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불의 예술(멋)

질마재에는 비가 내리고

느림보 이방주 2003. 6. 12. 16:18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빗방울이 차창에 듣는다. 골짜기마다 푸르름에 젖은 다락논에는 물이 흥건하고, 하늘에서 파란 솔잎이 비와 함께 쏟아져 꽂힌 듯 모가 땅내음을 맡고 생명을 뿌리를 퍼렇게 내리고 있다. 주변의 싱그러운 풍경이 여유 있어야 할 시골길 운전을 서툴게 한다.

질마재를 넘으며 찻집 '응달마당'에서 마신 진한 대추차의 뜨거운 향이 아직 입술에 묻어 있는데도 속이 궁거웠다. 친구가 들고 온 가방의 불룩한 배가 아까부터 눈에 걸린다. 흥건하게 물이 채워진 흙논이 시원하다. 해오라기 한 쌍이 써레질해 놓은 무논에 투명한 그림자를 담그고 우아한 목을 갸웃거리며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한다.

차 한 대 거리의 갓길이 있다. 차를 세웠다. 마침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기슭에는 목화송이를 흩어놓은 것처럼 찔레꽃이 하얗다. 송화 가루 하나 섞이지 않은 늦은 봄비에 씻긴 하얀 꽃무더기가 애잔하기만 하다. 꽃무더기 사이로 솟아오른 찔레순이 풍성하다.
박자를 배우지 못한 빗방울은 쉬지 않고 차창에 엇모리 장단을 놓는다. 뒷좌석의 사십대 중반의 여인들은 소녀 시절의 낭만을 기억하는지 차창을 열라고 성화이다. '스르륵' 창을 여니 알싸한 찔레 향이 '쏴아' 밀려온다. 두 여인은 동시에 '아, 이 향…' 하고 열여덟 소녀들처럼 눈을 감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도망쳐 나온 열여덟의 환상의 세계를 함께 경험한다.

문을 열어 놓고 환상의 냄새에 취해 고소하고 옅은 커피를 마셨다. '응달마당'의 대추차 향이 가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길 위에서도 초여름의 찔레꽃의 애잔한 향기를 담은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문화가 고맙다. 물에 흠뻑 젖은 산야는 더 없이 흥건하고 풍요로운 원시의 향기를 내뿜고, 우리는 어느덧 흙이 연출하는 원시의 페스티벌에 매혹된다.

청안에서 화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질마재'는 같은 이름 때문인지 넘을 때마다 미당의 시집 「질마재 신화」의 '재곤(在坤)을 생각나게 한다. 진정한 땅의 냄새를 맡으면서 '땅에 존재하는' 신화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질마재를 내려오는 골짜기의 응달말이나 양달말에 어디에서든지 땅이 좋아서 앉은뱅이로 사는 '재곤이' 같은 이가 멍석을 겯는 모습이 보일 듯했다. 더욱이 찻집 '응달마당'에 올망졸망 매달린 맨발로 땅을 디디고 살아온 우리네 옛 삶의 흔적을 더듬으면, 미당의 고향인 '질마재'가 아니라도 질마재의 신화가 묻어나는 것만 같다.

자연은 원시적이어야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인가 보다. 원시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신화도 묻어 있고, 그래야 인간의 삶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피할 수 없는 흙의 향기에 취해서 잠시나마 찔레꽃 같은 소박한 가슴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친구의 얼굴에는 평소보다 더 수택(手澤)으로 빛나는 오지그릇 같은 투박한 정을 담고, 아내들은 흙의 향기에 취해 열여덟 소녀의 경쾌한 웃음을 낙화처럼 흩어낸다.

질마재에서 내려오는 길 양편의 논밭은 잡초 하나 없이 깨끗이 정리되었고, 원시의 땅에 뿌리내린 작물들은 진한 생명력에 취해 있다. 어쩐지 질마재에 삶을 얹은 모든 이들의 삶이 이렇게 깨끗하고 생명력 넘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생활보다 '재곤'이의 먹거리를 먼저 걱정할 것 같고, 누군가의 입성을 더 먼저 걱정할 것 같은 산수(山水)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커피 잔에 담긴 찔레꽃 향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도회의 우울'을 씻고 모처럼 맡은 질마재의 흙냄새를 가슴 가득 안고 골짜기만 조심스럽게 골라 디디었다.
(200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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