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지루하다. 여름이 간 지도 이미 몇 주가 지났는데 날마다 비가 내린다. 어제 퇴근길에도 팔결 다리 건너 들판의 누런 벼들이 모두 쓰러져 물에 잠긴 것을 보았다. 유사이래 대풍이라고 찧은 입방아를 모두 반성해야 한다.
아파트 앞 개신동 오거리로 통하는 큰길 인도는 붉은 색 보도 블록을 깔았다. 양쪽에 느티나무 가로수를 심어 제법 운치 있게 늘어져 그늘을 만든다. 봄에는 개나리가 피고, 한여름엔 느티나무 가로수와 길가에 조성한 녹지에 몇 그루 푸른 나무와 어울려, 달리는 차들의 살벌함을 덜어 준다. 그러나 이렇게 축축한 가을에는 느티나무 가로수의 운치는 찾아볼 수 없다. 가로수 잎이 시커멓게 변색되어 붉은 색 보도 블록 위에 떨어져 여기 저기 쌓이고 늘어붙은 모습이 추하고 스산하기 짝이 없다. 아침마다 이 길에 나와 합승 동료 김 선생님을 기다린다. 우리끼리 맘이 맞고 가로수가 운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이 길을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이나 등교하는 학생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아서 그들의 다양한 모습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배우는 것도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오늘도 우산을 쓰고 김 선생님을 기다린다. 바람이 다시 한번 휙 지나간다. 우산에 '우두두' 커다란 빗방울을 뿌린다. 느티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늦장마를 여름 장마로 알았나 굵은 지렁이 한 마리가 낙엽 쌓인 잔디밭 개나리 숲을 버리고 아스팔트 쪽으로 구물구물 기어간다. 붉은 색 보도 블록 한가운데를 지나 구물구물 기어간다. 어디로 가나. 가는 곳이 살 수 있는 곳인가 죽을 곳인가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역겨운 행진을 계속한다.
머리에 금방 물 속을 헤집고 나온 물새처럼 짜르르 기름이 흐르는 대학생이 바쁘게 걸어 충주대학교 통학 버스 쪽으로 간다. 그 날카로운 구두 뒷 굽에 밟힐 뻔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도 잠깐 뚱뚱이 여고생의 둔한 구두코에 부딪쳐 요동을 친다. 두 동강이 나지는 않았지만 온몸을 뒤틀며 뒹굴고 요동을 치다 동그랗게 구부려 멈추어 섰다.
문득 어느 스님이 쓴 칼럼이 생각난다. '장마 때 길 위에 나온 지렁이를 밟지 않는 것도 좋지만 나뭇잎에 싸서 다시 길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는 일도 크나큰 자비가 될 수 있다' 나는 개나리 밑에 뒹구는 플라다나스 잎에 싸서 다시 녹지로 옮겨 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지렁이가 너무 굵고 징그러웠다. 마음속에서 계속 '옮길까 말까' 다투는 동안에 충북대 학생인 듯한 대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간다. 바퀴에 깔린 지렁이는 반쯤 끊어지고, 터져서 상처투성이로 다시 한 번 곤두박질한다. 너무나 참혹하고 징그럽다. 지렁이는 지렁이로서 귀한 생명이다.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결단을 내렸으면 귀한 생명 하나를 건지는 건데 나의 우유 부단함이 횡액을 가져 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를 지은 듯했다. '이제라도 옮겨 줄까' 하다가 다된 목숨을 이제 무슨 소용 있겠나 생각하며 김 선생님 차가 나타날 쪽을 바라보았다.
나이 드신 미화 요원 한 분이 비닐 우장을 입고 집게와 비닐 봉지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이쪽으로 오며 비닐 봉지에 오물을 주워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렁이를 발견하였는지 스산한 얼굴로
"예이 이 녀석아, 너 갈 곳이 아니다. 왜 죽을 줄 모르고 나와서 변을 당하냐?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야지."
하면서 나뭇잎에 싸서 개나리 숲에 던졌다.
김 선생님 차가 왔다. 차에 올라 나는 다시 한 번 후회하기 시작했다.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야 하는' 간단하고 뻔하지만 금싸라기 같은 진리를 줍지 못하고 멀거니 서서 구경만 한 미련한 나. 그걸 왜 깨닫지 못했나. 늦었다고 생각되었을 때라도 왜 그놈을 집어서 살 수 있는 데까지 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하였는가? 이렇게 미련한 내가 지렁이를 징그러워하고, 누구를 무시하고 잘난 체하며 아이들에게 도덕을 논하였는가.
결국은 그렇게 멀리 보지 못하는 나도 별수 없이 지렁이처럼 죽음의 아스팔트로 가고 있는 셈이 아닌가. 지렁이는 그 여고생에게 밟히거나, 대학생의 자전거에 치지 않았더라도 가던 방향으로 보아 결국 포장한 큰길로 기어가 자동차의 무지막지한 바퀴에 치어 더욱 참혹하게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제갈 길이 아닌 죽음의 길을 죽음의 길인 줄 모르고 가는 지렁이나 우리 인간들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날마다 가는 길의 살고 죽음을 확인할 수 없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게 우리들의 삶이다. 그로 보면 지렁이나 다를 게 아무 것도 없다. 날마다 겨우겨우 위험을 모면하고서 자만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한 낱 미물에 불과한 것이다. 사지로 행하는 지렁이를 보고도 구원의 용기를 내지 못했듯이 내가 가는 길의 위험을 누가 일깨워 주겠는가. 인간이나 신이나 순간의 미련이 하나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순간 순간의 미련함에 자조를 보내며 뒤 좌석에 깊이 앉아 생각에 잠긴다.
(1998. 10. )
'느림보 창작 수필 > 물밥(삶과 죽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주란이 꽃을 피울 때 (0) | 2001.11.10 |
---|---|
剝製와 벌레 (0) | 2001.07.24 |
두모실 언덕에는 눈발이 날리고 (0) | 2001.07.24 |
나뭇잎들의 생멸 원리 (0) | 2001.06.28 |
물밥 (0) | 2000.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