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우리 민족
이제 산야에는 나무들이 화려했던 옷을 벗고 겨우살이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나뭇잎은 다 떨어졌는데, 아직도 눈길을 끄는 과일이 있지요. 그것은 바로 감입니다.
감나무는 겨울의 문턱에서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에 주황색 열매를 주렁주렁 걸어놓고 있습니다.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그리시는 여러분의 고향의 풍경화 속에도 감나무는 틀림없이 서있을 겁니다.
감나무는 풍경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만큼 한국적인 정서를 잘 드러내는 과일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왜 다른 과일보다도 감을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생각해보면 다른 과일에 비해 감이 그렇게 신선하고 달콤한 맛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감은 겉으로 맛을 요란스럽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깊으면서도 은은한 맛을 내지 않던가요? 게다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약재로 쓰일 뿐 아니라, 우리 고급 음식의 재료로 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이유 중에 감나무가 주는 가르침도 또한 가벼이 여길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 오늘은 감의 교훈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첫째, 감은 씨가 꼭 6개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 여섯이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적 의미를 소중하게 여기어 왔지요. 가령 그것은 육판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에 감을 올리면서 육판서 같은 인재가 태어날 것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꿈이라도 꾸어보는 소박한 정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둘째, 한 번이라도 열매를 맺은 일이 있는 감나무를 꺾어보면 속에 검은 심이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되고 큰 감나무라 할지라도 열매 한번 맺어보지 못한 나무는 이 검은 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열매를 맺으려고 어미인 나무가 속을 태운 흔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감나무의 자식 사랑에서 부모의 사랑을 되새길 수 있지 않을까요?
셋째,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감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꿀 같은 맛을 지닌 단감도 씨를 심으면 단감나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감도 씨앗을 심은 데서 절대로 똑 같은 감나무가 나지 않습니다. 돌감나무가 나거나 고욤나무가 나지요. 나무가 2~3년 쯤 자랐을 때, 목적하는 다른 감나무 가지를 잘라 접목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 새 순이 돋아 바라는 감나무가 되고 감이 열립니다.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나 선인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배움의 과정에서도 생가지를 도려내고 새순을 접붙이는 것 같은 아픔이 따르게 마련이잖아요..
곶감이 되는 과정을 보면, 이것은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곶감에서 볼 수 있는 고졸한 맛은 학식과 인품을 갖춘 성인의 위엄과도 같지 않습니까?
감에 대한 우리 민족이 갖는 의미를 빠짐없이 다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몇 가지만 보아도 감은 분명 우리민족이 살아온 생활의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과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일 오후에는 시골로 한 번 나가보세요. 그리고 좀 더 깊은 생각으로 감나무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CBS (FM 91.5 MHZ) <오늘의 충북>(3분 칼럼) 2008. 11. 27(목요일) 오후 5:35 방송
http://blog.naver.com/nrb2005(느림보 이방주의 수필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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