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큰형님

느림보 이방주 2001. 7. 21. 11:08
새벽에 큰 형님을 만났다. 벌서 27년 전에 이 세상의 강물을 건너가 버린 형님이시다. 어머님과 숙모님, 그리고 돌아가신 둘째 누님이 함께 앉아서 밥을 먹었다. 어머님은 전처럼 무릎을 괴고 앉아 수저를 들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고, 숙모님은 이 반찬 저 반찬을 뒤적이시며 맛을 보시고, 둘째 누님과 나는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볐다. 형님은 그런 우리를 바라만 보셨다. 그런데 양푼에 비비던 밥에서 커다란 뱀 대가리가 나왔다. 내가 놀라서 자빠지려 할 때 꿈에서 깨어났다.

요란한 빗소리 때문에 새벽에 깨었다가 다시 악몽에 시달린 나는 꿈이 너무나 황당하고 생시처럼 생생해서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어머님과 형님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서 갑자기 잃었던 그리움이 회오리바람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창을 열고 물묻은 앞산을 내다보면서 돌아가신 네 분이 남달리 도타웠던 옛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서리쳤다.
어둑어둑한 산을 바라보다가 너무나 황당하고 생생한 그 분들의 모습 때문에 꿈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인터넷 꿈풀이를 보았다. 사람들이 재미로 만들어 놓은 것이겠지만, 돌아가신 가족들과 생시처럼 생활하는 꿈은 '죽음'을 예언한다고 되어있었다. 물론 내가 죽기야 할까마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냥 그리움의 현몽일 수도 있다고 위로의 말도 빠뜨리지 않은 작성자가 고맙기도 했다.

하긴 며칠 전 숙모님 제사를 지내고 와서부터 숙모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의 정을 이기지 못해서 한동안 괴롭게 지냈다. 그런데다가 형수를 뵐 때마다 형수의 하얗게 변한 머리 때문에 형님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살아 나를 괴롭혀 왔다. 그러다 보니 돌아가신 네 분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마침 방학 때라 장례를 모시고나서 출근하시는 형님 대신 마을에서 빌려온 기물들을 정리해서 마을 창고에 반납하는 일을 내가 맡았다. 그 때는 손수레조차 들어오지 못하던 우리집에서 그 많은 기물들을 지게로 해결했다. 그리고 쌓인 피로 때문인지 몸살이 나서 며칠을 오지게 앓았는데, 하루는 퇴근해 돌아오신 형님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집에서 기르는 커다란 암탉을 잡았다. 인삼을 넣고 고아 놓은 그 닭을 먹고 나는 일어났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어서 십리 길을 걸어올 생각에 공부가 안되었다. 형님이 그 때 우산을 들고 복도에 나타나셨다. 평소에 괜한 일로 스무 살이나 위인 형님을 원망했던 일이 사르르 사라졌다.

고등학교 입시에서 낙방한 나를 눈빛으로만 위로하셨던 형님, 항상 무언지 모를 미안해하는 눈빛, 형으로서 호되게 야단 한 번 쳐야 될 일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형이 동생에게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지나치게 크게 잡고 있었기 때문에 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임 발령을 받고 집에서 나갈 때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이란 것도 소상히 얘기해 주지 못하던 형님은 내가 직장 생활 1년을 채우기도 전에 세상을 버리셨다.

언제나 우리 여덟 남매의 맏이로서, 우리 집안을 이끌어나갈 다음 세대의 웃어른으로서 나름대로의 남모르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형의 자리에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나는 형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잘 모른다. 형이 해야할 일도 모르고, 형이 아우에 대하여 어떤 걱정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나를 얼마만큼 덜어서 아우에게 주어야 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우가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삶의 한 가지 큰 고민을 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홀가분한 삶인지 모른다. 오늘 새벽같
이 직원들과 함께 계곡에 술 마시러 가는 날, 꿈에라도 서둘러 나타나 술 걱정을 해 줄 필요도 없는 것이 영원한 아우인 나의 자리다.

그런데, 오늘 술좌석에서 어느 동료인가 내게 그냥 '형' 아니면 '형님' 정도로 부르는 다른 사람과 달리 "큰 형님, 제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하고 잔을 건네었다. 물론 장난기가 어리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올라있던 술이 한꺼번에 '확---' 깨는 기분이었다. '큰 형님이라' 이제까지 '아우'만으로 불리었는데, 그리고 아직도 '아우야'하고 불러주는 친형 같은 분도 계신데, 나더러 '큰 형님'이라니……. 내가 오늘 새벽에 뵌 그런 '큰형님'이라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술잔을 건네고 반배를 기다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잔을 비우고 그에게 반배했다. '나는 아직 큰 형님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밖으로 비어져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직장에서 '형'을 거쳐 '형님'이 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큰 형님'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초임 교사 시절에, 시내 학교에 처음 나왔을 때, 원로 교사들을 뵈면 두렵고 어렵기만 하더니 그 자리로 갑자기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억울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나는 '무어 받을 것 없나'를 생각하기 앞서 '뭘 해 줄까'를 생각할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그냥 함께 뛰고 시시덕거리며 살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함께 술마시고 뒹굴고 미친 듯 노래하고 싶은데 마음이 따라 주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게 되고, 곁눈질하게 되고, 내딛는 걸음이 조심스럽다.

영지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울리는 노래 소리를 귓전으로 흘려 보내면서, '형이 할 일이 무엇인가?', '큰형의 자리는 어떤 것인가?'를 우리 큰형님이 내게, 그리고 우리 형제들에게 덜어 주던 것을, 그리고 덜어 줄 것이 없어 공연히 미안해하던 눈빛을 기억해 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없이 좁아 빠진 내 앞자락에서 덜어줄 것이라고는 밥풀데기 하나 만큼도 없는 철빈이라는 분수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무게가 나를 짓눌러 온다.
(200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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