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있다. 그 중에서 남들이 봐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열쇠 고리가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출근할 때도 이것을 들고 나가야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도 아주 소중하게 이것부터 챙겨 두어야 한다. 심지어 아침 등산 때나, 저녁에 잠시 바람 쐬러 나갈 때도 항상 지니고 나가야 마음이 놓인다. 이 놈은 항상 나와 함께 한다. 이것이 있어야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열쇠 고리의 주인은 뭐니뭐니해도 말머리 나침반이다. 말머리에 몸통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나침반이 매달려 있다. 말이 "히히힝"하고 힘을 주는 것처럼 코에 '벌름' 힘이 들어가 있어서 마구 달릴 듯이 보이나, 눈을 아래로 약간 숙여 뜨고 있어서 금방 등에서 떨어질 것 같은 위험성은 없다. 거기에다가 손가락 두 개로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는 귀여운 모습이다.
이 열쇠 고리에는 내가 열고 가야할 삶의 길처럼 참으로 여러 개의 열쇠가 매달려 있다. 그 중에서 하루의 시작을 여는 것은 내 무쏘의 열쇠다. 내 하루 역사의 새 출발에 발동을 거는 에너지원이다. 힘 찬 진행을 알리는 것만큼이나 길고 육중하다.
길다고 해야 세 치밖에 안 되는 놈이 무쏘의 힘 구멍에 생명을 꽂듯이 꽂아 한 번 돌리면, 그 육중한 몸뚱어리가 "부르릉"하고 몸서리를 친다.
또 하나는 가늘고 연약한 것은 아내의 차 티코의 열쇠다. 이놈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운전을 처음 배운 아내가 주차장을 많이 차지했을 때 다시 주차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소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하루를 마감하고 안락으로 돌아갈 때 쓰는 아파트 열쇠 두 개다. 본래 하나여야 하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니 남을 어떻게 믿을까해서 만든 두 번째 열쇠가 있다. 그 밖에 책상 서랍 열쇠, 자동차 자동 잠금 리모콘 등이 매달려 있다.
하나하나 생각해 봐도 모두가 나의 나아갈 길을 열어 주는 것들이다. 나의 역사를 열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이 열쇠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두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들이 모두 행운의 길만을 열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 열쇠 고리에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덤으로 매달려 있으면서도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열쇠고리 장식품이다. 그러고 보니 열쇠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 고리도 수없이 바뀌어 왔다.
처음에는 캐피탈을 살 때 기아 자동차 회사에서 가죽으로 된 상투적 감각의 고리였다. 그러다 제 스스로 뜻깊은 일이라는 듯 어떤 교육감이 스승의 날에 준 기념 고리로 바꾸었다. 별 뜻깊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지금부터 한 5-6년 전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나의 제자 최정미 양이 아주 소중한 장식품을 선물했다. 말로는 캥거루 가죽이라 했다. 연한 갈색의 가느다란 털이 정미양 마음처럼 보드라웠다. 엄지손가락을 감쌀 정도 크기의 타원형인데, 얼마나 보드라운지 쓰다듬어도 기분 좋고, 볼에 대고 쓸어도 좋았다. 캥거루의 어느 부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 몸뚱이의 갈색보다 연한 갈색에다가 특히 보드랍고 털이 짧은 걸로 봐서 그 녀석의 몸 중 분명히 중요한 부분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정미 양의 말에 의하면 행운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선생님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호주에 다녀오는 언니에게 부탁해서 사왔다고 했다. 그 때 집안 우환으로 맘이 편할 날이 없던 나는 정미의 고운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로 그 이후로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우환은 점차 가시고, 접촉사고 한 번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도 많이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내 후원자가 되기도 하고, 채찍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어 주기도 했다. 또 행운을 몰아다 주는 이도 있었다. 나는 인생의 중요한 일을 이 캥거루 가죽 장식을 가지고 있는 이 6년 동안 거의 이루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나는 이 때 캥거루처럼 방향도없이 튀어 오르다가 수필문학의 거두 서정범 교수님의 눈에 들어 수필가로 등단하는 행운을 맞기도 했다.
그 후에 조카가 스위스에 다녀오는 길에 새끼손가락 만한 주머니칼 하나를 사다 주었다. 나는 이놈도 매달았다. 그 놈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캥거루 가죽이 자르는 것이 본업인 그 칼을 또르르 말아 감싸고 있었다.
작년 가을 이 캥거루 가죽이 갑자기 털이 빠지고 힘이 없어 보이더니, 가운데 구멍이 생기고 하루아침에 쭉 찢어져 더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지니고 다니던 행운을 잃어버리는 애석한 마음으로, 그리고 정미 양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부득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기운은 아직도 남아 행운은 계속되고 있다.
아무 것도 매달리지 않은 살벌한 열쇠만 가지고 다니다가 올해 수학여행을 마치고 온 부담임반 학급의 정민경이라는 녀석이 이 말머리 나침반 열쇠고리를 선물했다.
예쁘고 귀여웠지만 눈이 좀 작아 놀려댔는데, 그 작은 눈에 어떻게 이런 진기한 명품이 띄었는지 모른다.
나침반은 자신이 정한 목적지를 향해 바르고 빠르게 가는 길을 일러주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가야할 바른 길을 지시해 주기보다는 목표에 도착하여 좌정할 자리를 정하는데 더욱 요긴하게 쓰였다. 이 녀석이 내가 좌정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좌정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게 아니라고 계속 부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우기는 철없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말머리 나침반이 아무리 벌름거리는 코를 가지고 힘을 자랑해도, 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듯이, 아무리 힘차게 질주하고 싶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머무를 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선 나를 돌아보고, 가치를 두어야 할 머리의 높이를 정하고, 사람을 대할 때 시선을 바른 곳에 두고, 그들과의 대화에 올바른 말머리를 찾아야 한다. 나아갈 방향을 찾을 것이 아니라, 머리와 시선과 귀와 입이 낮은 곳을 향하도록 좌향을 정하고 바르게 좌정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머리 나침반의 말머리의 눈처럼 낮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2001. 6. 8)
이 열쇠 고리의 주인은 뭐니뭐니해도 말머리 나침반이다. 말머리에 몸통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나침반이 매달려 있다. 말이 "히히힝"하고 힘을 주는 것처럼 코에 '벌름' 힘이 들어가 있어서 마구 달릴 듯이 보이나, 눈을 아래로 약간 숙여 뜨고 있어서 금방 등에서 떨어질 것 같은 위험성은 없다. 거기에다가 손가락 두 개로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는 귀여운 모습이다.
이 열쇠 고리에는 내가 열고 가야할 삶의 길처럼 참으로 여러 개의 열쇠가 매달려 있다. 그 중에서 하루의 시작을 여는 것은 내 무쏘의 열쇠다. 내 하루 역사의 새 출발에 발동을 거는 에너지원이다. 힘 찬 진행을 알리는 것만큼이나 길고 육중하다.
길다고 해야 세 치밖에 안 되는 놈이 무쏘의 힘 구멍에 생명을 꽂듯이 꽂아 한 번 돌리면, 그 육중한 몸뚱어리가 "부르릉"하고 몸서리를 친다.
또 하나는 가늘고 연약한 것은 아내의 차 티코의 열쇠다. 이놈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운전을 처음 배운 아내가 주차장을 많이 차지했을 때 다시 주차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소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하루를 마감하고 안락으로 돌아갈 때 쓰는 아파트 열쇠 두 개다. 본래 하나여야 하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니 남을 어떻게 믿을까해서 만든 두 번째 열쇠가 있다. 그 밖에 책상 서랍 열쇠, 자동차 자동 잠금 리모콘 등이 매달려 있다.
하나하나 생각해 봐도 모두가 나의 나아갈 길을 열어 주는 것들이다. 나의 역사를 열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이 열쇠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두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들이 모두 행운의 길만을 열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 열쇠 고리에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덤으로 매달려 있으면서도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열쇠고리 장식품이다. 그러고 보니 열쇠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 고리도 수없이 바뀌어 왔다.
처음에는 캐피탈을 살 때 기아 자동차 회사에서 가죽으로 된 상투적 감각의 고리였다. 그러다 제 스스로 뜻깊은 일이라는 듯 어떤 교육감이 스승의 날에 준 기념 고리로 바꾸었다. 별 뜻깊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지금부터 한 5-6년 전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나의 제자 최정미 양이 아주 소중한 장식품을 선물했다. 말로는 캥거루 가죽이라 했다. 연한 갈색의 가느다란 털이 정미양 마음처럼 보드라웠다. 엄지손가락을 감쌀 정도 크기의 타원형인데, 얼마나 보드라운지 쓰다듬어도 기분 좋고, 볼에 대고 쓸어도 좋았다. 캥거루의 어느 부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 몸뚱이의 갈색보다 연한 갈색에다가 특히 보드랍고 털이 짧은 걸로 봐서 그 녀석의 몸 중 분명히 중요한 부분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정미 양의 말에 의하면 행운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선생님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호주에 다녀오는 언니에게 부탁해서 사왔다고 했다. 그 때 집안 우환으로 맘이 편할 날이 없던 나는 정미의 고운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로 그 이후로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우환은 점차 가시고, 접촉사고 한 번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도 많이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내 후원자가 되기도 하고, 채찍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어 주기도 했다. 또 행운을 몰아다 주는 이도 있었다. 나는 인생의 중요한 일을 이 캥거루 가죽 장식을 가지고 있는 이 6년 동안 거의 이루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나는 이 때 캥거루처럼 방향도없이 튀어 오르다가 수필문학의 거두 서정범 교수님의 눈에 들어 수필가로 등단하는 행운을 맞기도 했다.
그 후에 조카가 스위스에 다녀오는 길에 새끼손가락 만한 주머니칼 하나를 사다 주었다. 나는 이놈도 매달았다. 그 놈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캥거루 가죽이 자르는 것이 본업인 그 칼을 또르르 말아 감싸고 있었다.
작년 가을 이 캥거루 가죽이 갑자기 털이 빠지고 힘이 없어 보이더니, 가운데 구멍이 생기고 하루아침에 쭉 찢어져 더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지니고 다니던 행운을 잃어버리는 애석한 마음으로, 그리고 정미 양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부득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기운은 아직도 남아 행운은 계속되고 있다.
아무 것도 매달리지 않은 살벌한 열쇠만 가지고 다니다가 올해 수학여행을 마치고 온 부담임반 학급의 정민경이라는 녀석이 이 말머리 나침반 열쇠고리를 선물했다.
예쁘고 귀여웠지만 눈이 좀 작아 놀려댔는데, 그 작은 눈에 어떻게 이런 진기한 명품이 띄었는지 모른다.
나침반은 자신이 정한 목적지를 향해 바르고 빠르게 가는 길을 일러주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가야할 바른 길을 지시해 주기보다는 목표에 도착하여 좌정할 자리를 정하는데 더욱 요긴하게 쓰였다. 이 녀석이 내가 좌정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좌정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게 아니라고 계속 부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우기는 철없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말머리 나침반이 아무리 벌름거리는 코를 가지고 힘을 자랑해도, 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듯이, 아무리 힘차게 질주하고 싶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머무를 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선 나를 돌아보고, 가치를 두어야 할 머리의 높이를 정하고, 사람을 대할 때 시선을 바른 곳에 두고, 그들과의 대화에 올바른 말머리를 찾아야 한다. 나아갈 방향을 찾을 것이 아니라, 머리와 시선과 귀와 입이 낮은 곳을 향하도록 좌향을 정하고 바르게 좌정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머리 나침반의 말머리의 눈처럼 낮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2001.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