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제 40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선정

느림보 이방주 2021. 5. 11. 22:32

수필집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2020년 4월 10일  발행, 도서출판 밥북)가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와 월간 한국수필이 시상하는 제 40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최원현 이사장의 통보를 받았다. 사람들은 수상통보를 받으면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에 수상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상은 솔직하게 많은 기대를 했었고 사실은 작년에 주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탈락되었다가 금년에 받게 되었다. 지난 2월 27일 받은 신곡문학상 대상은 정말 전혀('감히'라고 말하는게 좋을 것 같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에 연락을 받고 조금 황당하기까지 했었다. 그것은 신곡문학상을 수여하는 수필과비평사는 나의 母誌도 아니고 수필가에게만 시상하는 것이 아니라 수필 평론에 공이 있는 평론가나 학자들에게 주로 시상하는 상이며 수필과비평 출신만이 아니라 전국을 망라해서 남몰래 심사하여 시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수필문학상은 이름은 거창해도 한국수필가협회 회원에게 한정해서 수여하며 대개 2~3명을 복수로 시상한다. 나는 협회 소속이기에 은근히 기대를 했고 졸저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를 읽고 좋은 평을 하는 분들이 많아 더욱 그랬다. 아무튼 올해 두 개의 큰상을 받게 되니 공연히 상을 좇아 글을 쓴 것도 아닌데 쑥스럽고 민망하다.

한국수필 6월호에 게재될 대표작과 수상소감을 여기 올린다.

 

심사평

 

심사위원 지연희ㆍ장호병ㆍ최원현

 

2021년 제40회 한국수필문학상 최종심에는 6권의 작품집이 올라왔다. 그중 이방주의 수필집 『들꿏 들풀에 길을 묻다』와 임재문의 수필집 『꼭! 봐요!』를 수상 작품집으로 선정한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한국수필문학상의 권위는 수상자들의 면면에서도 읽을 수 있다. 1회 김사달 수필가를 비롯하여 원종성 윤모촌 박연구 정봉구 윤재천 변해명 등 39회를 거치는 동안 국내 내로라하는 수필가들이 이 상을 받았다. 작품세계를 계량화하여 우열을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필 장르의 대표격인 수필문학상이라는 무게감을 고려하여 어금지금한 작품세계를 두고 최종 작품집을 뽑느라 심사자들의 고심이 컸다. 축조 심의 끝에 토론을 거쳐 지연희 최원현 장호병 심사위원은 앞의 두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우리 한국수필가협회 창립 50주년을 맞는 해에 수상의 영에를 안은 분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또 선에 들지 못한 작가분들께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이방주 수필가는 두 발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문장은 세련되고 비교적 호흡이 길다. 몸소 현장을 누비면서 세심한 관찰과 명징한 묘사로 사유를 전개하기 때문에 독자의 시선을 끝까지 붙잡아 두는 마력이 있다.

청주 근교 들판과 하천을 자전거로 돌면서 들꽃 들풀과 교감하는 삶의 원리를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눈길 주지 않는 하찮을 수도 있는 들풀들을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벼꽃, 밥꽃 하나 피었네」에서 독자들은 주중리 들녘에 서 있다고 느낄 것이다. 농부가 아니고서는 눈길조차 주기가 쉽지 않은 게 벼의 꽃이다. 자투리땅에 어우러진 도라지꽃, 부추꽃, 호박꽃, 가지꽃, 풋고추와 붉은 고추, 그리고 벼꽃이 팬 들판을 바라보면서 칠첩반상을 떠올린다.

스쳐 지나갈 작은 존재들에서 경이로운 생명력과 상호작용을 천착해내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일관되게 자연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성찰하고 있다. 넘쳐나는 말에서도 정작 새겨들을 말씀이 드문 시대를 살고 있다.

“들꽃 들풀의 말씀을 받아 적고, 그 깨우침으로 자신을 깨우친다.”는 작가는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가들을 양성하고 있다. 198년 등단 이후 『축 읽는 아이』를 비롯하여 여섯 권의 수필집을 냈다. 무심수필문학회를 창립하였고, 내륙문학회장, 충북수필문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우리 협회 감사로 활동해오고 있다. 충청매일에 ‘느림보의 ⼭城⼭寺 찾아가기’ 답사기를 연재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벼꽃, 밥꽃 하나 피었네

 

이방주

 

주중리 들녘이 입추를 맞았다. 그래도 더위가 가려면 아직 멀었다. 낮에는 정수리에 화상을 입을 만큼 따갑지만 새벽에 농로를 달릴 때 가슴에 스치는 바람에는 서늘한 기운이 묻어난다. 볼때기에 서늘한 바람을 맞으니 문득 햅쌀밥이 그립다. 혀에 닿는 부드러운 햅쌀밥이 여름내 보리밥으로 거칠어진 입안을 어루만져 주리라. 길가에 무궁화가 소담하다. 무궁화가 피기 시작하고 100일이면 고대하는 햅쌀밥을 먹는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농로 아래 벼는 아랫배가 통통하다. 내 아랫배까지 통통해진다.

시멘트 다리를 건너 140도쯤 돌아서면 버드나무 우거진 방천둑길이다. 우거진 버드나무 가지마다 가시박덩굴이 올라타기 시작했다. 태양은 버드나무나 가시박이나 공정하게 볕을 주고 생명을 준다. 그런데 가시박은 기어이 버드나무 명줄을 졸라댄다. 주중리 농부들은 가시박을 미워하면서도 베어내지는 않는다. 볏논에 더 부지런하고 알뜰하다. 길가 자투리땅에도 도라지꽃이 하얗다. 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도라지 밭가에 부추도 심었다. 모두가 우리 몸을 지탱하는 보약이다. 한 배미를 지나고 또 한 배미를 지나 자전거를 딱 멈추었다. 꽃을 본 것이다.

벼꽃이 피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논두렁 아래로 내려갔다. 엊그제까지도 통통했던 아랫배가 터져 올라온 것이다. 아, 그래서 벼꽃은 피었다고 하지 않고 패었다고 하는구나. 오늘 새벽 벼꽃을 본다. 꽃 한 송이에 쌀이 한 톨이다. 쌀 한 톨은 밥이 한 알이다. 벼꽃은 밥꽃이다. 생명의 꽃이다. 한 줄기 벼이삭은 밥이 한 공기이다. 한 배미 벼꽃은 수천 명 생명 줄이다. 벼꽃은 곧 우리 목숨이다.

밥꽃이 핀 볏논 자투리땅에 도라지꽃, 부추꽃, 호박꽃, 가지꽃을 함께 피우는 주중리 사람들의 슬기가 아름답다. 풋고추 붉은 고추까지 주렁주렁 매달린 농로에 서서 들판을 바라본다. 칠첩반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너른 들이 그냥 우리네 밥상이다. 나으리들이 제 밥사발을 채우려 싸움질할 때 농투사니들은 이 들판에서 겨레의 밥상을 준비한다. 우리는 들풀 같은 민초들에 기대어 산다.

계룡산 신원사 고왕암은 백제 마지막 태자 부여융이 숨어 있다가 김유신의 부하에게 잡혀 소정방에게 넘겨진 일이 있는 절이다. 지금도 태자가 숨어 있던 토굴이 남아있다. 언젠가 고왕암을 답사하고 내려오는 길에 신원사 일주문 바로 아래에서 밥꽃을 발견했다. 밥집 이름이 ‘밥꽃 하나 피었네’였다. 밥집 이름 치고 좀 길기는 하지만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 밥꽃 한 상을 받았다. 상을 두 번 차려 내온다. 첫 상은 자투리땅 모습이고 두 번째 상은 볏논을 옮겨온 듯하다. 먼저 나온 상에는 두부김치, 가지고지볶음, 애호박고지볶음, 떡볶이, 나물전과 양념장, 청국장김쌈, 남새샐러드, 감자샐러드이다. 밥상이 꽃밭이다. 젊은 밥상 도우미는 벼꽃처럼 음전하다. 나직나직한 말 씀씀이가 미덥다. 물을 때마다 고분고분 차림을 일러준다. 둘이 다 밥꽃을 닮아 있다. 첫 상을 거두고 이제 밥꽃이 나왔다. 가운데에 떡갈비가 떡하고 놓이더니, 된장찌개, 고춧잎무침, 방풍나물무침, 부지깽이나물장아찌, 쌈채소와 쌈장, 마늘과 풋고추, 견과류 볶음으로 상이 가득하다. 그리고 밥꽃 한 사발이다. 밥상 위에 주중리 들판을 옮겨왔다. 벼꽃이 피고, 가지꽃이 피었다. 노란 호박꽃도 하얀 도라지꽃도 피었다. 벽 한 면을 털어 만든 통유리창으로 세상이 보인다. 가까이 밥꽃 피우는 농장에서 천년초를 비롯한 가지가지 채소가 올라오고, 멀리 관음봉에서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용틀임하는 기운도 밥상 위에 내려앉았다. 천년초 차를 마실 때쯤 나는 주중리 볏논의 오래되고 깊은 의미를 미각으로 깨우쳤다.

벼꽃은 생명이고 명줄이라고 해서 그렇게 예쁜 것만은 아니다. 논두렁 아래 내려가 가만히 패어 나오는 벼꽃을 살펴본다. 나락 알알에 먼지가 묻은 것 같다. 불타던 솔가지가 사위어 날린 재티 같다. 시시하다. 어느 시인이 오래 보면 예쁘다고 했다. 어느 스님은 일부러 멈추어 서서 보아야 할 것도 있다고 했다. 이미 멈추어 섰으니 오래 보자. 말간 연두색 벼 알갱이 뾰족한 꼭대기가 약간 벌어져 있다. 벼를 말하는 한자 벼도稻자를 보면 벌어진 모습이 그대로 상형되었다. 벌어진 틈으로 꽃술이 비어져 나왔다. 재티 같기도 하고 동부 거피가루 같이 하얀 것은 꽃잎이 아니라 꽃술이었다. 조심스럽게 세어보면 똑같은 꽃술이 여섯 개이다. 그렇다. 여럿인 걸 보면 틀림없이 얘들이 수술이다. 그럼 암술이 있어야 한다. 안경을 다시 올려 쓰고 들여다보았다. 여왕 같은 암술이 수술들 가운데 그 안에 계시다. 육판서가 시위한 암술 여왕님이시다.

들으니 벼꽃은 벌 나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은밀하게 사랑을 이룬다고 한다. 이른바 자가수분이란다. 볏잎 무희들이 살랑살랑 미선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면 벼꽃은 합궁을 이룬다. 합궁은 주로 볕이 화사한 정오에 치른단다. 이슬이 허튼 물방울을 보내는 것을 경계함이다. 운우의 즐거움을 누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비롭고 신성한 한낮이다. 합근合巹의 순간이 수줍은 벼 껍질은 갑자기 옷깃을 오므려 수술을 떼어내고 암술만 다독여 내밀한 여왕의 산실로 모신다. 산실에서 땅의 기운에 의지하고 태양의 힘을 얻어 알이 차고 영글어 한 톨의 쌀이 된다. 쌀 한 톨 한 톨이 신비스러운 보석이다. 보석이 사람을 살리는 밥이 된다. 벼꽃은 밥꽃이다. 가을 들판은 밥꽃이 신비롭게 영그는 보석의 밥상이다.

밥꽃이 아름다운 것은 신이 내린 생명의 꽃밭이라 그렇다. 벼꽃은 우리 생명을 다지려고 피어난다. 주렁주렁 풋고추 붉은 고추도 밥꽃을 밥꽃답게 하려고 볕을 받는다. 벼꽃은 밥꽃이다. 생명의 꽃이다.

오늘 새벽에도 주중리 들에서 생명의 꽃을 얻어온다.

2016년 8월 10일

주중리에서

 

 

이방주 약력

청주 출생,

월간 한국수필 수필 등단(1998), 창조문학 평론 등단(2014)

충북수필문학회장(전), 내륙문학회장(전)

무심수필문학회, 충북수필문학회, 내륙문학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내륙문학상, 충북수필문학상, 인산기행수필문학상, 제 26회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

수필집 《축 읽는 아이》 (2003, 선우미디어)

            《손맛》 (2009,  북나비)             

           《여시들의 반란》 (2010, 채움애드)

           《풀등에 뜬 그림자》(2015, 수필과비평사)

          《가림성 사랑나무》 (2017, 수필과비평사)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2020, 도서출판 밥북)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산성산사 찾아》(2020, 도서출판 밥북)

수필선집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2020, 좋은수필사 수필과비평사)

고소설 해설서 《윤지경전》(2011, 주식회사 대교)

공저 인터넷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어》(수필 단원 집필) (율촌재단)

현재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지도교수

              한국수필가협회 감사, 월간 한국수필 편집위원

 

 

<수상소감>

 

21세기 수필문학의 변화를 소망하며

감사합니다. 졸저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을 꼼꼼히 읽으시고 꽃을 얹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수필문학상은 현재까지의 공적에만 얹어 주는 상이 아니라 미래의 창작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에 수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는 몇 가지 실험정신으로 졸저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에 수록된 작품 창작에 임했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전통수필을 확립하여 수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으로부터 고려, 조선의 수필을 거쳐 현대로 이어지는 체험의 해석과 삶을 개념화하는 작품 창작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둘째는 생태주의, 에코페미니즘을 수필에 수용하고자 했습니다. 물질문명과 산업사회를 중심으로 한 근대 문명은 21세기를 맞아 생태문명과 상생의 문화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에 수필이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다음에는 형상화 방법으로 섹슈얼리즘을 수필에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응원해 주시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오늘 졸저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에 주어진 한국수필문학상은 저의 이런 창작 방향을 밀어주고 응원해주시는 상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이런 저의 수필 운동이 성공할 때 서구의 에세이와 차별화되는 우리만의 ‘수필’을 정립할 수 있고, 다른 문학양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철학성과 예술성을 갖춘 문학으로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 상은 수필가 이방주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수필집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에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한국 수필의 미래에 불을 밝히고 하나의 지향점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한국수필문학상이 저만의 영광이 아니라 수여하신 한국수필가협회도 영광스런 시상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영역 확장과 문학성 확보를 위해서 더욱 노력하고 아울러 수필 같은 삶을 살겠습니다.

오늘의 영광은 저와 뜻을 함께하며 같은 길을 걷는 무심수필문학회 문우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