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어머니의 눈물

느림보 이방주 2001. 6. 1. 13:45
아침 여섯 시에 아파트 앞산이 젖빛 안개 속에 보일 듯 말 듯할 때면 가을날 이 시간에 이역 만리 먼 길을 떠나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코가 시큰해지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된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하여 당신의 살이라도 베어 먹이실 분이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찌적찌적 눈물이 마르실 날이 없었다. 대학입시 공부 때문에 한밤 중 돌아오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는 눈에는 항상 눈물이 묻어 있었다. 학교가 멀어 저녁을 굶고 열 한시까지 공부하고 시오리를 걸어오는 자식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으셨을 것이다.

대학에 합격하는 날은 그런 어머니의 회갑 날이었다. 어머니 앞에 합격 통지서를 내드렸을 때도 어머니는 새로 지은 고운 옷고름을 눈가로 가져 가셨다. 내 마음속에 가고 싶은 대학이 따로 있음을 당신께서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이 되어 처음 객지로 떠나는 나를 바라보는 눈에도 눈물은 괴어 있었다. 미련하게 4년이나 벽지 근무하면서 가끔 들렀다 떠날 때에도 대문간에서 항상 흰색 무명 앞치마 자락을 손에 감싸고 계셨다. 장가들어 열 세평 아파트에 살림을 차렸을 때 가끔씩 씀바귀를 캐오시면, 커다란 그릇에 밥을 비벼서 소담하게 먹는 걸 바라보시는 눈에도 눈물은 마르지 않으셨다. 어려서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이지 못한 것이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이 한창인 어느 날 새벽 혼수상태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실 때 한 주일 동안 한 번도 떠보지 못하셨던 눈을 조용히 쓸어 내리는 내 손에도 어머니의 마지막 눈물이 묻어 있었다.

이제 그 어머니의 눈물을 아내에게서 본다. 수험생인 자식이 열 한시 넘어 돌아 올 때, 대학 시험을 보는 날, 아내의 눈에서 옛날 어머니를 발견한다. 자식을 위하여 부처님 앞에 절 공양으로 백팔 염주를 몇 바퀴 돌리고 돌아설 때, 흡족한 표정 너머 커다란 눈에 눈물이 출렁인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렇게 눈물로 자식을 키운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어머니의 눈물로 자란다. 이제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 운명처럼 다가오고 있다. 그들은 먼저 자신은 어머니의 눈물이 한올한올 응어리진 고귀한 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어머니의 눈물을 볼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가슴속 깊은 곳에 자신의 눈물을 묻어야하는 아픔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앞날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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