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아빠의 김밥

느림보 이방주 2001. 5. 20. 21:29
김밥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소풍이 생각난다.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가는 소풍날은 조무래기들이 천국에라도 가는 날처럼 들뜨게 마련이다. 그날만은 김밥말이 두세 개를 통째로 가질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시장에서 파는 하얀 나무 도시락이나 쌀알에 노란 물이 묻어나는 단무지를 사오실 줄 모르셨다. 쌀밥에 간을 하고 참기름을 듬뿍 넣고 집에 흔한 깨소금을 넣어 비빈 다음, 텃밭에서 뜯어온 시금치와 겨울을 된장 항아리에서 지낸 무장아찌를 넣어 둘둘 말아 신문지에 싸 주시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선생님 도시락을 챙겨 드리지 못했다. 혹 어머니께서 쑥을 섞어 찧어 봄 향기가 솔솔 피어나는 인절미를 싸 주셔도 촌스러운 포장 솜씨가 창피해서 골을 부리고 갖다 드리지 못하였다.


체험 학습이란 멋쩍은 이름이 붙여진 이번 가을 소풍 때이다. 학급 담임을 맡지 못한 나는 어느 학급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게 되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을 위하여 깁밥이나 집에서 나는 과일을 준비해오는 따뜻하고 도타운 정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중에 나의 어머니의 솜씨를 꼭 닮은 김밥이 보였다. 깨끗한 그릇에 담기는 했으나, 요즘 엄마들의 오동통한 작품은 아니었다. 엄마가 안 계신 학생이 제 손으로 선생님의 점심을 준비한 것이려니 생각하고 기특하게 생각했다.


제 손으로 선생님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기특함을 칭찬하려고 불러 보니, 그것은 뜻밖에도 아빠가 만든 김밥이었다. 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밝고 순진한 웃음을 생긋생긋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딸의 담임 선생을 위하여 김밥을 만드는 홀아비 아빠의 모습이나, 그런 아빠의 정성을 부끄럼없이 안고 온 딸의 순수함이나, 그렇게 학생에게 믿음을 준 담임 선생님이나 모두 나의 마른 가슴을 뻐근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의 철부지 어린 시절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학생의 아빠와 담임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보고 받은 충격으로 한동안 멍해졌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이렇게 청순하고 깨끗한 젊은이들이 더 많다. 아직도 이렇게 가슴 뭉클한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학교가 무너진다'고 말하지 말라. 학교는 '무너진다'는 말 때문에 무너진다. '절망하는 학생'이라고 말하지 말라. 학생은 '절망한다'는 말 때문에 절망한다. '떨어지는 교권'이라고 말하지 말라. 교권은 '떨어진다'는 말 때문에 떨어진다.


좌절, 절망, 추락의 씨를 뿌리지 않는 것이 진정 이 나라 교육의 장래를 걱정하는 첩경이다.


(1999. 11. 5. 충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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