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나는 밤이어요

느림보 이방주 2001. 8. 29. 15:24

나는 밤이어요.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요. 왜냐하면 밤은 어둠의 시간이거든요. 태초에 '어둠 가운데 빛이 있으라'는 하느님의 창조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씀 저쪽에 있는 어둠의 시간이거든요. 빛은 세상의 진리를 밝히고 새로운 생명을 찾도록 도움을 주지만, 어둠은 세상의 진리를 감추고 생명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거든요. 또 시대의 어둠은 지조 있는 사람들의 적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한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창조의 말씀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진리와 생명을 감추어 버렸다고 하더라도 '짖어 어둠을 쫓는 개'가 있다고 절규하는 시인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자랑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요. 들어볼까요?

나는 '침실의 시간'이지요. 침실의 시간이란 잠과 휴식이 있지요. 곧 내일의 활동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의 시간이지요. 잠은 작은 죽음이라고 하지만, 이별은 만남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고, 겨울은 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며, 아픔은 그 만큼의 성장을 위한 시간이듯이 밤은 어둠의 시간이지만 밝음을 준비하는 시간이지요. 熊女는 굴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참고 이겨냈기에 호랑이보다 앞서 인간으로 환생하였으며, 춘향이는 감옥에서 어둠과 고통을 견디었기에 '아무래도 갈 수 없을 것 같던 서으로 가는 달'을 따라잡을 수 있었지요. 밤은 새로운 세계의 도전을 준비하는 '침실의 시간'이지요.

나는 휴식의 시간만은 아니고 사실은 生産의 시간이지요. 밤에 무슨 생산을 하느냐고요? 그럼 밤이 性의 시간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러니 생산의 시간이지요. 미래의 대통령도, 未堂이나 雲甫같은 예술가도 밤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나겠지요. 그러니 밤은 미래를 생산해 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낮에 밖으로 나돌던 모든 이들을 불러들이는 收斂과 歸着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생명들의 원초적인 고향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곧 밤이 아니겠어요. 밤이 되면 집을 나갔던 이들만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俗의 세계에서 유혹되어 방황하던 우리들의 순수하고 순진했던 마음이 본래의 원초적 동산으로 돌아와 아름답고 깨끗한 것만 생각하는 시간이랍니다.

나는 낭만의 시간이지요. 밤은 추억에 잠기고, 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과 고독이 짜여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밤의 환상은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고 밤의 사색은 깊은 우물과 같이 투명하지요.

추억에 잠겨 보셨나요. 아직 그런 나이가 아니라고요. 추억은 40대가 되어야 한다지만, 밤을 값있게 보낼 줄 알았던 윤동주님 같은 시인은 '별 하나에 꿈과, 별 하나에 추억과'하면서 20대에도 추억에 잠길 줄 아는 아름다움을 가졌던 걸 잊으셨나요.

밤은 그리움과 고독과 기다림이 짜여져 相愛라는 베로 짜여지는 것은 아마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겁니다. 연애는 곧 그리움으로 시작하는가 봅니다. 그리움은 곧 기다림을 부르겠지요.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밤이 고독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거기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야릇한 행복도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만 알겠지요. 蘭雪軒 許楚姬의 고독을 노래한 詩篇이 뼈아픈 고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이,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듯이 속되지 않은 정말 純純한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겠지요. 그렇게 나의 밤은 그리움과 기다림과 고독이 짜여지는 아름다운 相愛의 시간이랍니다.

밤은 사색의 시간이지요. 거실의 불을 다 꺼버리고 앞산의 나무들이 하늘과 거뭇거뭇하게 경계를 이룬 수묵화 같은 창 밖을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겨 보세요. 온갖 아름다운 상념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삶의 진미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온통 눈꽃 같이 깨끗한 아름다움으로 덮이고, 우리들 살아온 발자국을 진솔하게 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인간은 밤을 통하여 성숙해진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밤은 사색의 시간이지요.

그러고 보니 나는 俗을 몰아내고 陋를 덮어버리는 聖의 시간이군요.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모두 포용하고, 용서하는 시간이 곧 밤이랍니다. 왼 손이 하는 좋은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것도 밤이지만, 장갑낀 손으로 남의 금고를 여는 불의도 덮어주는 너른 가슴을 가진 것도 밤이랍니다. 밤이 이렇게 어둠으로 포용하는 것은 제 자신이 '어둠'으로 쫓김을 당해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밤은 모든 것을 다 용서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解脫을 기다리는 聖의 시간입니다.

나는 밤이어요. 나를 어둠이라고 욕하지 마셔요. 밤은 다만 어두울 뿐이지 밤이 곧 어둠은 아니잖아요. 내일의 준비를 위하여, 꿈과 낭만을 위하여, 사색을 통한 성장을 위하여, 어둠의 반성을 위하여 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셔요. 창조의 말씀을 어기고 빛의 저쪽에 존재한다고 탓만 하지 말고요. 밤의 夢幻과 相愛를 한 번 살펴보셔요. 또 生成의 준비를요.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거든요.

(200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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