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7.
런던의 아침은 비가 내린다. 간밤에 로마 치암피노 공항발 라이언 항공으로 런던으로 돌아 왔다. 라이언 항공은 아일랜드 소속 항공사로 유럽 주변 국가들을 운항하는 저가 항공기이다. 로마에서 런던까지를 우리 돈으로 8만 여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해결한 것이다. 파격적인 가격 때문에 짐을 가지고 기내로 들어가야 하고, 기내에 소지할 수 없는 물건은 약간의 추가금을 내고 수하물로 부쳐야하는 불편이 있다. 승무원들이 기내 서비스로 제공하는 커피, 콜라 같은 음료수도 추가 요금을 요구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의 서비스는 승객을 관리한다는 차원으로 보였고, 그들의 손놀림이나 표정은 우리나라 항공사의 승무원들처럼 세련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저가로 운행되어 여행경비를 절약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때문에 치암피노 공항은 여행객으로 북적대었다.
퀸스하우스에서 바라본 그리니치천문대
우리가 가기로 한 그리니치 천문대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찾아가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그리니치 천문대를 확인하고 싶은 나의 어린 아이 같은 궁금증은 기어이 그리니치를 찾아가야만 했다. 전철을 몇 번 갈아 타고 도착한 곳은 그냥 천문대가 아니라 퀸스 하우스, 해군대학, 해군박물관, 그리니치 대학 등이 모여 있는 그리니치 파크의 잘 가꾸어진 잔디 언덕 위에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템즈강은 타워브리지가 있는 지역에 비해 강폭이 훨씬 넓고 여기 저기 중세의 건물들이 보였다. 이곳에는 범선 캐티서크호가 보존되어 있었다. 이곳은 훨씬 남쪽으로 내려온 곳으로 공원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큰 해군 대학과 해사 박물관이 있었고, 또 그 옆에 물러난 왕의 왕비들이 거주했었다는 퀸즈하우스가 있었다.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바라본 퀸즈하우스와 템즈강가의 번화가
과거의 천문대는 기상 관측이나 하늘을 관측하여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해군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천문 항해술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다와 가까운 이 해군의 요새에 해군대학과 해사 박물관 등과 함께 어울려 세웠던 것이 아닐까?
현재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천문 관측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천문관측과 그에 대한 연구 과정에 대한 보존을 위한 일종의 박물관이었다. 입구부터 17세기부터 계속된 천문항해술 연구 학자들의 연구 실적과 행적을 기록 보존하였고, 시계, 나침반, 별자리 망원경 등이 그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도록 정리하여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여기서 하필이면 왜 런던에 본초자오선을 긋게 되었는가에 대한 어린이 같은 의문이 풀렸다. 지리적 탐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한 16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항해용 지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그런데 각기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지도를 제작하여, 나라별로 지구상의 같은 지점이라 해도 경위도가 달라지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884년 만국지도회의에서 자오선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온 그리니치의 실적을 인정하여 이곳을 본초자오선으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당시 세계를 제패한 영국의 막강한 힘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존심의 나라인 프랑스는 아직도 파리를 통과하는 경선을 본초자오선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경주의 첨성대와 함께 기상 관측의 역사를 한 곳에 모으면 훌륭한 천문학 연구의 역사를 돌아 볼 수 있는 천문학 박물관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첨성대, 해시계, 물시계 등 모두 한 곳에 모아보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관심을 가져온 겨례의 슬기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밟은 본초자오선
본초자오선에 서울의 위치(서울 자리에 런던이 쓰였어야 하는데)
천문대의 마당에는 본초자오선이 그어져 있고, 시간의 중심을 알리는 시계탑이 건물 안과 밖에 있다. 나는 본초자오선을 밟고 서 보았다.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는 감격보다도 막강한 해군력과 국력, 그리고 천문학 연구에 대한 실적으로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세계를 현실화한 그들의 합리적인 자기중심적 사고가 말할 수 없이 부러웠다.
(2006.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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