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정선의 여름 1

느림보 이방주 2004. 8. 10. 08:35

1. - 프롤로오그 (장연 대학찰옥수수) -

 

정선에 가고 싶었다. 정선에 가면 산과 물이 변함없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또 예스러운 우리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산은 여전히 푸르고 강물은 여전히 쉼 없이 하얀 자갈을 굴리며 흐를 것 같았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예전 그대로 흙과 돌로 빚어 만들었고, 먹고 입는 것들이 모두 예전처럼 정선의 흙에서 뿌린 내린 것들일 것 같았다.

 

그래서 없는 시간을 쪼개서 8월 6일, 1박을 예정하고 아내와 친구 내외와 함께 떠나기로 했다. 사실 문화 탐방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하고, 함께 가는 사람들의 관심이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내와 친구 내외와 떠나는 여행은  대개 그냥 눈요기만을 위한 관광으로 끝나기 쉽기 때문에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고장에 비해 토속적인 음식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가는 날이 5일장인데다가 일행 네 명이 모두 토속적인 먹거리에 대한 특별한 안목이 있어서 미리 우려했던 것보다 오히려 먹거리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한국수필작가회 홈페이지에 음식 이야기 연재를 맡은 나로서는 여간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니었다.

 

나는 운전에 부담이 적으면서도 자연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택했다. 청주에서 괴산을 거쳐 장연 느릅재를 넘어 내려가다 보면 길 양편에 옥수수를 파는 원두막이 있다. 그 자리에서 가마솥에 쪄서 팔기도 하고, 방금 산밭에서 따온 옥수수를 자루에 한 30개씩 담아 판매하기도 한다.

 

대학 찰옥수수는 이곳이 고향인 충남대학교 교수 최봉호 박사가 개발하여, 마땅한 소득 작목이 없던 고향사람들에게만 신품종으로 공급하여 독점 재배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장연면에서만 연간 30억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니 고향에 대한 대단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머문 원두막의 할머니도 작년 옥수수 철 한 보름 만에 1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대학 찰옥수수의 진미는 이곳 느릅재로부터 수안보로 들어가는 삼거리를 지나는 일대의 간곡리에서 생산된 것만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전국 각지의 대학찰옥수수의 실체를 알만하다. 옥수수의 본고장이라는 강원도 정선의 옥수수도 억세고 딱딱해서 이곳의 옥수수 맛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단골로 들르는 할머니에게 옥수수를 부탁하니 산밭에서 금방 따와서 삶았다는 옥수수를 아직도 장작불이 타고 있는 가마솥에서 꺼내 주었다. 나는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통을 먹을 만큼만 쉬어 가기로 했다. 대학찰옥수수는 알이 가지런하고 희고 윤기가 자르르 흘러서 계곡물에 비누세수하고 촉촉이 물기 묻은 산골색시의 하얀 볼처럼 청순하다. 터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만지면 끈끈하다. 껍질이 얇아서 치아가 약한 사람도 입에 대기만 하면 톡톡 터져서 씹는 무담이 없다. 게다가 껍질이 얇아 이에 끼지도 않아 먹고 나도 입안이 개운하다. 설탕 맛이 아닌 심산의 다래맛 같은 단맛, 차좁쌀로 빚은 인절미 맛 같은 고소함, 산골바람 같은 시원하고 그윽한 맛이다. 쉬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돌아서면 바로 생각날 정도로 소화도 잘 된다.

 

게다가 괴산 장연 사람들의 인심은 대학찰옥수수 맛만큼이나 구수해서 한 자루 사다가 선물한다면 그들의 인심을 고스란히 전하는 셈이어서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도 돌아오는 길에 한 자루씩 사기로 하고 페달을 밟았다. 뒷좌석에서 여인네들은 아직도 옥수수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다.

 

우리는 단양을 거쳐, 영춘, 영월의 하동면, 녹전을 지나 정선군 신동읍에서 약간 헤맸다. 지도에 나와 있는 지방도가 공사중이라 폐쇄 되었는데도 안내판이 없어 고개를 중간 쯤 올라갔다가 되돌아 와야 했다. 그러나 그 절경과 맑은 공기 때문에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았다. 다시 민둥산 입구를 지나 동면의 몰운대, 소금강에서 맑은 물에 발을 담근 후 화암동굴을 구경했다. 화암동굴은 금을 채굴하던 갱도와 자연 동굴이 이어져 훼손되지 않은 테마가 있는 동굴이었다. 석공예 단지를 거쳐 드디어 정선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은 동강을 들러 김삿갓 계곡, 의풍을 거쳐 괴산으로 되짚어 오기로 했다.

 

정선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 여러 가지 감흥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 대신 정선의  황기 족발, 메밀로 만든 음식, 감자떡, 곤드레밥, 수수부꾸미, 올챙이국수와 돌아오는 길의 괴산의 올갱이국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먹거리라는 것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200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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