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자연의 위대함에 무한히 비소(卑小)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욕구는 한이 없어서 그 욕구와 자연의 섭리와 불협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불협화를 극복하기 위해 전능하다는 신에게 의지한다. 옛날에는 어지간한 병은 집안에서 가장 어른이 장국에 밥을 말아 귀신에게 주고 병을 풀어내기도 하였다. 이른바 물밥을 준다고 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동네에서 가장 용하다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푸닥거리를 하고, 그래도 안되면 인근에서 가장 용하다는 무당을 들여 많은 경비를 내어 며칠씩 굿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된 현대에 와서는 소원 성취를 비는 행위가 더욱 심하다고 들었다.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가 대학 1학년 때쯤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 때도 막내인 나에게는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께서는 젊으셨을 때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두통과 어지러움증 때문에 고생하셨다. 그런데 그때는 그냥 늘 있어 온 두통이나 어지러움증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편찮으셨다. 병환이 나시기 전날에도 아무일 없이 저녁을 드시고 잠자리에 드셨는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시지 못하셨다. 평생을 참고 견디는 것으로 지내 오신 어머니신지라 가족들은 모두 긴장하였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셔서 식음을 전폐하셨다. 전에는 하루쯤 누우셨다가 일어나시곤 하셨는데, 좀처럼 차도가 없이 날로 더 심해지시기만 하였다. 탕재도 양약도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쯤 지난 뒤에 어머니께 은근히 여쭈어 보았다.
"글쎄,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병이 난거 같구나."
"무슨 꿈을 꾸셨는데."
"병나기 전날 밤 꿈에 어떤 여편네가 자꾸 매달리며 입은 옷을 벗어 달라기에 망측스러워서 뿌리치고 도망 왔더니 이런 일이 생기잖았겠냐?"
나는 옳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벗어 주시지 않고 왜 그러셨어요? 그 년이 저승에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어머니께 매달렸나 본데. 그 여편네 옷을 내가 해 줘 볼까?"
"네가 뭘 한다고 그러냐?"
말씀하시는 것이 한 번 해 보았으면 하시는 눈치였다. 할머니께서 계실 때 비손을 하시는 것을 종종 보았다. 식구들 중에 누가 병이 나면 병원에 가기 앞서 우선 비손을 하였다. 그리고, 눈이 약했던 내가 결막염에 걸려도 '삼눈'이라고 하시며 이른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붉은 팥 몇 알을 손에 쥐시고 그것으로 눈을 쓸으며 비손을 하셨다.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쳐다보면 실제로 눈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우연히 낫기도 하였다. 우리 형제는 그렇게 하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없으면서도 할머니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그냥 고맙게 받아들였다.
나는 곧 형수님께 된장국 한 바가지를 끓이도록 부탁드리고, 제웅 (짚으로 만든 사람)을 만들어 고운 헝겊으로 치마 저고리를 해 입혔다. 된장국을 바가지에 담아 찬밥 덩이를 말았다. 그리고 한 손에 부엌칼을 들고 어머니가 누워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죄송스럽지만 어머니께 칼을 들이대며,
"충청도 청주 땅 죽림동에 경술생 나신 우리 어머니, 평소에 지은 죄도 없이, 그저 알고 속고 모르고 속으면서 착하게만 살아 오셨거늘, 네 이년 뜬귀신이냐, 잡귀신이냐, 원한 맺힌 귀신이냐? 어찌 九泉에 들지 못하고 오만 불손하게도 무고한 몸에 붙어서 훼방이 웬 말이냐? 오늘 저녁 네 이년, 혼이 가여워서 옷 한 벌에 된장국을 끓였으니 얼른 먹고 석 나가거라. 네 이 년. 당장 나가야 망정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앞뜰에 엉겅퀴로 꽁꽁 묶어 대천 바다 진흙 구렁에 던져 버릴 테다. 썩 나가거라. 퉤퉤."
하면서 마구 지껄였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의심하면서, 마루에 나가 문을 닫고 문을 칼로 긁어 대면서 소금까지 뿌리며 또 한 번, 손 없는 방향을 물어 두었다가 된장국과 짚으로 만든 계집을 버리면서 또 한 번 중얼거리고 들어왔다.
그 날 저녁 내가 어머니 옆에 밤늦게 까지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만 늦잠이 들고 말았다. 늦게라도 일어나 보니 어머니께서 벌써 일어나 경대를 앞에 놓고 머리를 빗고 계셨다. 그리고, 그 날 아침 흰죽을 많이 드셨다. 저녁에는 된장 찌개와 마른밥을 많이 드셨다. 식구들도 많이 놀랐지만, 나도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숙부께서는 ,
"귀신이 어디 있겠니? 네 효성이 병환을 낫게 한 거지."
라고 과대 평가하셨다.
나는 아직도 이 일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께서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전에 종종 이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 나로서는 이런 것을 믿지 않는다. 물론 당시는 신앙심도 지금만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머니의 마음의 병을 이렇게 하면 혹시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한 번 해 본 것이다.
과학이나 의학이라고 할 게 없었던 옛 사람들은 이렇게 치성에 의존했던 것이다. 우리 만족은 이러한 치성이 어느 민족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했다. 이것도 하나의 신앙이라면 신앙일 것이다. 치성과 과학을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과학과 신앙을 잘 조화시키는 슬기를 지니고 살아왔다.
과학이 인간을 지배하는 현대. 그러나, 그 과학도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은 어차피 자연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1995. 6. 18.)
내가 대학 1학년 때쯤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 때도 막내인 나에게는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께서는 젊으셨을 때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두통과 어지러움증 때문에 고생하셨다. 그런데 그때는 그냥 늘 있어 온 두통이나 어지러움증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편찮으셨다. 병환이 나시기 전날에도 아무일 없이 저녁을 드시고 잠자리에 드셨는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시지 못하셨다. 평생을 참고 견디는 것으로 지내 오신 어머니신지라 가족들은 모두 긴장하였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셔서 식음을 전폐하셨다. 전에는 하루쯤 누우셨다가 일어나시곤 하셨는데, 좀처럼 차도가 없이 날로 더 심해지시기만 하였다. 탕재도 양약도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쯤 지난 뒤에 어머니께 은근히 여쭈어 보았다.
"글쎄,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병이 난거 같구나."
"무슨 꿈을 꾸셨는데."
"병나기 전날 밤 꿈에 어떤 여편네가 자꾸 매달리며 입은 옷을 벗어 달라기에 망측스러워서 뿌리치고 도망 왔더니 이런 일이 생기잖았겠냐?"
나는 옳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벗어 주시지 않고 왜 그러셨어요? 그 년이 저승에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어머니께 매달렸나 본데. 그 여편네 옷을 내가 해 줘 볼까?"
"네가 뭘 한다고 그러냐?"
말씀하시는 것이 한 번 해 보았으면 하시는 눈치였다. 할머니께서 계실 때 비손을 하시는 것을 종종 보았다. 식구들 중에 누가 병이 나면 병원에 가기 앞서 우선 비손을 하였다. 그리고, 눈이 약했던 내가 결막염에 걸려도 '삼눈'이라고 하시며 이른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붉은 팥 몇 알을 손에 쥐시고 그것으로 눈을 쓸으며 비손을 하셨다.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쳐다보면 실제로 눈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우연히 낫기도 하였다. 우리 형제는 그렇게 하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없으면서도 할머니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그냥 고맙게 받아들였다.
나는 곧 형수님께 된장국 한 바가지를 끓이도록 부탁드리고, 제웅 (짚으로 만든 사람)을 만들어 고운 헝겊으로 치마 저고리를 해 입혔다. 된장국을 바가지에 담아 찬밥 덩이를 말았다. 그리고 한 손에 부엌칼을 들고 어머니가 누워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죄송스럽지만 어머니께 칼을 들이대며,
"충청도 청주 땅 죽림동에 경술생 나신 우리 어머니, 평소에 지은 죄도 없이, 그저 알고 속고 모르고 속으면서 착하게만 살아 오셨거늘, 네 이년 뜬귀신이냐, 잡귀신이냐, 원한 맺힌 귀신이냐? 어찌 九泉에 들지 못하고 오만 불손하게도 무고한 몸에 붙어서 훼방이 웬 말이냐? 오늘 저녁 네 이년, 혼이 가여워서 옷 한 벌에 된장국을 끓였으니 얼른 먹고 석 나가거라. 네 이 년. 당장 나가야 망정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앞뜰에 엉겅퀴로 꽁꽁 묶어 대천 바다 진흙 구렁에 던져 버릴 테다. 썩 나가거라. 퉤퉤."
하면서 마구 지껄였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의심하면서, 마루에 나가 문을 닫고 문을 칼로 긁어 대면서 소금까지 뿌리며 또 한 번, 손 없는 방향을 물어 두었다가 된장국과 짚으로 만든 계집을 버리면서 또 한 번 중얼거리고 들어왔다.
그 날 저녁 내가 어머니 옆에 밤늦게 까지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만 늦잠이 들고 말았다. 늦게라도 일어나 보니 어머니께서 벌써 일어나 경대를 앞에 놓고 머리를 빗고 계셨다. 그리고, 그 날 아침 흰죽을 많이 드셨다. 저녁에는 된장 찌개와 마른밥을 많이 드셨다. 식구들도 많이 놀랐지만, 나도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숙부께서는 ,
"귀신이 어디 있겠니? 네 효성이 병환을 낫게 한 거지."
라고 과대 평가하셨다.
나는 아직도 이 일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께서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전에 종종 이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 나로서는 이런 것을 믿지 않는다. 물론 당시는 신앙심도 지금만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머니의 마음의 병을 이렇게 하면 혹시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한 번 해 본 것이다.
과학이나 의학이라고 할 게 없었던 옛 사람들은 이렇게 치성에 의존했던 것이다. 우리 만족은 이러한 치성이 어느 민족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했다. 이것도 하나의 신앙이라면 신앙일 것이다. 치성과 과학을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과학과 신앙을 잘 조화시키는 슬기를 지니고 살아왔다.
과학이 인간을 지배하는 현대. 그러나, 그 과학도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은 어차피 자연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199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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