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oo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도의 최고 벽지라는 oo초등학교에 발령을 받고 인사 드리러 갔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스물 둘 밖에 안된 노랑병아리인 제 손을 두 손으로 잡으시고,
"이군, 인제 우리는 동지가 되었어."
하시면서 덥석 철부지 제자를 포옹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다시 선생이 된다는 일이 그렇게 기쁜 일이셨습니까? 눈물까지 그렁그렁하신 선생님의 백발 동안(白髮童顔)을 뵈면서 저는 선생이 된다는 걸 부끄러워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선생님께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시는가를 깨닫고 더욱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뉘 집 아들이며, 누구의 아우이며, 3학년 때 철없이 끄적거린 시가 선생님께 알려져 교장실에 불러 '우리학교에 시인 하나 나왔어'하시면서 어깨를 토닥여 주신 일까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욱 소상히 선생님께서는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동네 친구들 안부까지 일일이 챙기셨습니다. 그제야 저의 형들이나 마을 어른들이 '지독하고 무섭다'고 하면서도 꼬박꼬박 '우리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교장 선생님으로 오셔서 그날까지 우리학교 교장이셨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훌륭한 교육동지가 되기를 고대하셨던 저는 이렇게 모자란 선생이 되어 스물 일곱 해나 이 교육의 땅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날 교장 선생님께서 다른 어른들보다 먼저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제 손을 잡으신 뜻은 마음을 비우고 다만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엄숙한 마음의 명령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저의 스물 일곱 해는 온통 발간 눈으로 이(利)를 좇고 의(義)를 버린 너구리의 삶이었습니다. 허허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려 해도 어느새 너구리가 앞서가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분필을 던져버릴 생각이 서쪽 하늘의 먹구름이 되어 앞에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까까머리 검은 모자 쓰고 교복을 입은 채 모교 교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장 선생님께서 저쪽에서 걸어오시는 것을 먼저 보고도 '몰라보시겠지'하고 고개를 돌리려 했습니다. 그 때 이미 선생님께서 먼저 모자를 벗으시고 인사 받으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그런 회초리를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따가운 회초리가 잊을 수 없어 그 해 겨울에 사죄의 편지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편지를 후배들의 졸업식장에서 읽어 주시면서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또 한번 따가운 종아리를 어루만졌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 아이들에게 과연 그런 종아리를 때릴 수 있었나 돌아봅니다. 미움을 담은 회초리는 원망의 눈물을 만들고, 사랑을 담은 회초리는 감동의 눈물을 남긴다는 걸 알고 있기에 오늘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자리로 얼마든지 가실 수 있으셨어도 고향의 시골 학교를 고집하시어 십 년도 넘게 우리 학교를 지키셔서 영원한 '우리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아이들이 있으면 그냥 거기가 선생님의 자리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여 보여 주시었습니다.
분별하지 않으면 미움이 사라지고, 서두르지 않으면 무시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재를 가르치는 것이 군자(君子)의 낙(樂)이라 하지만 영재와 둔재를 분별없이 그냥 한 인간으로 여기면서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더 큰 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으며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는 여유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이제 교단은 우리가 정말로 바라고 싶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경륜을 존경하던 풍토는 사라지고 젊고 싱싱하고 신지식을 갖춘 교사만이 유능한 교사로 대우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부모도, 교육 행정가도, 아니 교사들 자신마저도, 마음을 기르는 일보다도 힘을 기르는 '능률과 실질'에 가치를 두고 무섭게 치닫고 있습니다. 항심(恒心)이 바로 항산(恒産)될 수 있다는 본질을 잊고 헛된 길로 내닫고 있습니다.
선생의 본질인 분필을 내던지고 교단을 벗어나는 것이 교단의 목표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습니다. 거짓처럼 선생님의 이 못난 교육동지도 그 쪽을 곁눈질하는 것이나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모든걸 다 팽개치고 이미 그 쪽으로 치닫고 있는지 모릅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이제 선생님께서 자연으로 돌아가신 지 이십여 년, 세상은 변하더라도 이 나라 모든 교직자가 선생님의 교육동지가 되어 영원한 '우리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큰 뜻과, 선생님의 큰 사랑과, 선생님 머무르신 선을 정말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7월 25일자 중부매일에 게재)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oo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도의 최고 벽지라는 oo초등학교에 발령을 받고 인사 드리러 갔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스물 둘 밖에 안된 노랑병아리인 제 손을 두 손으로 잡으시고,
"이군, 인제 우리는 동지가 되었어."
하시면서 덥석 철부지 제자를 포옹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다시 선생이 된다는 일이 그렇게 기쁜 일이셨습니까? 눈물까지 그렁그렁하신 선생님의 백발 동안(白髮童顔)을 뵈면서 저는 선생이 된다는 걸 부끄러워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선생님께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시는가를 깨닫고 더욱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뉘 집 아들이며, 누구의 아우이며, 3학년 때 철없이 끄적거린 시가 선생님께 알려져 교장실에 불러 '우리학교에 시인 하나 나왔어'하시면서 어깨를 토닥여 주신 일까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욱 소상히 선생님께서는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동네 친구들 안부까지 일일이 챙기셨습니다. 그제야 저의 형들이나 마을 어른들이 '지독하고 무섭다'고 하면서도 꼬박꼬박 '우리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교장 선생님으로 오셔서 그날까지 우리학교 교장이셨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훌륭한 교육동지가 되기를 고대하셨던 저는 이렇게 모자란 선생이 되어 스물 일곱 해나 이 교육의 땅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날 교장 선생님께서 다른 어른들보다 먼저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제 손을 잡으신 뜻은 마음을 비우고 다만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엄숙한 마음의 명령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저의 스물 일곱 해는 온통 발간 눈으로 이(利)를 좇고 의(義)를 버린 너구리의 삶이었습니다. 허허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려 해도 어느새 너구리가 앞서가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분필을 던져버릴 생각이 서쪽 하늘의 먹구름이 되어 앞에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까까머리 검은 모자 쓰고 교복을 입은 채 모교 교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장 선생님께서 저쪽에서 걸어오시는 것을 먼저 보고도 '몰라보시겠지'하고 고개를 돌리려 했습니다. 그 때 이미 선생님께서 먼저 모자를 벗으시고 인사 받으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그런 회초리를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따가운 회초리가 잊을 수 없어 그 해 겨울에 사죄의 편지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편지를 후배들의 졸업식장에서 읽어 주시면서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또 한번 따가운 종아리를 어루만졌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 아이들에게 과연 그런 종아리를 때릴 수 있었나 돌아봅니다. 미움을 담은 회초리는 원망의 눈물을 만들고, 사랑을 담은 회초리는 감동의 눈물을 남긴다는 걸 알고 있기에 오늘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자리로 얼마든지 가실 수 있으셨어도 고향의 시골 학교를 고집하시어 십 년도 넘게 우리 학교를 지키셔서 영원한 '우리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아이들이 있으면 그냥 거기가 선생님의 자리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여 보여 주시었습니다.
분별하지 않으면 미움이 사라지고, 서두르지 않으면 무시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재를 가르치는 것이 군자(君子)의 낙(樂)이라 하지만 영재와 둔재를 분별없이 그냥 한 인간으로 여기면서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더 큰 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으며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는 여유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이제 교단은 우리가 정말로 바라고 싶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경륜을 존경하던 풍토는 사라지고 젊고 싱싱하고 신지식을 갖춘 교사만이 유능한 교사로 대우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부모도, 교육 행정가도, 아니 교사들 자신마저도, 마음을 기르는 일보다도 힘을 기르는 '능률과 실질'에 가치를 두고 무섭게 치닫고 있습니다. 항심(恒心)이 바로 항산(恒産)될 수 있다는 본질을 잊고 헛된 길로 내닫고 있습니다.
선생의 본질인 분필을 내던지고 교단을 벗어나는 것이 교단의 목표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습니다. 거짓처럼 선생님의 이 못난 교육동지도 그 쪽을 곁눈질하는 것이나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모든걸 다 팽개치고 이미 그 쪽으로 치닫고 있는지 모릅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이제 선생님께서 자연으로 돌아가신 지 이십여 년, 세상은 변하더라도 이 나라 모든 교직자가 선생님의 교육동지가 되어 영원한 '우리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큰 뜻과, 선생님의 큰 사랑과, 선생님 머무르신 선을 정말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7월 25일자 중부매일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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