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고추와 도시인

느림보 이방주 2008. 7. 13. 16:28

   주방에서 풋고추 다지는 소리가 흥겹다. 잘게 부서지는 조화로운 음향으로 입안에 침이 돈다. 이렇게 후덥지근한 날은 수제비가 제격이다. 비록 아파트 주방이지만 수제비가 끓어오르면 황토 바른 고향집 부뚜막 냄새가 난다. 수제비는 다진 풋고추를 넣어야 맛이 난다. 약이 잔뜩 올라서 끄트머리가 단단해진 풋고추를 도마에 놓고 다지면 코끝이 맹맹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입안이 다 녹아내릴 만큼 뜨거운 수제비 위에 풋고추다짐을 한 숟가락 얹는다. 땀이 줄줄 흐른다. 매콤한 냄새가 코에 ‘확’ 불을 지른다.

 

수제비에 열무김치를 곁들이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열무김치를 소담하게 한 젓가락 집어 뜨거운 수제비국 위에 올려 본다. 김칫국에 나자빠져 있던 풋고추가 함께 올라온다. 풋고추가 물구나무를 선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먹음직스럽다. 땀은 그치지 않고 흐른다. 그러나 시원하다. 이것이 한여름의 참맛이다.

 

고추장은 된장과 함께 우리 민족이 누려온 장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추장은 여러 가지 재료들이 한데 어울려 매콤하면서도 구수하고, 짭짤하면서도 달콤한데다가 깐작깐작 혀를 유혹하는 맛의 조화를 환상적으로 이루어 낸다. 자연에서 얻은 태양초의 붉은 색에다가 엿기름으로 이루어낸 윤기도 시각적인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으로는 고추장이 빼놓을 수 없다. 굵은 멸치를 잘 다듬어서 듬성듬성하게 넣어 볶은 고추장은 그 중에도 최상급이었다. 우선 밥을 한 삼분의 일 쯤 먹어 도시락 귀퉁이를 비워야 한다. 그 빈자리에 볶은 고추장을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숙달된 바텐더처럼 멋진 동작으로 흔들어대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추장 비빔밥이 된다. 그 추억의 맛은 지금도 기억 속에 아련하다.

 

어린 시절 나는 가끔씩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그 중에서 고추 따는 일이 제일 싫었다. 고추는 연중 제일 더울 때 딴다. 고추밭에 들어서면 한낮의 땡볕에 뜨거워진 흙이 고추냄새를 실어서 얼굴을 향하여 훅훅 달아 올렸다. 고추를 딸 때는 앉을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다. 허리를 약간 구부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을 해야 한다. 허리가 아프다. 장딴지에 알이 밴다. 가슴에서 불이 확확 일어난다. 키가 작은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다가 곯아터지는 고추를 움켜잡기라도 했다가는 고추국물에 손을 절여야 한다. 무의식중에 이 손으로 소변을 보았다가 낭패를 본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팽개치고 달아날 수가 없다. 뒷일을 몽땅 어머니가 감당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추장이나 김장에 쓸 고추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태양열에 말려야 한다. 그래야 빛깔이 좋고 매콤한 냄새가 향기롭다. 처음 따온 고추는 그늘에서 적당히 곯게 한 다음 볕에 내놓아야 하는데, 너무 곯거나 덜 곯으면 희끗희끗하게 얼룩진 희아리가 된다. 장마철에는 농민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고추를 널어놓았는데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이런 낭패도 없다. 잘 익은 고추, 잘 마른 고추 하나하나가 다 농민의 조바심이다.

 

태양열에 잘 마른 고추는 약간 검붉은 색을 내면서 투명하다. 어머니는 잘 말라서 황금색 고추씨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는 고추를 멍석에 펼쳐 놓고 다듬으셨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어머니의 눈물이 매운 고추 냄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파를 다듬거나 양파를 다듬을 때도 눈물을 흘릴 핑계로 삼으시는 눈치이셨다. 고추는 처음에 그 이름이 고초(苦椒)’였다고 한다. 고추는 그냥 고추가 아니다. 고추는 우리 어머니들의 고초의 열매이다.

 

최근에 시골에서 근무한 2년 동안, 거기서 어머니의 눈물을 다시 보았다. 고추밭 고랑에 엎드려 있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농사는 결국 눈물로 짓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농민들은 뙤약볕 아래서 생각의 강을 건너고 또 건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꾸는 꿈에 다리를 놓아주는 농정은 아예 없다. 좌절과 눈물과 배반감만 주어질 뿐이다.

 

풋고추다짐을 듬뿍 넣은 수제비를 훌훌 잘도 먹는다. 나는 어느새 고추를 다듬으면서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를 잊고 산다. 나는 어느새 생각 없는 도시인이 되어 버렸다. 배부르게 먹고 우습게 살진 도시인으로 변해 버렸다.

 

괴산으로 넘어가는 모래재를 삼분의 이쯤 올라가면 고추를 안고 서 있는 임꺽정을 만난다. 한 손으로는 제 키보다 더 큰 고추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고추 먹은 울력으로 솟구치는 주먹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백정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울분은 찾아볼 수도 없다. 아니 흐뭇하게 미소를 띤 얼굴이다. 게다가 볼 살까지 오동통하다. 해학적으로 변용된 모습이지만, 고추 농사를 짓는 농민도 모두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바심과 고초로 지은 고추가 농민에게 마음 놓고 주먹을 불끈 쥘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으면 좋겠다. 고추를 먹는 모든 도시인이 그런 헤아림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후덥지근한 오늘의 수제비, 풋고추다짐의 매콤한 맛에 한여름 더위가 달아난다.

                                                                                                                       (2008.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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