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서리꽃 사이에서
오늘이 지나면 또 한해가 간다. 내 삶의 쉰다섯이란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내 작은 서재 서창을 열어놓고 아파트 숲 사이로 지는 마지막 해의 노을 바라본다.
내 소망이 꽃이라면, 내 삶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면, 나는 올해 어떤 꽃을 피웠을까? 어떤 색깔의 꽃을 피웠을까? 어떤 모양의 꽃을 피웠을까? 어떤 향기를 품은 꽃을 피웠을까? 아무런 꽃도 피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작고 보잘것없는 꽃이라도 피웠다면, 내가 피운 꽃에는 어떤 벌나비가 날아들었을까? 벌나비는 내가 피운 꽃에서 어떤 향기의 꿀을 날라 갔을까? 내가 피운 꽃에도 밤이 오면 아름다운 별빛이 내려앉았을까? 내가 피운 꽃에도 달빛이 하얗게 묻어났을까? 내가 피운 꽃은 어떤 모습으로 시들어 떨어졌을까? 그 꽃이 지고 나서 어떤 열매가 맺혔을까?
내가 꽃을 피우고 벌나비를 부르고 열매가 맺혔을 때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그 아래 길이 생겼을까? 향기로운 열매를 맺어 향기로운 꿈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모여들었을까? 내가 꽃을 피우고 벌나비를 부르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땅에 떨어질 때는 어떤 소리가 났을까? 어떤 모양으로 뭉그러졌을까?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열매를 주워갔을까?
아니 그런 소망은 헛된 것을 아니었을까? 아니 꽃이나 피웠을까? 아니 꽃을 피웠다 하더라도 향기나 있었을까? 아니 향기가 있다 하더라도 벌나비나 한마리라도 와 주었을까? 아니 밤이 되어도 별빛이 지나치기나 했을까? 아니 열매나 제대로 맺혔을까? 아니 익어 절로 떨어지기나 했을까? 아니 그 아래 길이나 생겼을까? 아니 사람 같은 누가 찾아오기나 했을까?
옛날 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지어 주실 때, 주변을 꽃답게 하는 사람이 되라는 소망을 가지셨는데, 내가 피운 꽃으로 주변을 아름답게 하고 풍요롭게 하라는 그런 소망을 가지셨을 텐데, 그런 ‘꽃다울 芳, 주루周’인데 과연 그런 아버지의 소망이 불쌍한 소망은 아니었을까?
나는 이 밤이 두렵다. 이렇게 가는 이 한 해가 두렵다. 마지막 밤 같아서 두렵다. 꽃 한 송이도 피우지 못한 것 같아 두렵다. 꽃을 피웠다 하더라도 꼭 향기도 없는 꽃일 것 같아 두렵다. 향기도 없어 열매도 없고, 열매도 없어서 *‘복숭아나 오얏나무 아래에는 절로 이루어진다.’는 길도 없는 그런 꽃일 것 같아 두렵다.
나의 한 해, 나의 나무에는 별빛 한 줄기 없는 그런 어둠만 있었을 것 같아 두렵다. 아, 나는 이 밤이 두렵다. 별빛도 없는 이 밥이 너무도 두렵다. 아니, 고독하다. 보내면 다시 잡을 수 없는 쉰다섯의 이 밤이 눈물 나도록 고독하다. 한없이 고독하다.
(2006. 12. 31)
* 桃李不言이나 下自成蹊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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