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옮겨온 이화령의 가을
2006. 11. 14.
5시에 이화령에 올라갔다.
어둑어둑해지는 것 같아서 랜턴을 목에 걸고 갔다.
내가 항상 되돌아오는 반환점까지 40분이 걸렸는데 오늘 25분 걸린다.
한참을 더 올라 갔다.
도로 아래로 연풍 고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멀리 악희봉, 마분봉, 그 아래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연풍 나들목 모습이 그림이다.
들판도 이제 휴면에 들어 간 것 같다.
들판을 지나면, 괴정리 초등학교를 지나 은티로 들어가는 길이 새끼줄 같다. 그리로 계속 들어가면 구왕봉과 희양산이 나온다. 구왕봉과 희양산이 만들어낸 은티마을 입구에 낙락장송이 눈에 보일듯 하다. 은티 마을 골짜기는 女根을 닮았다 해서 들어가면 남성의 기가 시들어 버린다고 한다. 울창한 장송 그 안에 女根谷이 의미가 재미있다. 마을 어귀에 男根石을 세워 놓고 해마다 致誠을 해서 은티의 남성이 그나마 유지되어 사는 모양이다.
희양산은 시루봉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이만봉을 거쳐 백화산에 이르면 백두대간은 1000m가 넘는다.
분지리로 들어가는 계곡이 무릉도원의 석문을 여는 듯 하다.
이제는 거기도 3번 국도,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굴길이 두 개나 뚫려 옛 호랑이 나오던 분지가 아니다.
나무들은 온통 붉고, 노랗고---
아직 초록을 벗지 못한 놈도 있고
이미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뼈다구를 드러낸 놈도 있다.
억새는 이미 씨나래를 다 흩어버렸는가? 이름처럼 억센 잎줄기만 바람에 칼가는 소리를 내고 울고 있다. 시드는 가을의 풍요가 스산하다.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산수유가 소복하다.
홍역하는 아이 열꽃처럼 붉어 곯아 떨어지기 직전이다.
두세 가지 꺾었다.
진한 갈색으로 퇴색된 채 매달려 있는 이파리 한 장도 놓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한산한 이화령 구길에도 가끔씩 차가 지나간다.
말똥바위 뾰족한 봉우리 너머로 노을이 구름 한 장을 검은색 실루엣으로 남기더니 꼴깍 숨을 거두었다.
이내 돌아내려가는 산모롱이가 어둑어둑하다.
길가에 참나무, 키 큰 전나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낯선 산길에 선비를 위협하는 산적이라도 굴참나무 잎을 가랑이에 매달고 달려들 것 같다. 바람에 쌓인 낙엽이 부스스 날린다.
랜턴을 이마까지 올리고 불을 켰다.
전등에서 쏟아내는 불빛이 숲 사이를 헤집는다.
갓길을 조금씩 뛰었다.
산수유 열매 하나가 떨어진다.
가을을 한 알 놓친 것만큼 아쉽다.
다시 걸었다.
모롱이를 도는데
전화가 소리를 지른다.
산 속에서 울리는 피아노의 선율----
김선생님이다.
삽겹살을 먹자는 것이다.
같이 늙어가는 여선생님들과 소주 한 병,
삽겹살,
된장,
아까운 하루라고 의미를 두려 애쓰지 말자.
의미는 찾으면 찾을수록 도망가는 것-----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돌아오는 길, 소주에 엷게 젖은 상념
어둠 속에서도 느티나무 고운 낙엽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고적한 음악처럼 들린다.
이화령에서 가져온 산수유를 사택 책상 책꽂이에 꽂아 보았다.
전날 주워온 모과가 산수유 붉은 빛깔 때문에 더 노랗게 보인다.
더할 수 없이 빨갛게 익은 사과를 하나 옆에 놓아 보았다.
노랑 모과 두 개,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검게 숨진 모과 한 개, 붉은 사과.
그리고 산수유 가지가 그런 대로 그림이 된다.
책을 읽다가 문득 바라본다.
이화령의 가을이 한눈에 보인다.
연풍의 산야가 한눈에 보인다.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
내 사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아니,
내 삶의 가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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