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서울로 출근하는 딸아이를 시외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었다. 이런 추위에 짧은치마가 안쓰럽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 시절을 잊어버린 아비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에도 짧은치마를 입을수록 아이들은 더욱 젊음의 윤기가 흐른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림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어제 시작했는데 삼분의 이쯤 읽었다. 그러나 그림을 금방 알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에 대한 나의 무지를 뼈아프게 발견한다. 자연을 읽을 줄 알았던 선인들이 한국화에 담아 전하는 깊은 삶의 철학을 이제까지 보지 못하고 지내온 것이다. 그림만 보이고 진리는 보지 못한 것이다. 책을 곁에 두고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圖와 書는 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세상 만물은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알지 못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한국화를 겉만 핥은 것이다. 윤기없는 삶을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다.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등 겉으로만 그저 그렇게 보아 왔던 그림들에 대하여 세밀한 해설과 거기에 담긴 의미와 심오한 삶의 철학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들으니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런 이야기들을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미치(美癡)에 가까운 나로서는 넘기는 쪽수마다 새롭다. 이 나이에도 하나씩 알아간다는 것은 바로 삶에 윤기를 바르는 일이다. 물기 흐르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읽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필자는 <고사관수도>를 말하면서 한국인의 ‘물’에 대한 사고를 비쳤다. 나는 필자의 물에 대한 언급에 뼈저리게 공감했다. 인간은 정액이라는 물속에서 씨앗으로 태어나고, 자궁의 양수 속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싹이 터 사람의 꼴이 된다. 사람의 꼴을 이룬 다음에는 그림 속의 고사처럼 물을 바라보며 삶의 철학을 터득한다. 곧 물의 원리에 따라 물의 문화와 문명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고 한 그의 견해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로는 모자랄 정도로 우리네 삶을 꼭 집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대 후반, 그 젊은 날에 한동안 주역에 빠져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훈민정음 제자의 역학적 생성원리를 공부하다가 모음자가 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그 후 시장에서 발견한 천기대요란 고서에서 하도를 발견하였다. 하도에서 훈민정음의 모음 글자 모양을 찾아내고 기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 머리와 단순한 집념으로는 도저히 그 상생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물의 원리였다. 곧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서 물〔河, 洛〕을 떼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圖書이다. 세상의 원리를 그리거나 적은 것이 바로 책이란 말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책에는 물기가 없다. 나의 독서에 윤기가 사라진 것이다. 한 쪽을 읽고 책장을 넘기려면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야만 넘어간다. 때로는 읽지도 않았는데 분수없이 두 장씩 넘어간다. 넘겨도 넘긴 것이 아닌 것이다. 아니, 넘어가도 넘길 수가 없다. 한 쪽을 읽고 나서 책장을 넘기면 이미 읽은 쪽의 내용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그만큼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감동이 없는 것은 그만큼 내게서 감성이 메말라버렸다는 말일 것이다. 손가락에만 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책에도 물이 없고, 감성에도 물이 없다. 손가락에 물기가 메마른 것만큼 나의 감성에도 윤기가 사라진 것이다. 손가락이나 감성만 메마른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이 온통 메마른 것이다.
물에서 태어나 어머니 자궁의 양수 속에서 흠뻑 젖어 살다가 물이 오를 대로 올랐던 젊은 날은 다 가고, 이제 손가락에 물기도 말라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감성이 메말라 이제는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이 메마른 손가락으로 이 문명의 한 구석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어떻게 문명의 역사를 넘겨야 하나? 욕망은 날로 더 두터워지는데 이 메마른 손가락을 어찌 해야만 하나?
찬바람 속으로 애비를 애태우며 출근한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어요.”
기계 속에서 들리는 음성도 촉촉하다. 아이들은 추위 속에서도 물기가 그대로 살아 있다. 생기가 넘친다. 그래도 어찌 할까나 나의 이 메마른 손가락을…….
(2007. 1. 2.)
강희안의 고사 관수도
중부매일 에세이의 뜨락 게재(2008.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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