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48] 이방주
조헌의 수필 「눈물, 그 소중한 기능」 ---『수필과비평』 2025년 1월호 게재
눈물은 영혼의 언어
“사람들은 약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강했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배우 조니 댑(Johnny Depp)의 말이다. 배우는 다양한 인생을 경험하기 때문에 눈물의 원인과 효과, 그리고 속성 또한 다양하게 연기해봤을 것이다. 슬픔뿐 아니라 기쁨, 분노, 행복, 감동 등 어떤 눈물을 두고 이런 말을 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눈물은 감정을 강인하게 참아왔기에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다만 나의 영혼을 모두 알고 사랑하고 받아줄 수 있는 절대적인 대상 앞에서나 보이는 것이므로 영혼의 언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 절대자는 어머니일 수도 있고, 신앙의 대상일 수도 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쁨의 눈물이든 슬픔의 눈물이든 받아주는 대상이 있을 때 그 속성에 따라 정화와 치유를 가져온다.
조헌 수필가의 「눈물, 그 소중한 기능」(『수필과비평』 2025년 1월호 게재)은 눈물의 기능을 통하여 ‘눈물은 영혼의 언어’라는 속성을 주제로 받아들였다. 작가는 자신이 혼자 있을 때 눈물이 났던 기억을 소환하여 눈물의 기능을 묘사적으로 설명하였다. 작품의 제목을 ‘기능’이라고 해서 설명으로 일관될 것이라 걱정했지만, 눈물의 생물학적이고 물리적 기능을 설명하기보다 그를 통해서 오는 심리적, 정서적인 효과에 초점을 두어 묘사하여 설명함으로써 눈물이 영혼의 언어임을 드러내는 바탕으로 삼았다. 이물질 제거, 습윤의 제공 등 물리적 정화에서 머물지 않고 그로 인해서 슬픔이나 우울을 정화하는 정서적인 ‘치유의 샘물’이라는 말로 정리한 점이 좋았다.
작가는 눈물이 정화와 치유를 가져오는 사례로 두 개의 삽화(揷話)를 들여온다. 하나는 성인 여성의 눈물이고 다른 하나는 유아의 눈물이다. 성인의 눈물에서 ‘아프지만 진솔한 말씀’을, 유아의 눈물에서 함께하는 ‘따듯한 배려’를 발견한다. 소환된 두 개의 삽화는 눈물이 가장 진솔한 ‘진심의 언어’라는 사실로 정리된다.
작가는 신체적 현상이 정서적 철학적 현상과 통섭하여 육체와 영혼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기제라는 눈물의 신비성을 형상화하였다. 공연히 흐르는 눈물의 근원을 ‘나이’로 생각하는 과정을 보면, 감정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내적 평정을 찾는다. 나아가 나이가 든 사람의 눈물은 이웃을 배려하고 측은지심을 갖고 남과 공감하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미 부분에서 인디언 속담을 인용하여 고통을 참고 견딘 이후 영혼의 결정체가 눈물이라는 것을 넌지시 독자에게 일깨워 주었다. 일상적인 소재로 우리네 삶에서 신체와 정서의 통섭을 쉽고 평이하게 형상화하여 읽는 재미를 준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48] 조헌의 수필 '눈물, 그 소중한 기능'...'수필과비평'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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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그 소중한 기능
조헌
홀로 하는 늦가을 산행, 타박타박 하산하는 길이다.
갈색의 바짝 마른 낙엽들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나부낀다. 빽빽한 전나무 숲을 빠져나오자 봉긋봉긋 수십 기의 무덤 사이로 가느다란 길이 호젓하다. 길이 거의 끝나갈 즈음, 그늘 밑 바위에 걸터앉아 쇠락의 섭리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숨 가쁜 행보. 버림의 의식이 저렇듯 아름다운 것인가. 다시 한 번 나뭇잎들이 우수수 날리며 무덤 위로 내려앉는다.
혼자여서일까. 아니 텅 빈 듯 소슬한 계절 탓이리라. 돌연 코끝이 매캐해지더니 느닷없이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전에 없던 일이라, 적이 당황하며 서둘러 눈가를 훔치고 빈 하늘을 쳐다본다.
늙은 남자의 눈물은 나이 탓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감수성이나 인간성이 넉넉해져서가 아니라 감정 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의 감퇴 때문이라는 쇳소리 나는 이유가 적잖이 충격이다. 호르몬 변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증상이라는 것도 흔히 들어서 알고 있다. 스스로 참담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서글프기 그지없다.
눈물에는 뜻밖에 소중한 기능이 많다고 한다. 마음의 정화나 진심의 토로, 타인에 대한 공감 등 긍정적 효능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비가 내리면 대지가 촉촉해지고 풍경이 맑아져 이전과 사뭇 달라지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난 후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은, 슬픔이나 우울을 정화하는 데는 웃음과 약물보다 눈물이 더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걷잡을 수 없이 엉클어진 마음을 적시고 씻어내 차분하게 다듬어주는 빗줄기와 같아서 눈물을 흔히 ‘치유의 샘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눈물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눈물이 왜 나는지, 어떻게 나는지, 눈물을 흘리고 난 후 왜 심리적으로 안정되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아직은 여러모로 불분명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눈물이 감정의 분출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눈물이야말로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생겨난,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능’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울음은 무조건 참는 대신 적절한 시기에 울고 싶은 만큼 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권한다.
한편, 눈물은 자신의 진심을 나타내는 가장 극적이고 효과적인 언어 노릇을 할 때가 많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몸이 만들어내는 적합하고 요긴한 언어다.
어느 심리학 세미나에서였다. 무참한 사고로 두 아들을 모두 잃은 어머니가 자신이 겪은 감정을 말하는 도중 눈물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자, 발표가 중단되었다. 한참을 울음이 계속되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오열을 막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아무 내색 없이 기다렸다. 얼마 후 사회자가 그녀 곁에 다가와 물 한 컵을 건네며 나직이 말했다.
“눈물도 말〔言〕이에요. 아프지만 가장 진솔한 말씀을 하신 겁니다. 잘 들었습니다.”
사회자가 그녀를 부축해 강단을 내려서자, 참가자들은 진심으로 그녀를 위로하며 오랫동안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어떤 말보다도 더 절절한 외침과 몸짓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눈물에는 상대에 대한 공감의 기능이 있다. 타인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은 남에 대한 따듯한 배려이자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한다.
어느 유치원 교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친구가 이유 없이 울음을 터트릴 때 주변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한결같습니다. 그냥 함께 울어 줍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옆 사람의 눈물을 함께 해주는 겁니다.”
울던 아이는 그 공감에 위로받으며 슬그머니 울음을 그치고 서로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곧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진 치유의 힘이다.
“너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프니?”,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라고 성급히 따져 묻는 어른들에 비해 이렇듯 조건 없이 함께하는 눈물이야말로 누군가의 슬픔에 대한 가장 순수한 반응이며 구원의 손길이 아닐까. 타인의 아픔에 대한 진실한 공감 능력이 자신의 아픔까지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 요즘같이 거칠고 모진 시절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눈물은 고등동물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눈물은 가두어 둔 감정을 풀어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 좌절감을 완화하며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매미는 천년을 울어도 눈물이 없다. 인디언들은 ‘눈물 없는 자의 영혼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다른 이유에 앞서 아마도 좀 더 주변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측은하게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남들과 공감하면서 생을 마무리하라는 자연의 고귀한 가르침이 아닐까?
조헌 약력
서울 출생. 《수필춘추》 등단(2006)
수필집 《여전히 간절해서 아프다》. 《모든 벽은 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솔숲에 다녀온다》
수필선집 《추전역을 아시나요?》
《좋은수필》 편집위원, 북촌시사 회원.
E-mail : chohun426@hanmail.net
전화번호 : 010-2722-2557
주소 : 06624 서울시 서초구 서운로 107, 103동 1302호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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