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나나니벌 이야기

느림보 이방주 2001. 3. 3. 23:51
나나니벌이라는 곤충이 있다. 예전 우리 전통 가옥의 기둥이나 석가래에 구멍을 뚫고 황토를 물에 적셔 구멍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고 사는 벌처럼 생긴 곤충이다. 벌보다는 좀 까맣고 반짝반짝 윤이 난다.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이지만, 그 놈을 벌로 착각하여 '벌목 나나니벌과'에 속하며, 그냥 '나나니'라고 부른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는 많지 않다. 옛날 어른들은 벌처럼 생겼으나, 벌보다 날씬하고 예쁜 이 곤충을 '나나니'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나니는 본래 스스로 새끼를 치지 못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벌집에 들어가서 새끼를 훔쳐 온다. 어린 벌의 새끼를 훔쳐다 놓고 제가 좋아하는 먹이를 먹이며 날마다 "나 닮아라. 나 닮아라"하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러면 벌의 새끼가 까맣게 윤이 나는 나나니벌로 변한다.

교사는 '사람 만드는 사람'이다. 교사가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다운 사람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으로 인해서 남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는 일생 동안 안으로 자신을 갈고 닦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 기준에 맞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구안하고 자료를 개발한다.

초임 교사는 신선한 시대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원로 교사의 인품이나 경륜과 진솔한 사명감을 따르지 못한다. 원로교사만이 서두루지도 않고 "나 닮아라."하고 꾸준히 외는 '나나니'가 될 수 있다. 그는 학생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날마다 새로운 열정이 생긴다.

학교는 지난 8월만큼 잔인한 달은 없었다. 지난 8월, 우리는 어느 벌보다도 반짝반짝 윤이 나고 새까만 '나나니'들을 수없이 잃었다. 더러는 물러나야 될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지탱해온 학교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듯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다.

그들이 '나를 닮아라'하고 입이 닳도록 외던 벌 새끼들은 벌도 아니고 나나니도 아닌 기형아가 되지나 않을까 안타깝다. 백발동안(白髮童顔)의 노교사로부터 받은 어린 날의 잔잔한 감동은 그가 사회에 중심에 섰을 때 더 많은 사람에게 태양빛 같은 삶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1999. 9.2 충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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