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26.
7월 26일 오후, 우리는 런던 워털루역에서 파리행 유로스타에 몸을 실었다. 런던에 첫발을 너무 무리하게 내디딘 탓으로 첫날부터 약간 지쳐 있었다. 때문에 기차가 도버해협 지하 터널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잠에 빠져 버렸다. 그 결과 지하 열차를 타는 신비스러움을 맛볼 기회를 잃어 버렸다.
유로스타는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고급 열차이다. 아직 KTX를 타보지 못한 나는 유로스타 1등석의 푸근하고 편안한 자리에서 온몸의 피로를 기대며 KTX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신사라는 전통적 자존심으로 여행객들에게 비교적 안전한 런던에 비해 파리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지만, 유로스타에서는 예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였다.
밤늦게 도착한 파리의 네 개의 역 가운데 하나인 '북역'은 천둥과 번개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낯선 이국인데다가 영어가 가장 통하지 않고, 이정표에도 전혀 영어 표기가 없는 망망고도와 같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울리는 천둥 번개를 환영 팡파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천둥 번개 속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우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정도였다.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어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아들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영어로 말을 붙이면 팔을 휘저으며 달아나는 사람들, 전화 카드만 받아먹는 공중전화, 공중전화 앞에서 바가지로 전화 카드를 빌려주는 흑인, 이렇게 역 구내의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했다. 늦은 시간이라 게다가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역사 내는 이내 텅 비어 버린다. 몰려드는 피곤, 쏟아지는 소나기, 안 통하는 전화,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는 안내판, 깜깜한 인포메이션, 멍하니 서 있는 우리에게 한 청년이 다가왔다. 영어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지하철 타는 요령을 설명으로 듣고 숙소로 떠나는 마지막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거리는 비바람으로 떨어진 나뭇잎이 날리고, 우리나라의 골목처럼 주차된 차들이 즐비하다. 역에서 전화를 거니 바로 민박집 주인이 뛰어 나왔다. 미리 준비된 방에 짐을 푸니 내 집에라도 온 듯 편안하다. 게다가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비빈 비빔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니 동포의 친절에 가슴까지 따뜻해 온다.
에펠탑에서 바라본 파리
인구 200만 정도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시 정도인 파리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느강 가운데에 있는 삼각형의 시떼섬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고도답게 도시의 중심은 섬으로부터 시작하는 듯 했다. 서울의 여의도와 같은 느낌이다. 낭만의 도시에 낭만의 거리라고 하는 샹젤리제 거리도 시떼섬의 삼각주 꼭짓점을 기점으로 세느강변 가까이에서 개선문까지 통한다. 거리 주변은 무직한 고풍스런 건물, 플라타너스, 인도까지 점령한 카페가 즐비하다. 여러 가지가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서울도 600년 고도라고 하지만 고도의 흔적을 유지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 거리에 아름다운 젊은 여인들이 활보하는 모습은 런던과는 사뭇 다르게 역동성이 있어 보인다. 거리의 풍경이 곧 예술이고, 건물이나 각종 구조물들이 곧 역사 문화의 현장이다. 도시 전체가 공원이고 박물관이란 생각이 들었고, 거리를 걷는 것이 곧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숨 쉬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파리의 도시 행정가는 모두 디자이너고 정원사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파리의 아침은 지난밤의 비바람을 잊은 듯 깨끗하기만 했다. 청명한 하늘, 맑은 공기, 서늘한 아침 바람에 말끔히 가셨다. 아침 식사를 하고 일정을 논의 했다. 노트르담사원, 루브르박물관, 에펠탑으로 이어지는 파리의 중심가를 관통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떼섬, 대법원, 꽁네프 다리, 루브르박물관, 튈르리공원, 콩코르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신개선문, 에펠탑, 샤이오궁으로 이어지는 중심가를 걸어서 움직여야 한다. 이번 여행의 최대 고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걷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친구는 마라토너이고 우리 내외도 함께 등산을 다니며 산길을 걸은 것이 얼마인가?
(200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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