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그리움의 뿌리를 담아낸 서사

느림보 이방주 2025. 1. 22. 20:25

수필미학상 수상작품 리뷰

그리움의 뿌리를 담아낸 서사

 

슬픔은 누구에게나 온다. 슬픔의 바탕에는 외로움이 있다. 외로움은 결국 무언가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그리움에서 온다. 사람을 기대하든,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하든,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기대하든, 긴밀한 관계를 기대하든, 그 기대가 무너지거나 무너질 가능성이 보이면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움을 결국 두려움이 된다. 그것은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원초적인 슬픔이 아닐까 한다. 수상작 5편은 이러한 인간의 그리움에서 오는 외로움의 공포 그리고 그 슬픔을 다루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내가 보이면 울어라 (전성옥)

전성옥님의 <내가 보이면 울어라>는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모습을 제재로 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두려움은 외로움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외로움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돌을 소재로 하는 두 개의 서사를 유비적으로 구성하였다. 그 하나는 헝거스톤이고 다른 하나는 반려돌이다. 헝거스톤 서사는 젊은이들이 외로움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아픔을 담아내기 위한 반려돌 서사에 대한 하나의 반려 서사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외로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따지고 보면 굶주림에 대한 공포이다. 굶주림은 배고픔일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굶주림일 수도 있다. 분명 좋아진 세상에서 살아내기가 더 힘들고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상대적인 빈곤감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날마다 변화하고 저만큼 달아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하고, 비교당해야 하고 이용당해야 한다. 그러다가 잠시라도 멈칫 머무르면 도태되는 살벌한 세상에 팽개쳐져 있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은 항상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과 비교된다. 스스로의 희망과 주변의 기대만 있고 균등한 가능성의 기회는 없는 이들이 겪는 ‘살아내기’에 대한 두려움은 외로움의 근원이 된다.

이 글에서 결핍에 대한 두려움의 의미는 헝거스톤에 의해서 강조된다. 헝거스톤 서사는 극심한 가뭄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기록한 강바닥의 돌이다. 그래서 배고픔의 돌, 슬픔의 돌이라고 한다. 가뭄은 굶주림의 원인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이런 속에서 인간은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의지하려 한다.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이든 신이든 마음의 반려로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헝거스톤을 통하여 미래에 호소하고 반려돌로부터 위로받고자 한다.

반려는 동무, 배우자, 동물을 말하더니 이제는 반려식물, 반려돌까지 생긴 것이다. 작가는 현대인의 굶주림을 헝거스톤이 드러내는 당시의 굶주림에 대한 공포와 한 가지로 보면서 젊은이들의 반려돌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냥 스쳐지나가 버리기 쉬운 젊은이들의 유행에서 심각하고 시급한 사회문제를 찾아 제기하고 있다.

 

어느 날, 흐린 가로등 아래서(노혜숙)

노혜숙님의 <어느 날, 흐린 가로등 아래서>를 읽으면서 고려말의 가전체(假傳體) 서사가 생각났다. 가전은 고려말에 시화문학(詩話文學)과 함께 설화문학이 발전하는 가운데 설화의 변형으로 생겨난 것으로 본다. 후대 학자들 중에 수필의 근원으로 보기도 한다. 가전은 의인전기(擬人傳記) 형식이라는 면에서 이 작품과 형식적인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가전의 구조적 특징은 사물에 빗대어 유사한 인간의 일생을 다룬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술’이라는 사물의 한 생애에 인간의 삶을 의탁하여 주제를 드러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술이 스스로의 외로움을 투정하면서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의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술이 바라보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객관화하여 적나라하게 제기한 점 돋보인다. 작가는 술의 기억을 통해서 인간의 삶의 여정에서의 외로움을 다루었다. ‘겉은 차지만 속은 뜨거운’ 술의 속성으로 바라본 인간의 모습은 고단하고 힘겨워 보여서 ‘흑싸리 껍데기’ 같아 보였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술에게 보인 세상은 술로도 이겨낼 수 없는 외로움의 고뇌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술은 때로 시인이 되고, 때로 수필가가 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술은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함께 고뇌하는 문인의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술에게는 인생의 정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줄을 세우지도 않고’ ‘높낮이를 구분하지도 않고’ ‘도덕적 평가를 하지도 않고’ ‘가짜 희망으로 인간을 눈멀게 하지도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외로움을 치유하는 기제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이것은 문인의 임무일 수도 있고 이 사회가 회복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듭 (허정진)

허정진님의 <매듭>은 일상의 체험에서 겪은 매듭을 삶의 과정에서 부딪치는 매듭 풀기로 사유를 확장한 작품이다. 물리적인 매듭이 철학적인 매듭으로 삶의 깨우침을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매듭 풀기의 시작은 어머니가 챙겨주신 보따리이다. 이 매듭은 어머니의 사랑의 정성이 깊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 가위로 자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자르는 것 같아 차마 할 수가 없다. 여기서 매듭은 짓기보다 풀기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매듭은 잘 풀려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물건에서 매듭은 일의 매듭으로 빗대어 표현된다. 매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관계에서의 매듭으로 확산된다. 삶의 길에서 어떤 일이든 매듭은 어차피 있는 일이므로 잘 풀어야 한다. 그래서 잘 풀리는 매듭으로 나비매듭을 제시한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정성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나비매듭을 지어나가야 한다는 주제를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은 보따리의 매듭이라는 물리적 매듭에서 인간관계의 철학적 매듭으로 확산하는 사유의 구조가 작품의 주제를 강하게 드러냈다. 구성은 물론 매듭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그에 대한 묘사와 서사가 유기적으로 잘 조합된 작품으로 감동을 준다.

 

슬픔이 드러나는 방식 (나윤옥)

나윤옥님의 <슬픔이 드러나는 방식>은 동기간에 대한 그리움이 외로움이 되면서 슬픔이 진하게 배인 작품이다. 동기간에 대한 그리움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고향 마을에 집을 사고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간다. 언니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을 느끼던 집이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외로움은 시골 사람들의 정으로 치유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고 도회로 나가고 언니마저 작고한다. 모처럼 내려간 텅 빈 집에서 크게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을 쓸쓸하고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슬픔이 묵묵히 다가오는 모습을 체험하게 된다. 작가는 결국 집을 부동산에 내놓게 된다.

이 작품은 그리움이 외로움이 되고 다시 슬픔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체험한 기억을 소환하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한번 다가온 슬픔은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나무도 꽃도 어두운 뜰’이나 계단과 현관에도 슬픔이 묻어난다. 외로움과 슬픔을 환상적인 이미지로 전환하여 표현되어 독자에게도 진한 슬픔이 전이되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의 자취에서 언니를 발견하지 못하기에 더 고독하고 더 슬픔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저버릴 수 없는 감정이기에 크게 공감이 가는 작품이다.

 

해 질 녘, 이별 그 후 (이상은)

이상은님의 <해 질 녘, 이별 그 후>는 아름다운 노년의 사랑을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다. 고향집에 찾아간 작가는 노년에도 드러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수탉과 암탉의 사랑으로 치환하여 드러내는 구성을 통하여 주제 전달의 효과를 거두었다. 함께 늙어가는 노인들이 주고받는 투박한 대화가 인상적이고 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사랑과 애잔함이 혼자된 수탉에게 미치는 모습이 해학적이고 기발하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투박한 언어이지만 외로움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사람은 누구나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은 이별이고 이별은 슬픔을 불러온다. 그것은 곧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노인들은 그러한 삶의 순환 고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미리 걱정한다. 죽음은 당연하지만 이별은 슬플 수밖에 없다. 툭툭 던져지는 대화에서 미리 걱정하는 이별과 그 슬픔이 진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이러한 부모의 대화를 담담하게 지켜보면서 그분들의 이별이 조금이라도 더 늦게 다가오기를 기원한다.

이 작품은 그리움과 이별 그리고 슬픔의 현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유사한 제재를 통하여 표현하는 구성으로 주제 드러내기에 효과를 보았다.

 

수상작 5편은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인 그리움과 이별 그리고 슬픔을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성옥님의 <내가 보이면 울어라>는 어떤 기대로부터 벗어났기에 느끼는 외로움과 공포를, 노혜숙님의 <어느 날, 흐린 가로등 아래서>는 술에 빗대어 표현한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허정진님의 <매듭>은 보자기의 매듭에서 발견하는 인간관계에서의 원만한 배려와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나윤옥님의 <슬픔이 드러나는 방식>은 따뜻한 정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에서 오는 슬픔을, 이상은님의 <해 질 녘, 이별 그 후>는 노년에 당연히 찾아오게 될 죽음에 대한 슬픔을 닭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5편 모두 제재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유사성이 있는 다른 사물이나 다른 서사에 빗대어 표현하여 주제가 명확하고 감동적으로 드러난 점이 훌륭했다고 본다.

2024 작품상 수상작 5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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