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9. 로댕 미술관

느림보 이방주 2006. 8. 18. 13:22

 

로댕 미술관 전경

 

7월 28일

 

어제의 무리 때문에 기상이 늦었다. 나도 많이 피곤했지만, 어제 저녁에 아내는 오늘의 일정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테니스와 등산으로 단련된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피로를 잊고 생기가 넘쳐있다. 나는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 아들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응원한다. 게다가 민박집에서 끓여주는 콩나물국이 피로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인상이 푸근하고 표정이 밝으며 말씨까지 친절하였다. 그래서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나 가족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들끓는 모양이다.

 

피로하지 않을 만큼으로 일정을 줄이자는 어른들의 입장도 있었으나, 안내를 맡은 아들은 나중에 후회할 지도 모르니까 좀 무리를 하자고 어린애 같은 어른들을 설득한다. 나도 이미 자식 앞에 아이처럼 되어 버렸지만, 전적으로 그의 편에 섰다. 저녁에 돌아와서 하루를 생각하면 피로가 쌓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그런 판단이 항상 옳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 로댕미술관을 거쳐 루브르박물관까지 돌아보기로 하였다. 아쉽지만 요르세미술관은 포기해야만 했다. 다만 그냥 훌훌 넘어가는 관람이 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말이다.

 

로댕미술관은 알렉산더 3세의 다리를 건너 군사박물관 옆에 있다. 로댕미술관을 가는 중간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발견하였다. 반가워서 가까이 가보니 대한민국대사관이다. 그러고 보니 이 거리가 바로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거리였다. 대사관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고. 바리케이드가 준비되어 있다. 분단의 아픔은 여기까지 따라와 있었다.

로댕미술관으로 가는 중간에 만난 한국 대사관

 

  로댕미술관은 1728년에 지어진 로코코풍의 아름다운 건물인데 로댕이 1908부터 9년 동안 여기서 작업했다고 한다. 육중한 출입구를 지나 건물 앞으로 들어가면 바로 아담한 후원이 있고 거기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조품이다. 모조품이지만 정원에 설치한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생각하는 사람을 흉내 내어 보았다. 그러나 모습은 흉내 낼 수 있어도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정원을 먼저 돌고 전시관을 들어가기로 했다.

                           정원의 '생각하는 사람' 상 앞에서 (그의 생각은 흉내낼 수 없었다)

건물 앞쪽으로는 아주 넓은 프랑스식 정원이 있다. 가운데 잔디밭과 잔디밭이 끝나는 부분에 분수가 있고 양쪽으로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이다. 숲은 대개 플라타너스나 이름 모를 교목을 심어 사각형으로 전지를 해서 ‘성’처럼 만들었다. 잔디밭 주변은 장미나 1년생 화초를 심어 화려하게 꾸몄다. 호수가 아니면 분수는 대개 잔디밭이 끝날 조각품과 함께 설치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정원, 만발한 꽃이 아름답다. 그리고 정원 곳곳에 조각미술품이 있다. 이것이 크기는 다르지만 파리에서 본 궁궐이나 박물관 정원의 틀에 박은듯한 모습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파리 전체가 바로 이런 하나의 정원이다. 우리나라의 정원이 건물과 주변의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나지막한 산과 언덕과 소나무와 그 아래 시냇물을 졸졸 흐르게 만들면서 물이 머물렀다가 흐르는 곳에 연을 심었다. 개성이라고 하겠지만, 프랑스는 하늘로 치솟는 분수와 같은 도전의 물이고, 우리는 그냥 흐르다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거나, 하늘로 다시 증발하여 비가 되는 부활의 물이다. 도전과 조화의 문화를 정원에서도 볼 수 있다.

 

정원에서 본 작품 가운데 인상 깊은 것은 “지옥의 문”이었다. 지옥의 문은 삶 이후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 당도한 많은 인간들이 괴로운 모습으로 늘어 붙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언젠가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문에 늘어붙어 괴로워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의 꼭대기에는 ‘생각하는 사람' 상의 모형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앉아 있었다. 로댕이 그런 의도로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지옥의 문은 아담과 이브가 지키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꿈꾼 인간의 세계는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성서가 사실이라면 그들의 실수로 수많은 후예들이 지옥의 문 앞을 서성이게 될 것이고, 그들의 괴로움은 날로 더해 갈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어떤 괴로운 모습으로 지옥의 문 앞을 서성이게 될까? 괴로운 생각에 지구 저쪽의 나그네의 마음이 스산하다.

                                  지옥의 문

전시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로댕의 작품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프랑스 여인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로댕이 빚어놓은 예술품을 모델로 프랑스 여인들의 그들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드러운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들이 코끝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하는 그들의 예술에 대한 애정이 놀랍다.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한 작품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어린 시절의 습작과 회화 작품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설명도 자세하다. 특히 '지옥의 문'이 완성되기 까지의 모형도 있었다. 나는 이 작품들이 왜 훌륭하다고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다만 들여다 보면 돌을 쪼아 만들거나, 재료를 빚어 만든 인간의 형상임에도 거의 사실에 가깝고, 그 형상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동작의 표현이 완벽하고 동작에 따른 근육의 꿈틀거림이 빈틈없이 거의 똑 같다. 얼굴 표정도 어떻게 그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얼굴 표정이 내면의 표출이라면, 작가는 돌이나 흙에 철학자의 혼을 불어 넣는 기적을 이루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등줄기나, 팔뚝, 손등, 엉덩이, 장딴지의 근육의 꿈틀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얼굴 표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런것을 미술에서 예술성이라고 하는지도 나는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때로는 문외한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순수한 감상일수도 있을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생각하는 사람

우리 조각품들도 훌륭하고 정교한 것들이 많다. 우리의 생각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그에 못지않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유의 세계가 다른 면은 있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이고, 미적인 면에서 아름답기는 마찬가지가 안니가 한다. 그런데 우리 조각 미술이 대부분 불상에 머물러 있기에 그것을 예술로 보지 않고 ‘불상’으로 생각해서 기독교적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나 불교와 거리가 있는 사람들도 불상으로 보기 때문에 무관심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불상으로 보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지 예술품으로 보지 않는다. 서양의 미술품도 사실은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 신의 형상을 모방한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은 가장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기에 예술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는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작가에게 물어 보아야 할 일이지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할 말은 아니다.

 

우리 불상도 따지고 보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형상한 것이다. 인도의 불상, 중국의 불상, 우리나라의 불상이 다르고, 제 겨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우리 불상은 다 우리 겨레를 닮은 모습이다. 심지어 학자들에 따르면 서산 마애불과 경북 군위의 마애불은 각각 백제와 신라 사람들을 닮았다고 한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로댕의 예술의 세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 수필 작품 중 ‘새우젓’이란 글에 가장 맛있는 새우젓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먼 고향 바다를 생각하는 모습”이라고 묘사했는데 그 작품 앞에서 그 묘사가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세계를 그린 명작을 새우젓을 비유하는데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그 표현도 글을 쓰는 많은 명사들이 부러워했다. 물론 비판도 했겠지만.

로댕의 회화, 조각을 둘러보고 나와 정원을 다시 한 번 휘둘러 본 다음 루브르 박물관을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200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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