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모양 촛대(사진 : 서울일보 이기현 기자)
사과모양촛대에 불을 켰다. 마치 가마에서 토기가 익어갈 때처럼 투명하다. 홍시가 저녁노을에 말갛게 익어가는 모습이다. 형광등을 꺼본다. 크고 작은 수많은 구멍에서 분홍색 빛이 색동테이프가 되어 온 방안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빛과 어둠이 갈라서는 부분은 쇳물이 흘러넘치는 용광로처럼 이글거린다. 태초에 빛과 흙으로 창조되던 지구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너울거리는 빛은 타오르는 내 안의 불줄기를 눈으로 보는 듯하다. 내면을 이렇게 찍어내는 사진기는 없을까?
향로에 마른 사철쑥을 올려놓는다. 향로에서 흘러나온 은은한 쑥향이 온 방안에 퍼진다. 그야말로 암향부동이다. 집안의 온갖 잡스런 냄새가 구멍 속으로 다 빨려들어 간다. 불은 세상을 이렇게 정화(淨化)시킨다.
사과모양촛대는 제자인 ‘제주도유’ 권명호 사장에게 선물 받은 토기이다. 제주의 흙에 백토를 섞어 빚어 그가 직접 구어 낸 명품이다. 구멍 뚫린 사과모양의 항아리 속에 촛불을 켜고 그 위에 향료를 얹으면, 바람에 불은 꺼지지 않고 향료가 서서히 타면서 은은한 향기가 실내에 흐른다. 촛대와 향로의 겸용이다. 마치 취사, 조명, 난방의 기능을 가졌던 선사시대 주거공간의 노(爐)와 같이 다기능이다.
옛날 부엌에서 쓰던 괘등도 모양은 다르지만 바람막이였었다. 원통형 옹기의 앞뒤를 약간 터서 그 안에 등잔을 넣었다. 부엌에서 김 서림과 솥에서 갑자기 내뿜는 증기의 힘으로 불이 꺼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과모양촛대는 더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 형태이다. 사과모양으로 만들어 상하로 반을 나누어 앙증맞게 올라앉은 새 모양 손잡이를 잡고 열고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불을 붙이고 덮어 놓으면 온전하게 한 개의 사과 모양이다. 수많은 구멍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빛이 나온다. 빛은 조명보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데 더 효과적이다.
우리 조상이 흙으로 빚어 등잔을 만든 것은 이미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한국 미술사를 읽다가 삼국시대의 다등식토기등잔을 본 적이 있다. 흙으로 빚어 원통을 만들고 거기에 등잔을 대여섯 개 정도 올려서 만들었다. 등잔만으로도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불을 켜놓으면 오늘날 고급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샹들리에 못지않게 화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기 등잔에 이어 조선시대에는 백자 등잔도 만들었다고 한다. 양반집에서 흔히 쓰이던 백자등잔은 서안(書案)의 높이로 바탕을 만들고, 윗부분에 등잔을 올린 것이다. 흥미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또 서민들은 목제 등잔대가 있어서 어린 시절 우리가 흔히 보던 것이지만 이것도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다. 조선시대 촛대도 은제 촛대, 청동기 촛대, 유기 촛대 등이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예전에도 등잔이나 촛대가 미적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은 신기한 일이다. 명호군이 이러한 등잔의 역사를 알고 미적인 기능을 강조해서 이 촛대를 만든 것 같다.
불이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다. 불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삶의 영역을 확대해 왔고, 세월이 갈수록 그 쓰임새가 다양해지고 있다. 불을 발견한 옛 사람들이 어떻게 흙을 불에 구워 그릇을 만드는 법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불과 흙이 따로 존재하면서 삶에 이용되다가 흙에 불을 가하는 지혜를 터득한 것은 정말로 신비에 가깝다.
촛대가 조명이나 의식용으로, 향로가 제사에 쓰이던 시대를 넘어서서 이제 생활의 품위를 돋우는데 쓰게 되었다. 사과모양촛대에 불을 켜고 마른 쑥 한 심지를 올려놓으면 황홀한 불빛과 은은한 원시의 향으로 마음의 평온을 가져온다. 흙으로 이루어낸 불의 신비를 눈으로 본다. 동서양의 창조 신화에서 불은 신성함과 정화, 부활, 열정 등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이제 우리의 삶도 다시 원시로 돌아가 흙과 불이 신화시대처럼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까지 한 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과모양촛대, 그 은은한 빛과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원시의 흙과 불의 신비로 집안을 그득하게 채운 것이다.
(2006.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