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30일
지난주 낙영산 산행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날은 공림사에 주차하고 낙영산과 조봉산의 중간 지점 안부를 거쳐 도명산으로 넘어가는 계곡으로 내려가 도명산 정상에 올라 능선을 타고 다시 낙영산 줄기를 타고 돌아 내려오려고 계획을 했었다. 그런데 안부에 오르기도 전에 어쩐일인지 항상 나보다 앞서던 아내가 힘들어 했다. 안부에 올라 도명산 정상에서 화양동 계곡에 내려다 보이는 단풍의 절경에 대한 욕심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냥 낙영산 지름길을 택했다. 아내는 작은 바람에도 힘들어 했다. 추위를 많이 탔다. 아무래도 몸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정상을 지나 따뜻한 바위에 몸을 녹이고 한동안 앉아 느티나무 고목에 둘러싸인 공림사만 내려다 보다가 돌아왔다.
단풍에 굶주린 올가을을 그냥 보낼 수 없기에 일주일 외국 여행에서 돌아온 아내를 달래 칠보산에 가자고 했다. 혼자 갈 수도 있지만 혼자 가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아침 매봉산을 넘어오는 햇살이 찬란하다. 가방을 챙기는 손이 가볍다. 밥 한통과 된장국이면 그만이다. 버리미재에서 막장봉과 장성봉을 넘어와 한번 푹 숙여진 관평재를 넘어서 만나는 첫 계곡 어귀에 있는 쌍곡 휴게소에는 벌써 관광버스가 즐비하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바라보는 하늘은 이마를 베어갈 듯 눈이 시리다. 그 때까지도 햇살은 찬란하다. 하늘은 맑은 샘물 한 동이를 이고 가는 댕기머리 아가씨의 눈처럼 맑다. 대가집 노마님의 비취 비녀처럼 푸르고 깨끗하다. 하나의 커다란 보석이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칠보산은 그야말로 칠보를 담아 놓은 듯 아름답다. 희끗희끗 바위나 푸릇푸릇 소나무가 어우러진 사이로 붉디붉은 단풍이 처절하다. 하늘과 산이 하나의 커다란 보석상이다.
절말 주차장에서 바라본 칠보산
쌍곡 폭포에 떨어지는 물은 유리처럼 맑다. 크지는 않지만 해묵은 소나무에 둘러싸인 바위 위에서 물이 쏟아진다. 소나무가 머금었다가 토해내는 것처럼 솔향이 퍼질 것 같다. 소나무 사이사이로 붉은 잎이 보인다. 물은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인 막장봉에서 바람을 타고 운명처럼 북쪽으로 떨어져 괴강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게 된 것이다. 소나무 아래 차가운 바위에 앉아 물을 바라보면서 흐름의 운명을 생각해 보았다. 사실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꾸 인생과 견준다는 것도 자연에 대한 방자함이라는 생각을 요즘에는 하고 있다. 그러나 물은 어째서 물이 되었고 바위는 어쩌다 바위가 되었나 하는 어린애 같은 궁금증을 떨쳐 버릴 수는 없다.
단풍과 어우러진 쌍곡폭포
계곡은 가파르지 않고 평탄하다. 봄에 왔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다. 울퉁불퉁하던 돌길은 사람들의 발길에 다져지고 다듬어져 다진 사십대 여인의 마음처럼 돌출도 없다. 봄에 한창 꽃이 피어 흐드러졌을 때를 청순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단풍에 어우러진 이 날의 아름다움은 노년의 원숙함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산에 봄에는 하얀 꽃이 그렇게 깨끗하게 흐드러졌던 기억이 난다. 봄에는 초록과 하양 뿐이던 산이 오늘은 온통 노랑, 붉은색, 옅은색, 짙은색, 연두색 초록색이 다 아름답고 조화롭다.
단풍의 터널을 지나며 언젠가 내장산 단풍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던 '물들이기'를 상기했다.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이기를 하고 있는 자연은 과연 무엇으로 그렇게 익어가는 것일까? 여름동안 햇볕을 받으면서 어떤 고뇌로 지냈기에 그렇게 서로 다른 색깔을 내고 있는 것일까는 제법 깊이 있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들에게 미안한 얘기이지만, 사람들도 제나름대로 삶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물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또 해보았다. 내장산 때보다 더 나이를 먹은 나는 어떤 색깔로 또 변해 있을까? 두렵다. 참 두렵다. 자연처럼 세상에 드러나는 나의 색깔이 두렵다. 단풍의 터널 속에서 저렇게 뚜렷하고 색다르게 드러나지 않는가? 그런 자연에 비하면 한없이 다르게 생긴 나의 모습이 참으로 두렵다.
단풍의 터널에서
아내는 가장 화려한 불꽃 아래에 섰다. 낙영산 등산 때 보다 훨씬 신신하다. 낙영산에서는 아마도 물들이기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시드는 갈잎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자들은 아무래도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은 더 화려해지는 모양이다. 남자들이 나이 들수록 철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늙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이 아니라 육체에만 해당되는 일인 모양이다. 몸이 늙은 것 만큼 마음도 함께 나이를 들어 간다면 정말 철난 사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몸은 늙어가면서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다. 아이들처럼 철없고, 쓸데없는 기대에 넘치고, 터무니없는 욕심을 내고, 기이한 상상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평범한 남자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철은 없지만 아직도 청춘인 내 안이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소녀처럼 부끄러움이 남아있는 아내가 밉지않다. 아직도 여고 시절처럼 터무니없는 욕심과 꿈도 잃지 않고, 아직도 말광량이 같은 여고 시절의 친구를 만나는 아내가 부럽다. 마음은 그렇게 도도하지 않은데도 초등학교 친구들에게나 고등학교 친구들 앞에서 점잔을 빼는 내가 우습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내의 마음 속에는 단풍처럼 불타는 청춘이 남아 있어 보인다. 원숙하게 익어가는 중년 여인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은 단풍처럼 타는 불꽃이 더 좋다. 그리고 나는 아내의 마음에서 그 타는 불꽃이 영원히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도 참으로 터무니없는 욕심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타는 불길 같은 단풍, 단풍처럼 타는 마음
우리의 꿈은 사실 꿈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서 뻗어 올라가는 낙엽송처럼 그렇게 쭉쭉 뻗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애쓰는 삶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낙엽송의 성벽이 멋있어 보이는 것을 보면 이제는 탈선의 아픔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때로 규범을 원망하면서도 그 규범의 테두리를 두려워할 줄도 안다. 이제는 억지로 억지로 규범 안에서 머무르려고 애쓰지 않아도 힘겹지않게 규범 안을 맴돌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낙엽송은 아직 자신이 낙엽송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에게서 서서이 푸르름을 빼앗아 가고 있다. 이미 연두색을 지나 노랗게 탈색되고 있다. 세월은 그렇게 현재에 머무름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섭리의 동아리에 묶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철부지인지도 모르지만 낙엽송의 城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이미 섭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마음이 이미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낙엽송의 성벽
나는 아직은 다섯 시간을 넘겨 자지 않는다. 특별히 피곤한 날을 제외하고는 다섯 시간이면 아주 족하다. 열 두시에 잠자리에 들면 다섯시 반이면 일어난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가 불안하다. 저녁에는 늘 해야 할 일이 있고 아침에도 늘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이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몸에 밴 내 생활이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매우 괴롭겠지만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이 내 등뒤에서 타는 단풍의 불꽃같은 나의 마음 탓이었으면 좋겠다. 등에는 저런 화려한 불꽃을 짊어지고 바위 위에 저렇게 오똑 앉아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어둠을 헤치고 구룡산에 오르고, 별일없는 저녁에는 또 운동장에 나가 쓸데없이 어정거리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 나이의 마음 속에도 저런 불꽃이 들어 있을까? 나이는 몸에만 드는 것이지 마음은 언제나 따라 들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 참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것이 참인지도 모른다. 나도 때로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그런 저런 동아리 벗어날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생각 쁜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그건 참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이도 어느 정도는 몸을 따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내 안에도 가끔은 아니 아주 자주 저런 불꽃이 튀고 있음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인걸 어찌할 수 없다.
등에는 저런 화려한 불꽃을 짊어지고
"모래를 혜리로다." 이것은 관동별곡의 한 구절이다. 송강이 관동 팔경의 경치를 보면서 그 맑은 물에 감탄하며 올린 탄성이다. 모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자연은 아직도 우리세상에 이렇게 남아 있다.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는 송강의 관동별곡을 읽으면 그 아름답고 화려한 수사보다도 먼저 송강의 진실을 의심하게 된다. 그는 과연 죽림에 묻혀 천석고황(泉石膏肓)에 시달리고 있었을까? 강원도 관찰사를 제수받고 황급히 뛰어가 부임일정을 잡은 그가 벼슬이 싫어 강호에 묻혀 자연만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맑은 물이 두려웠을 지도 모른다. 마음 속에 모래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모래를 혜리로다."라고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맑음을 지향하고 있다고 읊어댄 조선의 선비들이 정말로 맑음을 좇고 있었을까? 맑음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저렇게 맑은 물처럼 말이다.
맑은 물에는 세상이 다 비친다. 물 속에 들어 있는 모래나 자갈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물 밖에 있는 하늘도, 구름도 , 성낸 인간의 얼굴도 다 보인다. 정말 두렵지 않은가? 나는 쌍곡의 이 맑은 물에 나뭇가지 뿐 아니라 하늘까지 비치는 모습이 두려워 더 이상 내려다 볼 수없었다. 내 마음에 숨어 있는 모래가 다 비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래를 혜리로다
맑은 물은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도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고운 단풍이 정말 아름다워서 지나는 등산객에게 부탁했다. 둘이 이렇게 서고 보니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냥 그렇게 자연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지나는 사람도 아마 그런 마음으로 즐겁게 셔터를 눌러 주었을 것이다. 굵은 나무들이 너무 굵에 나와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우리의 소망을 담고 있는 듯하다.
등산하는 사람들의 마음
정상에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신문지 조각, 귤껍질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줍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늘 가는 우리의 자리에는 건장한 청년들이 앉아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옆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폈다. 산 전체가 불 붙은 듯하다. 계곡에는 붉은 물이 흐를 것 같다.
좋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스산한 바람이 휙 불어 온다. 하산을 서둘렀다. 산아래는 햇살이 따뜻하다. 오늘은 정상에 오르는 동안 너무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산이 노해서 꾸짖은 것이 아닐까? 온 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20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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