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過猶不及

느림보 이방주 2001. 3. 3. 23:55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것은 오히려 미치지 못함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모든 일이 '간이 맞아야 한다'는 말로 생각하고 싶다. '간'이라는 것은 간장, 된장, 소금과 같은 짠맛을 내는 음식을 말하기도 하고, 짠맛의 정도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간을 보다', '간이 맞아야 제 맛이 난다.' 등의 짠맛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 흔히 쓰고 있다.

음식은 간이 맞아야 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김치는 간만 잘 맞으면 신비스러운 맛을 내게 되어 있다. 너무 싱거우면, 군둑내가 나고, 지나치게 소금을 많이 넣으면 짜다못해 쓴맛을 내게 된다. 그러니 김치에 간을 맞추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1½ 계량 스푼' 어쩌구 해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다.

비들비들 살이 없는 놈이 있는가 하면, 오동통하게 살이 붙은 놈도 있어서 그에 따라 간을 맞추는 방법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가족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간을 보아 온 경륜이 아니면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며느리도 김치의 간 맞추는 일만큼은 시어머니의 경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치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 간이 맞아야 된다. 찰밥은 찰밥에 맞는 간이 있고, 오이 냉국은 오이 냉국에 맞는 간이 있다. 커피도 간이 맞아야 향이 사는 것처럼, 식혜는 식혜의 간이 있고, 화채는 화채의 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음식은 짠맛이든 단맛이든 간이 맞아야 한다.

음식뿐이 아니라, 삶의 방식도 간이 맞아야 한다. 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연일 잔치를 베푸는 것은 이웃의 불행을 배려하지 못하였기에 주책이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질질 짜는 것도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수 천 만원 짜리 외투를 선물하는 것은 인사에 간을 맞추지 못한 것이어서 차라리 좀 모자란 것만도 못하다. 모든 일에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정도(正道)가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바로 이러한 삶의 방식에 간을 맞추라는 뜻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삶의 간을 맞추는 일에 순리와 상식을 따르는 천부적인 재간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몇몇 인사들이 상식을 초월하고 순리의 물길을 거꾸로 돌려 생활의 간 맞추기를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라도 이 순리의 물길을 되찾을 길이 있을까? 간이 잘 맞아 새곰새곰 잘 익은 김치라도 자꾸 먹으면 찾아질까?

(1999. 9.13 . 충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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