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8. 씨떼섬에서 에펠탑까지

느림보 이방주 2006. 8. 18. 11:09

 

2006. 7. 27

 

노트르담 성당은 씨떼섬에 있다. 한강 가운데에 있는 여의도는 황무지였다가 현대에 들어와 정치 경제의 중심으로 개발되었지만 씨떼섬은 파리의 발전의 원류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파리에서 가장 번화가인 모양이다. 노트르담성당은 씨떼섬과 쌩루이섬의 중간에 있다. 노트르담성당에서 나와 화려하면서도 조용한 골목을 걸어 나가니 바로 차량이 질주하는 거리를 만난다. 파리의 시청사 같은 관공서가 있는 쪽에서 씨떼섬을 건너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너른 길이다. 우리는 길을 건너 번쩍번쩍하는 건물 앞에 섰다. 이곳에는‘꽁씨에르쥬리’라는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를 비롯한 왕족이 단두대로 끌려가기 전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대문이 철창으로 굳게 닫힌 이 건물은 아직도 재판정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한다.

 

꽁씨에르쥬리를 막 지나면 파리의 낭만과 젊은이들의 사랑이 숨겨있는 뽕네프 다리에 이르게 된다. 다리는 크지 않지만 대리석으로 육중하면서도 하나의 예술품처럼 아름답게 만들었다. 인도가 특히 넓고, 다리 위에서 세느강의 푸른 물결을 굽어볼 수도 있으며, 소녀의 예쁜 레이스 같은 꽃으로 다듬어진 씨떼섬의 꼭짓점에 있는 공원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울긋불긋 색칠한 유람선과 다리 건너 먹자골목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인도가 특히 넓은 다리 위로 차량들조차 천천히 달려 사람들의 은근한 마음을 시끄럽게 하지않았다. 이 다리는 아름답게도 지어졌지만, 한 노숙자 사내와 시력을 잃어가는 비운의 여인의 운명적 사랑을 다룬 ‘뽕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씨떼섬 뽕네프 다리에서 아들과 아내

우리 내외는 난간에 앉아 씨떼섬과 세느강의 맑은 물, 물 위에 미끄러지는 유람선을 바라보면서 문득 젊음으로 돌아간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착각도 잠시 다시 일어나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우리는 루브르박물관을 지나 조각 예술의 공간인 튈르리 공원, 콩코르드 광장으로 향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이튿날 로댕 박물관과 함께 관람 계획을 하고 있었다. 콩코르드 광장은 한 건축가가 루이 15세에게 바치기 위해 건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당시에 그 동상은 군중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런 사건을 보면 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민중의 마음속에서 이미 파괴되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 이 광장에 교수대가 설치되면서 혁명의 광장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루이 16세를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이 여기서 처형되었다고 전해진다. 콩코르드 광장에서서 쏟아지는 분수를 바라보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는 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처형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콩코르드 광장의 분수

콩코르드광장을 지나 개선문이 있는 에뜨왈광장까지 약 2km의 샹젤리제 거리는 지친 우리에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곳이 경제와, 예술과, 문화의 중심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풍스런 거리는 화려하고 번화했다. 특히 구찌, 루이비통, 등 말로만 듣던 간판들이 보여 유행의 한가운데 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거리에는 많은 노천카페들이 있어서 점심시간으로는 많이 늦었는데도 사람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젊은이들만 노천에서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긋한 중년들이 더 많았다. 사실 우리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아주 가까운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체면과 규범의 길에서 조금씩 탈선하는 것이 낭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파리의 중년에게 야릇한 부러움을 느꼈다. 규범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 마음의 해방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삶의 진정한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 구찌

개선문이 있는 에뜨왈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 같이 도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주변에는 비둘기가 날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미소를 띠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약간 떨어져서 바라본 개선문은 그림에서 본 것보다는 훨씬 웅장하고 멋있으며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개선문은 1805년 나폴레옹이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연합군과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니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30년이나 긴 세월 동안 짓느라 정작 나폴레옹은 완성된 작품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파리의 에뜨왈 개선문

개선문 옥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하도를 통해 개선문 아래에 가보았다. 혁명과 전쟁의 모습을 돋을새김으로 표현한 섬세한 솜씨가 놀라게 한다. 특히 1792년 의용병들의 출정을 그렸다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에 새긴 일명 라 마르세예즈는 금방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망대에 올라 파리의 모습을 조망하고 싶었으나, 에펠탑에 올라 더 높이서 내려다 볼 수도 있고 시간도 바빠 그만두었다. 또 입장료도 만만치 않았다.

 

동양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기메 박물관 옆에 두고 알마 다리 아래의 승선장을 지나 에펠탑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사실 나는 에펠탑보다 기메 박물관을 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한국관이 있고, 한국관에는 고려시대의 명품 수월 관음도가 소장되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수월관음도는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법을 설하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기메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한다.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가 1890년 프랑스에 건너가서 빅톨 위고 등과 친분을 나누면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장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한국문화를 서구에 소개하는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최근 삼성에서 프랑스 로댕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 등에 투자해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사업을 시행하는데 기메 박물관에도 투자를 해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초라했던 모습을 조금 벗기는 했다는 것이 아들의 설명이다.

 

파리의 여행의 필수과목인 에펠탑의 과정 이수를 위해서 300 여m의 줄 뒤에 섰다. 이 에펠탑은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한 기념물인데 에펠이란 사람이 공모에 당선되어 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약 320m의 철탑을 27개월 만에 완공하는데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흉물스런 철골들이 수많은 정원과 세느강이 빚어내는 파리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돈으로 13,000원 이상을 받는 입장료 때문에 파리 최대의 관광 수입원이 된다고도 한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 드디어 에펠탑에 오르는 승강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승강기가 너무 빨리 올라가서 약간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기분은 상쾌하였다. 에펠탑은 오르는 층수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그리고 오르는 높이도 건강한 사람, 노인, 장애우, 어린이에 따라 구분 한다. 2층 전망대에서 잠시 내려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약간 어찔한다. 그러나 아슬하게 멀리까지 파리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나도 신이 바라볼 수 있는 세계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까이를 내려다보면 어찔하고 멀리 바라보면 황홀하였다. 시내 중심을 흐르는 세느강과 강가의 나무숲이 하나의 커다란 정원처럼 펼쳐져 있고, 가까이 샤이오 궁, 군사박물관, 세느강의 승선장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개선문에서 퍼져나간 방사선의 도로와 멀리 몽마르트 언덕의 흰색 건물이 아득하게 보였다.

에펠탑 전망대에서 본 파리시내

에펠탑에서 바로 앞의 동그란 건물이 샤이오궁

발 디딜 틈도 없는 사람들을 헤집고 한 바퀴 도는 동안 어떤 안내원이 내려가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 쭉쭉 빠지세요. 오른쪽 왼쪽 두 줄로 서세요.” 분명 프랑스 사람인데 우리말로 소리치는 모습에 우리는 웃지 않을 수 없다. 반갑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 관광객이 많다는 뜻이 아닌가? 샤이오궁에서 바라보는 에펠의 야경이 일품이라는 얘길 듣고 서둘러 내려오는 승강기를 탔다.

 

내려와 세느강변의 잔디밭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너무 피곤해서 지척에 있는 샤이오궁까지 걸어갈 힘도 없다. 노트르담성당에서 씨떼섬, 꽁네프다리, 루브르박물관의 옆을 지나 콩코르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을 지나 에펠탑에 오른 하루의 일과가 아득하다.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돌아갈 집은 아득한 저녁이다. 아홉시가 되어도 해는 서산에 노을을 남기고 에펠탑에는 불이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친 아내를 달래어 다리를 건너 샤이오궁으로 갔다. 거의 열시가 들어와서야 에펠탑에는 서서히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높은 철탑은 낭만의 거리의 그렇게 조화로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생각일 것이다.

                                     에펠의 야경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너무나 지쳐 있어서 이튿날의 루브르박물관 일정이 걱정스러웠다.

                                                                (200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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