앙이란 본질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그겁니다.
존경하는 우리 산남고 선생님!
우리 교실에는 언제나 우리의 사랑을 먹고 사는 이쁜 큰애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사랑받은 아가들이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어른이 됩니다.
저도 존경하는 선생님들처럼
저도 사랑하는 후배 선생님들과 함께
언제나 애기들 곁에 있겠습니다.
경력 37년 근가 5호봉에 어울리지 않는 그동안의 투정이
부끄럽습니다.
2010. 6. 28.
이방주 드림
박운용선생님은 바로 우리 연구실로 내려오셔서 함께 차를 마셨고 다른 선생님들은 즉시 답글을 보내주셨다.
*** 윤경화 선생님
그동안 맘 고생이 많으셨죠?
그래도 늘 교직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고민 하시는 선생님 모습 늘 존경합니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도요.
이렇게 속앓이를 많이 해야한다는 것을.
저 또한 그러한 속앓이가 두려워 미리 할 말을 안하고 살지는 않나 반성하게 됩니다.
다시 마음을 아이들에게 돌리셨다니 감사해요. 힘내세요.^.^
*** 박해순 선생님
전에도 늘 존경했었습니다.
이번 일도 더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이 저에게는 큰 행운입니다.
그 행운~ 오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에서의 느림보~ 정말 부러운데요.
저두 이번 여름휴가철 갑니닷~~!
늘 감사드립니다.
*** 목진은 선생님
아이들을 예뻐하시는 선생님의 그 큰 마음이 아이들을 '정말로' 예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그 큰 마음을 배워서 저도 아이들을 온마음으로 사랑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 이경연 선생님
......
선생님, 힘내세요...
늘...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 일러주시는 것 뿐 아니라 선생님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없고 소소한 일상들도 저에게는 가슴으로 와 닿으며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비록 지금의 현실이 아가씨 때의 그것처럼 자유롭고 편한 것만은 아니지만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기쁨과 보람으로 시작한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지만 다시 또 찾은 희망이 다시금 저를 웃게 합니다. 이런 것들... 선생님께서 저에게 안겨주신 선물입니다...
저의 진심이 선생님께 작은 힘이라도 더해드렸으면 합니다...
*** 연제철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니 오히려 제 자신이 더 부끄러워집니다.
우둔한 후배들을 위해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세요
후배들은 선배님의 제자를 향한 참사랑과 교직의 순수한 열정을
존경합니다.
건강하고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 이효정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 배종구 선생님
늘 선생님 한 말씀이 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을 주십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아이들이란 생각 동감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큰아빠처럼 여전히 존경하며 따르는 아이들도 있구요. 부럽습니다.
산남고의 보배로우신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많이 배우면서 교사로서의 희망과 책무를 잊지않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남기엽선생님
엉아는 우리의 HOPE 입니다. 늘
*** 유승순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산남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에게 영향을 받아 커나갈
저 여물지 않은 아이들에게
참된 햇살과 양분을 주었는지요.
선생님 힘내시구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는 행운이 제게 주어짐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 남주완 선생님
속상하신데.. 아무 역할도 못해 드리고...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 손홍정 선생님
저는 어제 순회라서...오늘에야 선생님의 글을 봅니다.
저 또한 선생님이 계셔 행복한 이 중의 하나랍니다.
더운 오늘도 홨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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