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의풍일기 2

느림보 이방주 2000. 9. 18. 23:27


1976년 8월 26일 흐림
경호가 학교 오자마자 삶은 강냉이를 내놓는다.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따끈따끈하다. "경호야, 아침에 강냉이만 먹었니?" "아니요." 대답은 아니라지만 아닌 것 같지 않았다. 양식을 덜어 보내는 정성이나 들고 오는 순진함에 목이 멘다. 교무실에서 생각 없이 한 자루씩 들고 뜯는다.
숙제 안해온 상영이 종아리를 때리며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상영이는 동네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지내던 날 개근상 타려고 학교에 온 아이다. 결석이 아니니 빨리 가보라 해도 울먹이며 눌러 앉던 그 놈의 모습이 생생하다. 종아리를 때리며 마음이 아픈 것은 무슨 이유인가?
점심 시간에 도시락 검사를 하며 내 밥그릇과 비교해 본다. 나도 서슴없이 저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 밥그릇과 바꿀 수 있는가?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자신이 없다. 강냉이와 디딜방아로 찧어 낸 보리쌀을 감자와 섞어 삶아 낸 밥, 그 위에 흐르는 벌건 반찬 국물, 보리쌀, 강냉이가 툭툭 불거져 나왔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부자다. 밥집으로 가다가 아무도 없는 그네에 앉아 주저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저들은 제모습이 부끄러울까? 배고픔이 서러울까? 똑같은 아이들인데 쌀밥 먹는 놈, 보리밥 먹는 놈 강냉이 삶아 오는 놈, 그나마 없어서 텅 빈 운동장에 그토록 경쟁이 심하던 그네를 독차지하고 앉아 있는 놈 ―그들의 그 쓸쓸하고 어색한 모습, 얼마나 그 시간이 지루할 것인가 ― 천차만별이다. 누구의 죄인데 그 아이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도 잠시, 밥집에 돌아오면 나는 흰밥 한 그릇을 후딱 잘도 비운다. '학장님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니 스승이 되기는 글렀습니다.' '스승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 한 임창순 학장님의 졸업 식사가 문득 생각난다.
야속하게도 3학년이 되었어도 글을 모르는 복성이, 영준이, 춘희, 영순이, 용만이, 밥집 아들 영학이, 그 이름 재두. 남겨 놓고 달래도 보고, 으르렁거려도 보고, 세상 울고 싶다.
길자와 원고를 쓰는데 석회 종이 울린다. 늘 그 소리, 그 소리, 또 그 소리, 듣고 흘리는 그 소리. 도대체 사람 일곱 명이 보는 대로 보이는 대로 아무나 먼저 하면, 후배는 뒤따라가면 되는 것이지 지시하고 말고 할게 무어란 말인가? 교장, 교감, 주임교사 둘, 교사 셋, 지시하는 사람보다 지시에 따라야 하는 사람 수가 더 적은 곳에서, 웃기고들 있네 정말. 교육이 코미디인 줄 아나?
베짱이가 베를 짠다. 침대 가까이 창가에서 오던 날부터 짜는 베는 아직 필이 차지 않았나 보다. 귀뚜라미조차 운다. 아니, 울린다. 밖에 누가 온 것 같다. 술 마시자는 사람이냐? 우렁각시냐? 귀뚜라미야, 베짱이야, 자꾸 울어라. 세월이 간다.

1976년 8월 27일 종일 비
간밤에 옆집 고씨 부인이 몹시 앓는 소리가 났는데 아침에는 조용하다. 이 철거당한 화전민촌 연립 주택은 옆집에서 요강에 오줌 누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친구들과 빈손으로 싸우는 꿈을 꾸다가 잠이 깨었다. 일어나 앉으니 머리가 혼란하다.
밖은 이슬비가 온다. 체육복을 입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신작로로 올라갔다. 비가 머리에 떨어진다. 그리고 옷에도……. 잔디가 참 곱기도 하다. 푹신한 양탄자 같다.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도로 걸어 집에 왔다.
직원 조회 시간에 '방과후에는 교무실에서 사무를 보라'는 요상한 지시를 받았다. 이제 모두를 시야 가운데 두겠다는 거겠지.
비가 자꾸 쏟아진다. 복성이가 나머지 공부할게 아침부터 겁이 났는지 울먹이며 "선생님요, 엄마가 물 많다고 조퇴하고 오락했어예." 한다. "너희 집 가는데 개울이 어딨어" 하려다가 다른 이유를 들어 허락하지 않았다. 공부가 왜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선생이 인간이 덜 되어 그렇겠지. 참 스승이 되지 못해 그런 거야. 참 멀다 멀어. 미술 시간에 '그리고 싶은 것 그리기' 하고 무책임한 주제를 칠판에 써 놓고 빙빙 도는 나. 전철을 밟고 있지 않은가? 깨어나라. 깨어나라. 너는 벽지 학교 선생이야. 불쌍한 애들, 문화 실조라든가 뭐라든가 그 실조에 걸린 애들에게 보약을 먹여야 하는 선생이야. 그래도 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인간적이지 않은가? 그 애들에게 인간을 배워라.
비는 억수로 퍼붓는다. 개울물이 부쩍 늘었다. 산골 물이 위험할 것이다. 그래도 그런데 에는 나보다 더 단련된 아이들이다. 비를 맞으며 하교하는 아이들과 틀림없이 낮잠이나 자고 있을 그의 아버지를 번갈아 그리며 아이들 하교 길에 나가 본다. 학교로 돌아온다. 거기에는 '비를 억수로 맞아도 좋으니 집에만 보내 주었으면'하는 검은 눈동자들이 애처롭게 나를 맞았다. 그러나 안 보내 준다. 속셈 배워야 속셈이 생기고, 나눗셈을 알아야 나눠 먹기를 할거 아니냐? 이 순진한 놈들아. 베틀재를 넘어가면 사회는 그렇게 쉽지 않느니라. 속셈과 나눗셈의 천지임을 왜 모르느냐?
길자와 어제 쓰다 남은 '우리 동네 고압선'의 원고를 끝마쳤다. 보고 통제 공문으로 지시된 '감전사고 방지를 위한 글짓기' 원고 모집이 급해서 나는 부르고 길자는 받아써서 만든 원고다. 전기 구경도 못한 아이들에게 감전사고 방지를 위한 글짓기라니. 그러나 마감 날을 어기면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전기가 없다고 항의하라고? 그러면 융통성 없는 공무원으로 낙인찍힐 것이고. 이렇게 선생을 포기하고 독재의 공무원으로 훈련되어 가는 거지. 길자 이름으로 출품된 원고가 입선되면 길자는 문학 소녀이고 나는 유능한 작문 지도 교사가 된다.
퇴근길에 무섭게 내려가는 물을 본다. 솟아오르는 흰 물결, 산골을 울리는 돌 구르는 소리. 무섭다. 어지럽다. 방에 비가 샌다. 천장 반자가 삼분의 일쯤 찢어져 내렸다. 매캐한 냄새가 난다. 방에 떨어진 먼지와 오물을 쓸어내고 걸레질을 했다. 반자의 찢어진 부분을 잘라서 걷어 냈다. 오늘 저녁에는 쥐들이 방바닥으로 점프를 할 것을 생각하니 '쿡' 웃음이 나왔다.

1976년 8월 28일 흐림
5시 50분, 꿈 생각을 하며 신작로를 뛰었다. 새벽마다 뛰는 이 베틀재 넘어가는 길. 아주 넘어갈 날은 언제인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이슬비가 내린다. 산 중턱에 걸린 흰구름이 그림 같다. 뜯어 헤쳐버린 장건지 마을이 황량하다. 난민 수용소 같은 마을 연립 주택으로 모두 이사하고 빈터에는 거무죽죽한 구들만이 너절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철거를 비관하며 늘 술을 마시고 싸우고 한다. 양처럼 순한 이들의 쫓기는 삶이 처절하다. 내려오는 길은 질펀하고 물이 흐른다. 고요한 산골마다 물소리―, 물소리―.
복성이를 마구 때리며 속으로 울었다. 나의 갑갑한 마음을 눈곱만치라도 알아 다오. 재두, 춘희, 영순이는 오늘도 또 못 읽는다. 매도 대지 않는다. 미워할 수도 없다. 포기할 수도 없다. 한숨만 쉬었다. 마구 울던 복성이가 그쳐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 주니 좀 맘이 가라앉는다. 저녁까지 나눗셈 두 문제를 못 맞혀 청소를 하고 집에 가는 아이들의 환호―. 중학교 못 가는 6학년들의 서글픔, 도 학력 경시 대회에서 1등한 병선이는 제 앞길을 제가 모르고 울고만 있다. 아까운 녀석인데. 왜 시골 애들은 중학을 못 가느냐고 혼자 분하게 생각해 본다.
9월 이동에 빠졌다고 술에 취한 교감이 이 벽지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보 나는 3년 반이래도 빠졌소. 박선생님과 숙직실에서 사는 얘기를 하다가 돌아왔다. 매캐한 연기 내음이 났지만 방은 보송보송하다. 누가 불을 지피고 방 청소를 했다. 우렁각시인가? 그 바람에 자취도 중지했는데. 습했던 방이 보송보송해지니 고향에 온 것처럼 가슴이 훈훈하다.

1976년 8월 29일 비
일요일. 늦잠이 들었다. 학교에 갔다. 교실에 들어가 훈민정음을 조금 보았다. 세상이 모두 갑갑하고 따분하다. 김형하고 블록을 조금 찍었다. 학교에 염소 사육장을 지을 블록이다. 교감이 닭을 잡았다고 먹으러 오란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냥 왔다. 학교 문짝 떨어진걸 한씨에게 몰래 주고 얻어 온 닭 한 마리. 아무 말 안했으니 이미 공범이 아닌가? 하기야 그냥 두어도 땔감밖에 안되는 거니까.
까맣게 높으신 어른이 인사 이동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위로의 말을 한다. 요즈음 참 부드럽게 대한다. 그의 저의가 무엇인가? 나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걸 느꼈다. 하는 얘기만 조용히 듣고 있어야 한다. 전보 내신을 취소하란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고. 여보슈, 그렇지 않다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슈. 취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숙맥처럼 되물어 보려다 말았다. 숙맥 취급하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1976년 8월 30일 흐림
밥집에서 아침 먹고 돌아오는 중에 장터거리에서 국수 삶는 냄새를 맡았다. 이 아침에 어느 집에서 국수를 삶는가. 가난했던 옛날 우리 어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시월 유신이 이룩한 이 복지 국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엄연히 아침에도 국수 먹으며 존재하고 있다. 그 가난이 얼마나 비극적이라는 것을 알까? 저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은. 우리 남매들이 모두 허약하게 자랄 때, 아욱죽이 먹기 싫어 우는 철부지 손자를 위하여 할머니께서 얻어 오신 당숙 댁의 보리밥을 허겁지겁 먹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병석에서도, 돌아가시면서도 장례지낼 쌀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걱정하시던 할머니, 지금 이만한 생활이라도 그 어른의 덕이라는 걸 생각하니 코가 시리다. 점심 시간 아이들의 밥그릇과 허기진 그 얼굴이 모두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교감은 집에 눕고, 또 한 사람은 아프다고 병가를 냈다. 종일 세 학급을 왔다갔다하며 난리 속에서 살았다. 이러니 물 많아서 결석 지각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나무라는가?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이라고 한다. 현실은 뭐고 이상은 뭔가. 현실이 아무리 이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불평해도 그렇게 영원히 부합될 수 없는 것도 역시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상을 결코 버리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그나마 평범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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