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딸꾹질 없는 떡먹기

느림보 이방주 2004. 7. 18. 11:47

 ‘떡줄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는 몇 가지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남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미리부터 제 몫을 챙기려 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뜻 외에도, 떡을 귀한 음식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눌 사람과는 쉽게 나누어 먹었을 것이라는 점과, 아무리 맛있는 떡이라도 물 없이 먹으면 목에 걸리게 마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떡을 먹는 데는 물이 있어야 한다. 시루떡도 그렇고, 인절미도, 그렇고 백설기도 그렇다. 물을 마시든지, 김칫국을 마시든지, 무콩나물된장국을 곁들이든지 해야 된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이 메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래서 급하게 먹은 떡은 반드시 딸꾹질을 부른다.

 

그런데 물보다 더 부드럽게 떡을 목 너머로 넘길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꿀이다. 절편이나 가래떡에 꿀을 발라서 먹으면 제대로 궁합이 맞는다. 떡과 꿀의 궁합은 묘하게 그 단어의 발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떡’의 끝소리‘ㄱ’은 ‘ㄷ’,‘ㅂ’등과 함께 끝이 막히는 소리이다. 그러나 ‘ㄹ’은 물이 흐르듯이 저절로 길게 소리 나는 유음이다. 곧 ‘떡’, ‘약’같은 단어는 짧게 막히는 소리가 나고, ‘꿀’, ‘물’, ‘술’은 길게 흘러가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짧게 막히는 소리가 나는 음식들은 대개 목에 걸리는데, 길고 부드럽게 흐르는 소리가 나는 음식은 정말 술술 잘도 넘어간다. 음식의 속성에 따라서 생성된 우리말의 기막힌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딸꾹질 없는 떡먹기의 지혜는 떡과 꿀의 궁합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누어 줄 사람의 생각이 어떻든지 미리 김칫국물을 마셔 두어야 했던 것은 바로 우리 선인들의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떡을 먹을 때는 물이 필수적으로 따르게 마련인데도 재미있는 것은 ‘찬물 마시고 마음 돌려라.’라는 말이 있다. 누가 떡을 주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비아냥대더니, 찬물을 마시고 마음을 돌리라 한다. 이것은 미리 김칫국 마시는 사람을 핀잔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으니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찬물이나 마시고 내 떡이 아닌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경고이다. 우리의 삶의 길에는 헛된 것, 내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하여 버려야 할 욕심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수많은 떡이 있다. 먹어서 영양이 되는 떡도 있지만, 떡밥’, ‘떡값’, ‘떡고물’과 같이 먹으면 딸꾹질이 나는 떡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칫국도 마시지 않고 떡을 먹다가 낭패를 보았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떡이 민족의 세시 풍속, 경사나 애사 같은 의례에 소중하게 쓰인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의식 때마다 떡은 반드시 절차를 거쳐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상기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남의 떡, 내 떡이 아닌 부정한 떡은 낭패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떡과 물의 이름을 이미 그렇게 지어 놓았을 것이다.

 

떡은 반드시 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 떡은 반드시 김칫국을 마시고 단단히 준비를 한 다음 먹어야 한다. 김칫국을 마시는 것은 곧이어 떡을 먹을 것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공포하는 의식의 한 절차이다. 남이 볼까봐 김칫국도 마시지 않고 허겁지겁 떡을 먹으면 반드시 딸꾹질을 하게 되어 있다. 딸꾹질은 못 먹을 떡을 흘낏흘낏 남의 눈치를 보면서 급하게 먹은 사람이 더욱 심하게 하게 되어 있다. 김칫국을 마시면서 ‘과연 내 떡인가’, ‘깨끗한 떡인가’, ‘천천히 먹어도 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떡에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은 꿀이다. 먼저 김칫국을 마시고, 자신 있게 꿀을 발라가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떡의 내력을 생각하면서 먹을 수 있는 떡이어야 한다. 그렇게 먹은 떡이라야 딸꾹질이라는 뒤탈이 없다. 왜냐하면 꿀의 ‘ㄹ’이 떡의 ‘ㄱ’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자, 딸꾹질 없는 떡먹기 얘기를 했으니 이제 천천히 김칫국부터 마셔봐야겠다.  

(200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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