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해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을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朴木月 - 蘭에서-
木月은 그의 시 〈蘭>에서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난을 기르듯 조용히 살고자하는 뜻을 드러낸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여유롭게 갖고자 하는 소망을 밝히고자 한 것이라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위한 공간의 시간적 흐름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 사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쯤해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는 시인의 토로는 아무래도 넘친 여유로 생각된다. 더구나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은 신에 대한 거부가 아닌가?
목련이 질 때 떨어지는 창 밖의 목련을 바라보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쉽게 잊혀지는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움으로 남는 죽음은 별로 바라고 싶지 않다. 가까운 사람들 뇌리에 슬픔으로 남기 때문이다. 한으로 남는 죽음이 되기도 싫다. 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들의 가슴에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쉽게 잊혀지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할까? 목련이 지는 창 밖을 내려다보면서 새로운 의문에 사로잡힌다.
-목련꽃 지는 법-
나의 수필집 《축 읽는 아이》의 맨 끝자리에 수록된 <목련꽃 지는 법>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사는 것은 곧 죽음의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품위 있는 죽음은 품위 있는 삶으로만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고 믿었다. 완성된 삶만이 완성된 죽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말하면 나는 이 글에서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이므로 삶의 완성에 대한 나의 소망을 간절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죽음을 말해서는 안 되는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글을 작품집에 싣는 것에 대하여 한동안 고민하였다. 작품집의 주제를 여섯 개의 영역으로 분류하여 ‘나-가족-교육-탐욕-깨달음-죽음’으로 하여 ‘죽음’을 하나의 장으로 하였으면서도 이 글을 싣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솔직히 나로서는 드물게 깊이 있는 사색의 산물이라 생각되어 버리기가 아까웠다.
이와 같이 죽음의 글이 뜻하지 않는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栗谷 선생이 여덟 살에 지었다는 律詩 <花石亭>의 미연(尾聯)에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아,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울음소리가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라고 한 것에 대한 시화(詩話)를 읽은 후부터 더 확실해졌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율곡은 한시에서 금기로 되어 있는 ‘斷’字를 썼기 때문에 단명했다는 것이다.
이 근거 없는 믿음은 木月의 <蘭>을 읽고 더 굳어졌다. 이순(耳順)을 넘게 살았지만 어쩐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버린 것 같은 느낌이 평소에 그에게는 들었다. 이 시 첫 행의 ‘이쯤해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는 말이 소름이 끼치도록 섬뜩했다. 문득 ‘목련을 바라보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내 글의 한 문장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되었다. 그 두려움으로 망설이느라 출판이 늦어지기도 했다.
결국 나는 사실은 보잘것없는 글에 가볍게 목숨을 건 셈이 되었다. 작품집 맨 끝에 겁 없이 올린 것이다. 맨 끝에 올린 것은 망설임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책의 결론을 내린 것처럼 되어 버렸다.
책이 나오고 화려하게 출판 기념회를 하고도 자꾸 발길에 채였다. 출판 기념회에 건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참석하셨던 아버님께서도 처음에는 글이 좋다고 흡족해 하시다가 책을 다 읽으시고는 어쩐지 우울해 하시는 모습이었다. 물론 책 때문인지 당신의 미래를 예감하셨기 때문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자꾸 마음에 걸리었다.
그 후 아버님은 45일 만에 90년의 생애를 단 1시간 정도 ‘답답하다’하시다가 황황히 떠나 버리셨다. 나는 너무도 황당해서 몇 달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하얀 목련이 앞을 가렸다. 자판을 두드리면 무더기로 피어난 목련이 ‘우두두’ 쏟아지는 듯했다. 책을 펴면 갈피마다 아버님의 안경알이 번뜩였다. 술을 마시면 아버님의 흰 머리칼이, 모자를 쓰면 새털을 가지런하게 꽂은 아버님의 중절모가 보였다. 식탁에 앉으면 마지막 저녁 진지를 맛있게 드시던 아버님의 자리가 눈에 걸렸다.
3월 말 종친들은 나에게 벌이라도 내리듯 동구릉에서 거행되는 경릉제향(헌종대왕 능제향)에 초헌관으로 나를 선정했다. 아버님의 자리에 나를 세운 것이다. 첨담복으로 의장을 갖추고 맨앞에 서서 능역으로 행진하면서 언뜻 흘겨본 언덕에는 막 벙그는 목련 꽃 봉오리가 보였다. 순간 목련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처럼 고결한 아버님의 운명이, 내가 받을 신의 노여움을 대신하신 것이라 생각되어 가슴에 불화살을 맞은 듯했다. 계시지 않아 더 크게 느껴지는 빈자리로 견디기 힘든 봄을 맞은 것이다.
집례의 창홀은 나를 마구 꾸짖는 듯하다. 창홀에 맞추어 국궁사배를 올리면서 되뇌었다.
이제 다시는 ‘죽음’을 말하지 않으리라.
정말로 다시는 ‘죽음’을 입에 담지 않으리라.
신에 대한 모멸이고 거역인 ‘죽음’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리라.
(200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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