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내리막길에서 1

느림보 이방주 2007. 1. 4. 18:49

 덕유산 향적봉의 서리꽃

 

   

그렇게 벼르던 덕유산 등산을 할 기회가 생겼다. 날씨가 매섭게 춥고 눈보라가 차갑게 몰아쳤지만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곤돌라에서 내려 한 이삼십 분 정도 걸으니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이다. 능선 길은 바람이 뺨을 찢어놓을 것 같다. 안개가 뿌연 우유가 되어 골짜기마다 흥건하다. 눈이 잡목의 아랫도리를 덮었다. 십 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물에 젖은 바람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꽃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상고대라고 부른다. 나는 그냥 서리꽃이라고 하고 싶었다. 안개는 마른 풀잎이나 나뭇가지에도, 솔잎에도 묻어 하얗게 꽃을 피웠다. 심지어 육중한 바위도 하얀 눈꽃에 덮여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처럼 보인다.

 

능선을 한 네 시간쯤 걸었다. 능선은 굴곡이 심하다. 한 이십 분 올라가면 한 십오 분 정도 내리막길이다. 오르막길은 짧아서 숨이 가쁘거나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내리막길은 얼음길이라 언제나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젠을 신었지만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한낮이 되어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 쬘 만도 한데 안개는 엷은 막이 되어 햇살을 가로막았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마지막 내리막길은 경사가 급하고 자갈이 많다. 아이젠 신은 발로 주먹만큼 한 자갈을 밟으면 발목이 뒤틀린다. 아이젠을 벗어야 했다. 길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속에서 얼음이 녹아 진흙이다. 속은 얼음이고 겉은 진흙이거나 낙엽이다. 힘이 다 사위어버린 다리가 후들거리고, 뭉개졌을 것 같은 발가락 때문에 걸음이 꼬인다. 한발을 내려디디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무릎이 아프다. 이런 내리막길을 앞으로도 한 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니 앞이 캄캄하다. 배고프고 목이 탄다. 배낭에서 물이라도 꺼내 마시려면 일행은 저만치 도망간다.

 

내리막길은 이렇게 힘들다. 인생의 내리막길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꼭 한 번은 미끄러져 넘어질 것만 같았다. 바보처럼, 넘어지더라도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사회에서의 시간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내리막길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한참을 내려오다가 진흙과 낙엽 속에 복병처럼 숨은 얼음장을 발견했다. 에라,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야. 힘껏 내려디디며 뛰었다. 그 순간 나는 도막난 나무 등걸처럼 얼음이 녹아 질척거리는 진흙 위에 나동그라졌다. 누가 볼세라 얼른 일어섰다. 그러나 엉덩이가 진흙투성이다. 면장갑을 벗어 차가운 계곡물에 진흙을 씻으면서 참으로 처량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 다치셨어요?’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는 매정하게 발길을 돌린다. 엉덩이 저 먼 곳에는 손이 잘 닿지 않는데, 함께 씻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없이 외로웠다.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이렇게 넘어지면 함께 씻어줄 사람이라도 있을까? 아니면 다들 그냥 웃으며 지나갈까? 모두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진흙을 자신의 손에 묻히면서 씻어줄 사람이 있을까? 내게 묻은 진흙을 ‘그냥 흙일 뿐’으로 이해해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 그것은 내가 씻어줄 수 있는 사람만이 그도 나를 씻어줄 수 있을 것이다. 내리막길이 산행의 모든 것을 말해 주듯, 삶의 내리막길도 삶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바지를 다 씻고 나니 사람들은 벌써 모롱이를 돌아 내려갔다. 풀렸던 다리에 힘이 솟았다. 뛰어도 돌길에 휘청거리지 않았다. 한 번의 시련이 다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몸에 묻은 진흙을 씻는 괴로움을 겪었지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모양이다. 나를 앞질렀던 사람들을 다시 앞질렀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도 내가 넘어져 있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나는 좌절하여 쉬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앞만 보며 달려온 세월 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추구한 가치는 현실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엉뚱한 것일지도 모른다. 넘어져 쉬면서라도 그런 나를 돌아보지 못한 지난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역사는 언젠가 나의 길을 지지해 줄 것이라는 믿는다.

  

산악회에서 끓인 술국에 소주를 마시면서 집에 있는 아내를 생각했다. 넘어지면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일까? 부부간에도 진흙까지 이해해 주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그러나 그냥 믿어보았다. 그것은 내가 그를 씻어줄 수 있을 때만이 그도 날 씻어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리막길에서의 외로움을 혼자 달래었다.

 

그 때 전화가 운다. 아내는 바로 옆에서 말하듯 속삭인다.

“떡국을 몇 시쯤 끓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골 육수에 끓인 뜨끈한 떡국으로 덕유산 눈바람에 얼어버린 나를 녹여주려나 보다. 그래 맞아! 오늘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내리막길도 그렇게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 온몸이 사르르 녹아든다. 조용한 쾌감이다.

(2007. 1. 3)

2008. 2. 22. 중부매일 에세이의 뜨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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