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내 인생의 이어령

느림보 이방주 2022. 3. 1. 22:20

이어령 선생 애도 행사

2022년 3월 2일 11시~13시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 변광섭 교수의 "책의 정원 초정리에서" 마당

 

내 인생의 이어령 

 

퇴계선생의 도산십이곡 첫 수에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봬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녀고 어쩔꼬

 

혼란스러운 이 시대의 정신적인 지남차셨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기어이 고인이 되셨습니다.

저는 스물 한 살 때인 1972년 문학사상 창간호를 통해서 마흔이 안된 젊은 이어령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창간호를 만난 후부터 바로 정기 구독하여 수필가로 등단할 때까지 1998년까지 문학사상을 읽었습니다. 문학사상을 끊은 이유는 문학사상에서 수필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초창기 문학 사상에는 한국 고전문학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학계에 밝혀지지 않은 작품이라면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벽지학교로 첫 발령을 받고 그 영향으로 청계천 고서점에 가서 대학 국문학과 교재를 한 보따리씩 사다 읽으면서 문학을 향한 제 꿈을 키워갔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교원대 석사과정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였다. 동국대학교 김동욱교수가 <윤지경전> 처음으로 발굴하여 문학사상에 발표한 <윤지경전>을 연구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 수필을 공부하면서 한국인의 정서와 사유의 구조에 맞는 전통 수필을 지향하는 것도 그 영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수필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문체에 設理에 자신감이 넘칩니다. 저는 그 분의 그러한 힘있는 문체를 닮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식에 치우쳐 의미를 잃어버린 수필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 전통수필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어령 수필은 서구의 에세이 성격이 크다고 봅니다. 그러나 안병욱, 김형석, 김태길 선생님의 철학적 수필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감성이 섞인 에세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피천득 선생님 수필처럼 수상에 가깝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본받고자 하는 것은 대상의 본질을 천착하여 결국 見賾(기이한 것을 처음 봄)에 이르는 점을 본받고, 그런 가운데 대상에서 모순을 발견하여 삶의 철학으로 개념화하는 그 분의 구성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런 글은 이색이나 이규보의 전통수필의 삶의 철학에 목성균의 감성과 이어령의 사유와 구성법을 통섭하는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수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2007년 <젓가락 하나>라는 수필로 충북수필문학상을 받았는데 그 후에 청주시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제안으로 '젓가락페스티발'을 가졌습니다. 물론 내 글을 읽고 그런 제안을 했을 리는 없지만, 나 같은 하찮은 지방 수필가의 생각도 한 때 그분과  우리 문화의 뿌리에 대해 그 분과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고인은 이제 봴 길이 없지만 그 분이 걸으시던 길이 앞에 있으니 따르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 이 글은 변광섭 교수의 '책의 정원 초정리에서' 마당에서 청주문화원(원장 강전섭)주관으로 열린 이어령 선생님 애도 행사에서 발표하려고 준비해 갔으나 말씀하시는 분이 많아 생략한 글입니다.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행운입니다. 

충북의 원로 수필가 박영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밖에 많은 문화 예술인을 만났지만 모르는 분이 더 많았고,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으나 마스크 너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활동하는 수필문단 너머에는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수필가들은 오신 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박영수선생님은 전임 문화원장으로 오신 것 같고, 강전섭수필가는 물론 문화원장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강현자수필가를 행사 끝날 즈음에 만나 많이 반가웠습니다. 지난번 변광섭 교수 북콘서트에서도 만났는데 주연 선생님이 문화예술행사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 반갑고 좋았습니다. 다른 수필가와 함께 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박영수 선생님께서 <무심수필> 4호는 어느 동인회도 따라갈 수 없는 동인지였다고 칭찬해주셔서 회원들이 한 일인데 내가 한 일처럼 자랑스러웠습니다.

충북대학교 명예교수이신 이융조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시고 명예교수회지 <개신포럼> 2021 창간호를 증정 받는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얻은 것이 많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