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잔반통에 버림받은 고등어 몇 도막이 뒹군다. 안타깝다. 아이들은 왜 참맛을 모르는 것일까? 아이들은 코다리매콤강정이나 이면수어튀김, 생선가스 같은 것을 더 좋아한다. 요즘 엄마들은 구이나 졸임보다 튀김으로 아이들의 입맛을 길들인다. 그렇게 길들여 놓고도 어른들은 아이들의 입맛이 왜 방황하는지 모른다.
모롱이를 돌아서면, 자반고등어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늘거리는 아카시 이파리에 저녁노을이 물결처럼 부서질 때, 어머니는 풍로에 숯불을 피우고 자반고등어를 구우셨다. 고등어살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석쇠에 엉겨 지글지글 끓는다. 벌건 참숯불에서 화기가 오를 때마다 기름기 섞인 노란 소금기가 배어나온다. 살이 노릇노릇해지며 껍질에 기름 거품이 일었다 꺼지면, 그 고소한 냄새는 사람을 더욱 황홀하게 한다. 고등어살에 석쇠의 마름모무늬가 갈색으로 그려지면 상 위에 오른다. 할머니가 떼어 밥숟가락에 얹어주시는 고등어살 한 점 때문에 거친 보리밥도 매끄럽게 넘어간다. 그래도 한 번도 내손으로 상 위의 고등어를 집어 먹어보지 못했다. 아버지 헛기침 때문이다. 밥을 한 숟가락 실하게 떠서 한참을 기다려도 할머니 기척이 없으면, 눈물만 얹어 입안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보약처럼 받아먹은 짭쪼롬한 맛이 지금도 내 살갗에서 배어나오는 듯하다. 지금도 할머니 산소에서 쑥을 뽑다 보면 쑥향이 참숯불에 익어가는 고소한 고등어향이 된다.
모내기철이 오면 품앗이를 한다. 일에 지쳐 잃어버린 일꾼들의 입맛은 고등어무조림이 감당한다. 땅에 묻었던 무를 파내어 칼로 쭉쭉 쪼개 양은솥 밑에 깔아 놓는다. 손질한 고등어 도막을 무 위에 얹고 고춧가루를 실하게 뿌린 다음, 고추장 국물을 부어 간을 맞춘다. 여기에 파나 양파를 얹으면 이미 사치스러운 요리가 된다. 어머니들이 들로 못밥을 내간다. 품앗이 일꾼의 자식들도 졸랑졸랑 따라나선다. 일꾼들에게 다른 반찬은 무더기로 담아내지만, 고등어무조림만은 한 도막씩 몫을 나눈다. 일꾼들은 무만 남기고 고기 도막은 떡갈잎에 싸서 아이들에게 건넨다. 아이들은 집으로 달려간다. 떡갈잎에 싸온 고등어를 할머니 점심상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고추장국물이 밴 무에서 나는 비린내만으로도 가볍고 흐뭇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들에게 어른 모시기는 음식 봉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는 고등어를 꽤나 좋아하셨다. 옛맛이 그리운 아버지는 외출만 하면 고등어를 들고 들어오셨다. 그러나 어머니처럼 풍로에 참숯을 피우고 석쇠에 얹어 지글지글 구워드릴 수가 없었다. 팬에 올려 가스 불에 구워낸 반구이반튀김에서 어떻게 옛맛을 찾을 수가 있었겠는가? 또 고등어 두어 도막을 냄비에 넣고 졸여내어 어떻게 그리운 옛 맛을 느낄 수가 있었겠는가? 아버지는 옛날 생각이 나시는지 손자들에게 무던히 권하셨다. 할머니가 내게 하셨듯이 살점을 떼어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기도 하셨다. 요즘 아이들은 고등어비린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셨을 것이다. 또 밥상머리가 이미 자유화되었다는 세태도 이해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기특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그것이 할아버지의 내리사랑법이라는 것을 이해하였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자식들이 얻은 반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음식을 통하여 사랑과 정을 혀로 감각한다. 밥상머리 가르침도 역시 혀로 감각한다. 혀로 감각한 사랑만큼 진한 감동은 없다. 혀를 통하여 얻은 깨달음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우리의 전통 음식은 잔잔하고 은은하게 우리 혀를 매혹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잔잔한 정서와 은은한 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정과 사랑과 배움은 먹는 자리에서 얻는 것이 진수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하루에 두 끼씩이나 학교 식당에서 때운다. 어머니의 정도 할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가르침도 없이 그냥 정해진 일과처럼 치루는 아이들의 빈 밥상머리가 안쓰럽다. 아직도 할머니께서 얹어 주시던 짭쪼롬한 고등어살 맛을 잊을 수 없는 나는 잔반통에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지는 고등어도막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입맛에 안 맞으면 음식을 함부로 버려도 되는 아이들의 밥상의 자유가 안타깝다. 그런 아이들의 든든한 후원자인 엄마들의 의식 없는 항변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2008.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