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월 19일은 한가위 바로 이튿날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매봉산에 올랐다. 매봉산에서 이른바 생태 보호 육교를 지나서 구룡산에 오르려고 마음 먹었다. 다리로 막 내려서려는데 고구마 밭이 있었다. 그런데 고구마 밭에 왠 보라색 메꽃이 소복하게 피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건 메꽃이 아니라 고구마꽃이었다.
고구마꽃을 처음 보았으니 구룡산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되짚어 가 보니 꽃을 누가 꺾어가 버렸다. 불과 몇 분 만인데 아쉬웠다. 공연히 강선생에게 전화를 했다고 후회하면서 고구마 밭을 둘러 보았더니 여기저기 소복소복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침 햇살을 맞으며 청초하게 피어난 꽃송이들과 봉오리를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신기해서 지나는 사람마다 고구마꽃 구경을 하라고 일러 주었지만 젊은 사람들은 별 희안한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지나가고 연세 많은 분들만 신기한 듯 한참을 보다가 지나갔다.
보라색 고구마꽃
세송이 네송이씩 매달린 꽃봉오리
말썽많은 생태 육교
고구마밭 바로 아래에는 모충공원으로 불리는 매봉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생태 육교가 있다. 시에서 토지개발공사와 협력하여 작년에 착공하여 완공을 본 것이다. 시에서 내세우는 목적은 구룡산에 사는 동물이 매봉산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갸륵한 생각인가?
본래 매봉산이란 이름이 생긴 것은 언제인지 모른다. 예전에는 그냥 구룡산이라 불렀다. 속리산에서 뻗은 산 줄기 하나가 문의 현암사로 건너 뛰어 봉무산을 이루고 봉무산이 척산 방고개를 건너 뛰어 또 용덕산을 일으킨다. 용덕산은 대련에서 석판으로 넘어오는 희어티를 건너뛰어 매름산(망일산)에서 불끈 한 번 솟았다가 지금 세광고등학교와 수자원공사 배수지가 있는 무너미 고개로 한 번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해서 매름산의 한 줄기가 평평하게 우리가 사는 동네까지 이어지다가 원흥이 마을 뒤에서 작은 봉우리를 이루는데 이 봉우리가 바로 구룡산 정상이다.
개신 오거리에서 분평동으로 나가는 우회도로가 구룡산 줄기를 넘어가는데 우리 아파트 옆에 바로 옛날에는 고개가 있었다. 에전에는 청주 시내의 시체가 지금은 삼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공동묘지로 가기 위해서 그 고개를 넘었다 해서 송장 고개라 했다고 한다. 그 고개에 길이 생기면서 구룡산 정상과 지금은 매봉산으로 불리는 구룡산 두루봉이 나누어진 것이다. 그걸 인위적으로 이어놓은 것이 이른바 생태 환경 육교이다.
이 다리로 인해 만일에 세광고등학교도 없고, 수자원공사도 들어오지 않고 무너미 고개에 큰 길이 나지 않았으면 용덕산의 멧돼지가 거침없이 구룡산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두루봉 아래에 있는 우리 아파트 마당에도 멧돼지가 나타나 씩씩거렸을지도 모른다. 희어티에 포장도로가 났다지만 밤에는 통행이 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이 생태 육교로 우리 아파트 마당에도 멧돼지가 씩씩거리며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가지고 이 육교가 건설했다지만 환경 단체들의 말에 의하지 않더라도 이 다리로 과연 다람쥐 한 마리라도 건널 수 있을까 의문이다. 결국 사람들의 등산로가 되어버릴 것은 뻔한 노릇이다. 다리의 모양을 보더라도 사람이 다니기 편리하게 공사를 하지 않았는가? 그건 빤하게 드러나는 속셈이다. 이 다리로 건너 날마다 아침 운동을 하면서도 자꾸 넓어지는 산책길이 민망하다.
환경 생태 육교가 제 구실은 한다면 서울시내에도 멧돼지가 나타난다는 이즈음 이 고구마밭에도 그들이 다녀가서 꽃은 커녕 고구마 덩굴도 구경 못했을 것이다. 그 애들이 지나간 자리의 황폐함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새벽에 등산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게 보존이고 어떤게 훼손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200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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