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도반(道伴)에게 물어봐

느림보 이방주 2013. 10. 30. 04:24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를 만나는 날 아침, 왼쪽 새끼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마치 가느다란 침을 가지고 손가락 관절을 찔러 살살 돌리는 것처럼 '찌리릿 찌리릿' 했다. 옷을 입다가 소맷자락이 스치면 절절한 통증은 손가락 끄트머리부터 어깨까지 고압 전기에 감전된 듯했다. 바람만 스쳐도 아파서 견딜 수 없다는 이른바 통풍이다. 이후로부터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살았다. 좋든 싫든 함께 가야할 반려자로 삼기로 했다. 달갑지는 않지만 내 삶의 벗이고 동반자이다. 나의 섭생을 동반자에게 물어 정하기로 했다. 일상의 하찮은 일이라도 섭생에 관련되면 즉시 그에게 물어 동의와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모처럼 불고기가 밥상에 오르면 즉시 동반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한우 고기 향기가 이토록 구수한데 몇 점 먹어도 될까요?"

"고소한 기름기는 가급적 피하고 살코기 다섯 점만 먹어 보게. 대신 50분간 땀 흘려 운동하는 건 잊어서는 안 되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타협한다.

"삽겹살에 소주 생각이 간절한데 제발 눈 한번 감아 주시지요."

"그건 곤란한데. 비계의 유혹을 물리친다면 살코기로만 100g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 소주는 절대 금물이라는 거 알지?"

"소주 없이 어떻게 삼겹살을 먹는단 말이오? 입술에 바르기만 해도 안 되나요?"

"소주는 단 한 방울도 안 돼. 밤새워 운동으로 땀을 낸다고 약속해도 허락할 수 없네."

“닭볶음탕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요?”

“그럼, 그럼 허락할 수 있지. 가슴살로 100g 정도.”

“그러면 나더러 팍팍하고 맛없는 가슴살만 먹으라고요?”

"그렇지. 나와 함께 백년해로를 해야 할 거 아닌가?"

이쯤에서 나는 눈물이 난다. 배고픈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눈앞에 보면서 참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회식인데 한우 꽃등심은 먹어도 될까요? 소주는 쳐다보지도 않을게요."

"그건 절대 안 돼. 자네가 80g만 먹겠다는 것도 못 믿겠고, 등심을 먹으러 가면 분명히 간이나 처녑이 상에 오르거든. 자네는 생간이라면 이성을 잃어버리잖나."

"눈에 좋으니까"

"그렇다면 먹을 만큼 먹어보게. 내일 아침에 내가 발작을 일으킬 테니. 이번에는 새끼발가락에 염증을 일으켜서 한 발 디디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말거야. 바람만 불어도 자지러지게 말이야."

"약속할게요. 꽃등심 살코기 80g만으로 만족할게요."

"내 두고 보리다. 그만큼 먹고도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해야 하고, 생수 1리터를 마시는 약속은 잊지 말게."

“언제까지?”

“영원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두부도 된장도 콩나물이나 숙주나물도 표고버섯도 시금치도 금지시켜 버릴 거야.”

 

그날 그의 명령을 어기고 꽃등심으로 배를 채웠다. 포악한 야생동물이 되어 입술에 피 칠을 해가면서 생간을 흡입했다. 참기름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씹히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금방 눈이 좋아져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한결 가까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정확히 이틀 후 왼쪽 새끼발가락 주변이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못 지나서 걷기는커녕 발을 옮겨 디딜 수도 없었다. 아내가 치맛자락이라도 스치면 뼈마디에 송곳을 박아 돌리는 것 같았다. 동반자는 철저하게 나를 응징했다. 이렇게 비정한 동반자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

 

고등어를 좋아했었다. 무를 넣은 고등어조림이나 잘 숙성된 자반고등어구이는 몇 주를 계속 먹어도 싫증나지 않았다. 꽁치를 좋아했다. 홍합을 고붕으로 올린 홍합짬뽕을 미치도록 좋아했다. 그러나 고등어 꽁치 홍합은 소고기보다 요산 발생률이 열배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금지된 먹거리이다. 그래 맞아. 이제는 입에 대지도 말자. 지금까지 먹어 치운 고등어 꽁치만으로도 다른 사람 열배도 넘으리라. 평생 먹을 것을 이미 다 먹어 치운 거야. 이렇게 자위하며 아예 눈을 돌렸다. 이제는 아예 생각도 없다. 다행이다.

 

의사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을 먹어야 한다는 요산 억제제를 먹으란다. 하루 한 알로 제어가 안 되면 하루에 두 알을 먹어야겠지. 나는 약을 먹지 않고 동반자와 타협하면서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정말로 열심히 물을 마시고 틈만 나면 걷고 운동하여 땀을 뺀다.

"편식하지 말게. 아니 이제 자네가 싫어했던 음식만을 먹어보게."

"아니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하더니 싫은 음식을 먹으라고요? 고기 없는 미역국, 카레라이스, 스파게티, 뭐 이런 걸 먹으란 말입니까?"

"그렇지, 그렇지."

 

냄새조차 역겨워했던 카레라이스도 이제는 직접 만들어 먹는다. 뷔페식당에 가면 스파게티를 찾는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섭생에 도를 이루었다. 동반자와 타협하고 약속을 잘 지킨 이태 동안은 단 한 번도 형벌을 받지 않았다. 타협의 도를 이룬 것이다. 두 시간을 계속해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써도 마디에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그를 알고 그가 나를 안다. 우리는 서로 묻고 답하면서 함께 도를 닦는다. 이제 거의 도를 이루었다. 사소한 섭생의 일도 묻고 타협하며 도를 깨우쳐가는 동반자이다. 그와 나는 남은 생애를 함께 할 영원한 도반이다.

 

(2013. 10. 16.)

 

에세이뜨락 - 도반에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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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3-11-03 오후 3: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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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약력

청주출생, 1998년 '한국수필' 신인상

충북수필문학상(2007),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 회장 역임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여시들의 반란'

편저 '윤지경전' (주식회사 대교)
공저 '고등학교 한국어'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를 만나는 날 아침, 왼쪽 새끼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마치 가느다란 침을 가지고 손가락 관절을 찔러 살살 돌리는 것처럼 '찌리릿 찌리릿' 했다. 옷을 입다가 소맷자락이 스치면 절절한 통증은 손가락 끄트머리부터 어깨까지 고압 전기에 감전된 듯했다. 바람만 스쳐도 아파서 견딜 수 없다는 이른바 통풍이다. 이후로부터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살았다. 좋든 싫든 함께 가야할 반려자로 삼기로 했다. 달갑지는 않지만 내 삶의 벗이고 동반자이다. 나의 섭생을 동반자에게 물어 정하기로 했다. 일상의 하찮은 일이라도 섭생에 관련되면 즉시 그에게 물어 동의와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모처럼 불고기가 밥상에 오르면 즉시 동반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한우 고기 향기가 이토록 구수한데 몇 점 먹어도 될까요?"
"고소한 기름기는 가급적 피하고 살코기 다섯 점만 먹어 보게. 대신 50분간 땀 흘려 운동하는 건 잊어서는 안 되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타협한다.

"삽겹살에 소주 생각이 간절한데 제발 눈 한번 감아 주시지요."
"그건 곤란한데. 비계의 유혹을 물리친다면 살코기로만 100g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 소주는 절대 금물이라는 거 알지?"
"소주 없이 어떻게 삼겹살을 먹는단 말이오? 입술에 바르기만 해도 안 되나요?"
"소주는 단 한 방울도 안 돼. 밤새워 운동으로 땀을 낸다고 약속해도 허락할 수 없네."
"닭볶음탕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요?"
"그럼, 그럼 허락할 수 있지. 가슴살로 100g 정도."
"그러면 나더러 팍팍하고 맛없는 가슴살만 먹으라고요?"
"그렇지. 나와 함께 백년해로를 해야 할 거 아닌가?"
이쯤에서 나는 눈물이 난다. 배고픈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눈앞에 보면서 참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회식인데 한우 꽃등심은 먹어도 될까요? 소주는 쳐다보지도 않을게요."
"그건 절대 안 돼. 자네가 80g만 먹겠다는 것도 못 믿겠고, 등심을 먹으러 가면 분명히 간이나 처녑이 상에 오르거든. 자네는 생간이라면 이성을 잃어버리잖나."
"눈에 좋으니까."
"그렇다면 먹을 만큼 먹어보게. 내일 아침에 내가 발작을 일으킬 테니. 이번에는 새끼발가락에 염증을 일으켜서 한 발 디디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말거야. 바람만 불어도 자지러지게 말이야."
"약속할게요. 꽃등심 살코기 80g만으로 만족할게요."
"내 두고 보리다. 그만큼 먹고도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해야 하고, 생수 1리터를 마시는 약속은 잊지 말게."
"언제까지?"
"영원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두부도 된장도 콩나물이나 숙주나물도 표고버섯도 시금치도 금지시켜 버릴 거야."

그날 그의 명령을 어기고 꽃등심으로 배를 채웠다. 포악한 야생동물이 되어 입술에 피 칠을 해가면서 생간을 흡입했다. 참기름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씹히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금방 눈이 좋아져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한결 가까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정확히 이틀 후 왼쪽 새끼발가락 주변이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못 지나서 걷기는커녕 발을 옮겨 디딜 수도 없었다. 아내가 치맛자락이라도 스치면 뼈마디에 송곳을 박아 돌리는 것 같았다. 동반자는 철저하게 나를 응징했다. 이렇게 비정한 동반자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

고등어를 좋아했었다. 무를 넣은 고등어조림이나 잘 숙성된 자반고등어구이는 몇 주를 계속 먹어도 싫증나지 않았다. 꽁치를 좋아했다. 홍합을 고붕으로 올린 홍합짬뽕을 미치도록 좋아했다. 그러나 고등어 꽁치 홍합은 소고기보다 요산 발생률이 열배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금지된 먹거리이다. 그래 맞아. 이제는 입에 대지도 말자. 지금까지 먹어 치운 고등어 꽁치만으로도 다른 사람 열배도 넘으리라. 평생 먹을 것을 이미 다 먹어 치운 거야. 이렇게 자위하며 아예 눈을 돌렸다. 이제는 아예 생각도 없다. 다행이다.

의사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을 먹어야 한다는 요산 억제제를 먹으란다. 하루 한 알로 제어가 안 되면 하루에 두 알을 먹어야겠지. 나는 약을 먹지 않고 동반자와 타협하면서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정말로 열심히 물을 마시고 틈만 나면 걷고 운동하여 땀을 뺀다.

"편식하지 말게. 아니 이제 자네가 싫어했던 음식만을 먹어보게."
"아니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하더니 싫은 음식을 먹으라고요? 고기 없는 미역국, 카레라이스, 스파게티, 뭐 이런 걸 먹으란 말입니까?"
"그렇지, 그렇지."
 

냄새조차 역겨워했던 카레라이스도 이제는 직접 만들어 먹는다. 뷔페식당에 가면 스파게티를 찾는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섭생에 도를 이루었다. 동반자와 타협하고 약속을 잘 지킨 이태 동안은 단 한 번도 형벌을 받지 않았다. 타협의 도를 이룬 것이다. 두 시간을 계속해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써도 마디에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그를 알고 그가 나를 안다. 우리는 서로 묻고 답하면서 함께 도를 닦는다. 이제 거의 도를 이루었다. 사소한 섭생의 일도 묻고 타협하며 도를 깨우쳐가는 동반자이다. 그와 나는 남은 생애를 함께 할 영원한 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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