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알고 수필 쓰기
-푸른솔 문인협회 세미나 자료-
일시 : 2021, 12, 10(금) 18:30
장소 : 김동숙 비페 문화공간
주최 : 푸른솔문인협회
후원 : 청주시
좌장 : 최재우 수필가
주제 발표 : 이방주 수필가, 문학 평론가
반대토론 : 윤현수 수필가, 신현애 수필가, 이윤우 수필가
□ 문학과 수필
1. 수필의 뿌리
詩5 | ⇒ | 서사 | ⇒ | 서정시 | ⇒ | 서정시 | 허구 |
소설 | 소설 | ||||||
서정 | |||||||
희곡 | 희곡 | ||||||
극 | |||||||
교술(사실 체험교훈) | 수필 | 사실 체험(서정 서사) |
2. 문학의 갈래와 수필
조동일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문학통사에서 문학의 갈래상 특성을 이렇게 분류하고 한국문학의 여러 가지 양식을 포함시켰다. 요약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서정 :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자아화(세계에 대한 일방적 정서)
천지자연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예찬․환호․감탄․청원․기구(祈求)․고백 등 제의적 서정과 사람살이의 소망과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서정가요가 존재하였다. 우리 문학의 고대가요, 향가, 고려속요, 시조, 사설시조, 잡가, 서정민요, 대부분의 현대시
서사 :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작품 밖의 서술자)
신화, 서사시, 전설, 민담, 서사민요, 서사무가, 판소리, 고전소설, 현대소설
희곡 :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대사와 행동의 문학)
탈춤, 꼭두각시놀음, 창극, 신파극, 현대극
교술 :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 (사실에 대한 이해와 교훈)
악장, 창가, 수필, 서간, 일기, 기행, 경기체가, 가사
여기서 문학의 양식적 특징을 고려하여 인간이 세계와의 갈등에서 생긴 문제를 하소연한다는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서정은 천지 자연 등 초월적 존재에 대한 예찬과 기구라 한다. 그러면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제에게 소망을 대신 하소연해 줄 것을 부탁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의 소망과 기구를 신에게 전해주는 사제이다. 서사는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의 모습을 보여주는 양식이다. 작품외적 자아가 사람살이의 여러 가지 유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살이의 양상이나 문제의 유형은 허구일수록 좋다. 희곡은 서사와 같은데 말과 글로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재현하는 예술이다. 서사와 달리 서술자는 없지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므로 수용자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하고 문학의 효과인 카타르시스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사람살이의 양상은 꾸며낸 가상의 사건이다. 이에 비해 교술은 사실에 대한 이해와 교훈이다. 현대문학에서 교술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인 수필을 설명할 때 사실과 체험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연유된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므로 자아가 곧 수필가 자신이다. 때로 자아를 시점을 달리하여 표현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작가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신이 아닌 이웃에게 속삭이듯 들려주는 문제해결의 이야기이다. 이웃과 문제를 함께하고 고통을 함께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여 자아를 세계화한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슬픔을 함께하는 곡비(哭婢)와 같다. 수필가는 스스로 보편적 세계로 변증법적 변환을 시도한다. 이에 따라 수용자도 변증법적 변환과 성숙을 시도한다.
현대문학에서 수필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하다보면 다음과 같이 쉽게 정리할 수 있다.
시 : 허구, 서정적 자아, 작가의 서정, 운문, 운율
소설 : 허구, 서술적 자아, 삶의 단면 서사적 진술, 산문
수필 : 사실·체험+사색(상상)+인생의 의미→보편적 감동
희곡 : 허구, 행동의 예술, 삶의 단면 대화와 행동으로 진술, 서술자가 없음
수필은 사실과 체험의 문학이다. 문학은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하여 그럴 듯하게 결구한 개연성 있는 허구이다. 이렇게 말하면 ‘수필은 사실의 문학이다.’라는 말에 모순이 있다. 수필은 허구가 아니고 사실인데 문학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과 체험에 상상이 개입한다. 수필가의 철학적 가치관에 의해 해석한 현실의 세계를 사색으로 본질을 천착하고 상상을 가미하여 인상적으로 형상화하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수필은 체험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과 체험의 문학이다. 이때 상상은 수필문학으로서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3. 한국 수필문학
한국의 수필은 전통 수필의 맥을 이어야 한다.
체험과 사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구조는 수필의 현대화 과정이나 서구의 에세이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처음 생긴 것이라 보기도 하는데 이런 견해는 매우 잘못된 자기 비하이다. 고대 수필에서 이미 그러한 구조의 수필이 발견된다. 중국 둔황 천불동 석굴에서 발견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보면 이계異界인 오천축국을 오가며 체험한 사실에 대하여 자신의 불교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을 덧붙이는 구조이다. 고려 말의 이규보나 이곡의 수필도 사실 체험을 진술한 부분과 사실에 대하여 해석과 의미를 덧붙이는 부분으로 양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사실·체험+해석’의 구조는 조선으로 넘어와 박지원을 비롯한 문인들의 수필에서 더욱 진화된 형태로 수용되었다. 고려의 수필이 사실·체험+해석으로 양분하는 구조였다면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 수필의 대부분은 일화마다 유연성 있게 의미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수필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 한국한문학의 설說, 기記, 서序, 서書, 시화詩話, 제문祭文, 소疏 등을 봐도 사실과 체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개념화 과정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현대수필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에 서구의 에세이가 굴절과 변용을 통하여 우리 수필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맨땅에 에세이를 그대로 이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20년대 이후 에세이와 전통수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한국 수필이 최근 들어 우리의 정서와 철학에 맞는 한국 전통 수필의 구조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수필과 관련한 우리의 사고체계가 이미 전통수필의 구조에 젖어 있어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4. 수필의 특성
· 일상의 철학적 해석이다. : 이렇게 말하면 ‘일상’이란 말이 걸리겠다. 우리네 삶은 일거수일투족이 다 일상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체험한 사실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따져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해석이다. 수필은 매우 주관적인 문학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개성이 넘치는 인식과 해석도 보편적인 삶의 진리로 개념화되어야 독자에게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개념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 개성의 문학이다 : 수필에는 글쓴이의 마음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자가의 인생관, 지식, 취미, 감정, 체험뿐만 아니라 문체까지 나타난다. 수필을 읽으면 그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수필은 그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 무형식의 문학이다 : 수필은 다른 문학 양식보다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의 문학이다. 그러나 '무형식의 문학'을 '형식이 없는 문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수필은 형식이 없는 것이 형식인 문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수필에도 반드시 구성이 필요하다.
· 제재가 다양한 문학이다 : 수필의 글감에는 한계가 없다. 의미 있는 체험뿐 아니라 일상의 사사가 모두 수필의 제재가 될 수 있다.
· 유머와 위트, 비평적 문학이다 : 수필은 생활의 단조로움을 이겨내고, 지혜와 성찰이 반짝이는 문학이다. 수필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풍자와 비평도 수용한다. 예술작품에 대하 비평적인 생각을 수필로 쓸 수 있다. 따라서 독자를 울리기도 하고 미소 짓게도 하며 깊은 공명을 가져오게도 한다.
· 심미적, 철학적 문학이다 : 수필에는 인생과 자연의 관조(觀照: 객관적 자세로 인생과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 통찰로써 체득한 삶의 의의, 가치, 진리, 지혜 등 생활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수필을 쓰는 동안 철학적 성장을 가져오고 읽는 동안 역시 심미적 철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 치유의 문학이다 : 수필은 체험을 통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해결의 방법을 독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 주며 아픔과 고통을 함께하는 치유의 문학이다.
· 신변잡기와 수필문학의 차이점 : 신변잡기는 일상사에 대한 감상적 서술에 머무는데 반해 수필문학은 소재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해 심오한 철학적 해석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수필의 철학이란 철학자들의 사변적으로 궁구한 자연, 우주에 대한 원리를 체계적으로 탐구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삶 속에서 터득하고 깨달은 생활의 예지이다. 삶에 대한 격조 높은 신념이나 심미안을 말한다. 사실과 체험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없으면 수필이라 하기 어렵다.
5. 수필문학에 대한 몇 가지 오해
· 수필은 신변잡기(身邊雜記)다. : 신변을 해석하여 인생의 사유를 유도하고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비전문적인 글이다) : 수필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이지만 만만치 않은 글쓰기이며, 정말 농익은 글이 아닌 이상 ‘섣불리’ 내놓아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 수필쓰기가 가장 쉽다. : 수필은 진솔하게 자신의 주변 이야기이지만, 시나 소설 못지않은 자료조사와 사전 연구가 필요하며 끊임없는 언어사냥이 중요하다.
·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 구성이 필요 없다는 말인데 사고 과정과 상상의 발동 전략을 간과한 말이다.
6. 수필과 에세이
수필은 에세이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에세이는 학술 논문 이전의 글, 가벼운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성이나 교훈성보다 학술, 논리, 주장, 비평으로 일관한 문예문을 의미한다. 흔히 수필을 경수필과 중수필로 구분하면서 경수필은 미셀러니, 중수필은 에세이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수필은 경수필에 철학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에세이의 요소가 결합되었기에 그냥 ‘수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수필을 산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주로 평론가, 소설가, 시인들이 ‘수필은 잡문이고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수필 하대에서 나온 용어이다. 산문은 운문의 대립 개념으로 쓰이는 명사이지 장르명은 아니다.
□ 대상 바라보기
수필가는 체험한 사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한다. 소재가 된 대상에 대해 앎을 극대화해야 한다.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하면 곧 자기만의 독창적인 인식에 이르게 된다. 심오한 진리를 발견하게(見賾) 된다는 의미이다. 남들이 다 보는 것은 작품의 제재로서 가치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어야 독창적 인식에 이르고 그것이 작품에 수용될 때 독자의 감동을 불러올 수 있다.
1. 소재 바라보기와 인식
(1)불가시적 영역
소재를 바라볼 때 우선 5감의 활용한다. 오감은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을 말하는데 이 밖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감각적 특성을 관찰한다.
18세기 독일의 시인이며 철학자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는 본다는 것은 소재를 관찰할 때 불가시 영역을 봐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하였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각되는 것은 생각되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
본다는 것은 삶을 통한 총체적 경험과 지식 정보를 투과해서 인식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외형만 보지 말고 내면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나무를 보면서 뿌리를 봐야 하고, 불가시 영역(햇빛, 바람, 비, 세월, 열매, 꽃 → 삶, 일생)을 봐야 한다. 불가시 영역을 보는 것이 바로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의 발견이다. 가시영역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보이는 것과 접촉돼 있는 불가시 영역 보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예를 들어 꽃씨를 보면서 새싹을 보고 꽃, 나비, 벌을 보며 꽃을 보고 있는 소녀를 보고, 소녀의 마음까지 상상해야 한다. 이렇게 보려면 우선 오래 자세히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관심 → 관찰 → 정성 → 사랑 → 대화 → 소통 → 공감)2. 독창적 인식
치곡(致曲) → 견색(見賾) :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면 나만이 볼 수 있는 원형성을 발견할 수 있고 거기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 수필적 상상의 전략
수필은 체험과 사실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수필적 상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이 말은 참 아이러니한 말이다. 사실의 문학이란 말은 작가적 상상을 가미할 수 없다는 의미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상이 없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작가적 상상이 없이 예술적 미감을 형상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필이 허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수필에 허구를 받아들이는 순간 독자성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다만 기억에 의해 소환된 체험을 재구성하여 작가의 상상의 세계를 가미하는 것은 미적 울림을 위해 가능하고 이것은 허구라 할 수 없다. 격물하여 치지에 이르렀다 해도 견색見賾(심오한 세계를 보다)한 독창적인 세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수필적 상상이다.
수필적 상상은 격물의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개입되기도 한다. 먼저 대상에 대해 물질적, 물리적으로 본성을 추구한다. 오감五感으로 알아보기이다. 이 과정에 작가의 과학적, 인문학적 온갖 지식이 동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 본질이 밝혀지면 거기에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자아성찰이다.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고 모순을 해결하고 통찰을 통하여 통합된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을 꾀한다. 이와 같은 변증법적 상상의 과정에서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나 주관적인 인식은 삶의 하나의 유형으로 개념화된다. 이러한 수필적 상상의 과정은 수필의 예술적 울림을 더하게 될 것이다.
□ 21세기 수필의 나아갈 길
21세기 수필은 생태문명이라는 패러다임paradigm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21세기 수필문학이 지향하는 세계는 자연을 대상으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낭만적인 풍류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가족사나 주변의 일에 머물러 늘어놓는 넋두리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면 문학으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대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과 ‘치유’이다.
지난 세기는 산업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정보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21세기는 생태주의 문명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생태주의ecologism는 기존의 환경주의에 비해,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심층적 사고이다. 생태주의는 인간이 생태계에 주인으로서 자연환경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라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며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종種들과 동일하다는 수평적 사고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의식이다. 예를 들어 문화적 생태여성주의cultural ecofeminism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폄하된 여성적 가치 즉, 감성이나 영성을 통해 여성주의의 문제와 환경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려 한다. 자연은 생명체를 생성하고 부양하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므로 여성과 동일시된다. 자연에 대한 인식에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 같은 새 시대의 사고를 바탕으로 하면 인간이 자연을 대할 때 수평적으로 대하게 되고, 남성이 여성을 대할 때도 수평적으로 대하게 될 뿐 아니라 모성적 원형성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수필에 수용될 때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치유의 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수필의 새로운 방향은 인식의 방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의 방법에서도 연구할 과제가 있다. 실제로 시, 소설, 동화, 극의 표현 방법을 수필 창작에 적용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질의 내용
“수필을 알고 수필 쓰기”에 대한 토론
윤현수
우리나라 전통 수필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수필문학 개념을 명확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발표하신 이방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윤희·김수지·류수열(2019)에 따르면 문학의 갈래로서의 수필 개념은 1920년대 이후 쏟아져 나온 특정 양식의 글을 하나의 갈래로 묶고자 한 1930년 문학계의 비평적 시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수필 개념을 둘러싼 비평계의 논쟁은 다음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수필=에세이’라는 인식이다. 김광섭, 한세광을 비롯하여 영문학을 전공학 해외문학파들은 에세이 개념을 이용하여 수필을 문학 갈래로 정립하고자 하였다.
둘째, 자기의 개성 표현을 강조하며 수필 갈래를 자생적으로 개념화하고자 하였다. 즉 서구의 이론에 기대지 않고 수필 갈래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글로부터 귀납적으로 내적 형식을 탐색함으로써 수필 갈래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윤희·김수지·류수열(2019)은 1930년대 수필 갈래를 둘러싼 비평계의 논쟁을 분석하여 수필 개념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에세이와 동일시를 통한 수필 개념 형성’, ‘수필의 속성 탐구를 통한 자생적 개념화’, ‘고전 산문 포섭을 통한 수필 개념의 외연 확장’으로 구분하였다.
수필의 속성 탐구를 통한 자생적 개념화를 주도한 문인들은 수필의 주요 특징을 ‘개성의 표현’으로 인식하였다. 이태준은 ‘자기의 심적 나체’라는 비유를 통해 수필은 필자가 곧 소재이므로 내용과 표현의 개성 특히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진섭은 수필의 형식을 ‘무형식의 문학’이라는 측면에서, 임화는 수필의 주제를 ‘작가의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 깊은 사색을 통한 사상의 내재’라는 측면에서 논의하였다.
수필의 자생적 개념화 시도 이후 수필의 범주를 근대 이후의 갈래로 볼 것인지, 고전 문학(고대 수필)까지 포섭하는 갈래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표자는 ‘한국의 수필은 전통 수필의 맥을 이어야 한다.’라는 주장에서 드러나듯 수필 문학을 우리 국문학사에 재래적으로 존재해 온 갈래 즉 후자의 관점을 택한다. 고전 산문을 포섭하여 수필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 접근은 수필의 범주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토론자는 발표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수필 개념의 외연을 보다 더 확장하자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수필을 서구의 에세이와 동일시하지 않더라도 수필 범주에 에세이를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토론자의 의견에 발표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수필은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세계화(사실에 대한 이해와 교훈)인 교술의 대표적 장르로, 사실과 체험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사실과 체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자아의 세계화’가 무엇인가를 보다 확장적으로 해석한다면 수필 문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미영(2020)은 “이양하의 수필 연구”에서 수필 내용을 중심으로 개인사를 다룬 자전적 수필, 삶에 관한 관조적 인식을 담은 명상적 수필, 한국사회나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육자적 전언을 담은 계몽적 수필 등으로 분류하였다. 명상적 수필로 분류될 수 있는 이양하의 수필 「나무」는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나무」는 시적인 수필로 ‘시적 질서’인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는 심미적 글쓰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수필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문제는 수필의 소재를 가족사나 일상 또는 주변의 일에서만 찾던 토론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세계의 수필에서 ‘사람’과 ‘치유’에 주목해야 한다는 발표자의 메시지는 큰 울림으로 나를 일깨운다.
{질문}
신현애
오늘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수필을 알고 수필쓰기⟩는 수필을 좋아하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고민을 안겨 주고 머뭇거리게 하는 말씀이십니다. 아직 다른 장르인 시나 소설보다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도 수필을 좋아하게 하는 마음은 인생의 단‧〮 짠‧ 신‧ 쓴 진한 맛이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교직을 은퇴하신 후 청주교대 수필교실과 서원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강의를 하시면서 2003년 첫수필집⟪축 읽는 아이⟫를 비롯해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하셨습니다. 특히 2017년에 출간하신⟨가림성 사랑나무⟩는 우리나라 160여 곳의 산성과 40개의 산사를 답사하시면서 쓰신 수필이십니다. 이는 선생님께서 ‘수필은 사실과 체험의 문학’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질문1]
문학은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하며 그럴듯하게 결구한 개연성 있는 허구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상상과 허구는 어떻게 다른지요?
■ 이윤우 질문
□. 수필을 쓰는데 알고 싶었던 내용을 쉽게 강의에 감사.
□. 수필을 배우는 입장에서 오늘 강의를 듣다 보니 세 가지가 의문이 생겨 질문을 드림.
○ 첫째 수필은 사실과 체험의 문학이다. 라고 허구의 소설과 구분하여 강의 하셨음.
- 강의내용: 수필이란 기억에 의해 소환된 체험을 재구성하여 작가의 상상의 세계를 가미하는 것은 미적 울림을 위해 가능하고 이것은 허구라 할 수 없다.
- 목성균 선생님의 ‘나의 수필’ 에서도 약간의 거짓말은 필요하다.
. 나를 위한 거짓 보다 수필을 위한 거짓은 가능함.
- 배우는 입장에서 어디까지 허구가 허용될 수 있는지 기준이 모호.
. 자로 재듯이 획일적으로 한계를 정할 수 없겠지만, 기준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허구가 허용 될 수 있는 것인지?
○ 둘째 수필은 신변잡기가 되어서는 안 됨.
- 강의내용: 신변잡기는 일상사에 대한 감상적 서술에 머무는데 반해 수필문학은 소재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해 심오한 철학적 해석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라 했는데, 내가 직접 보고, 듣고 체험을 쓰다보면 신변잡기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함.
- 첫 번째 질문과 같이 획일적인 구분은 힘들겠지만 수필이 신변잡기 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 셋째 소재선택의 어려움.
- 내용: 소재를 바라볼 때 우선 5감의 활용한다.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말하는데 이 밖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감각적 특성을 관찰한다.
-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꽃에 대한 글이 많은데 글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꽃을 찾는지? 아니면 우연히 꽃을 보다가 영감이 떠올라 쓰시는지 궁금함.
- 소재선택에 어려운 입장임.
. 소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은?
** 이운우 약력
. 푸른솔문학회 회원
. 푸른솔문학회작가회 회원
. 충북대학교평생학습원 수필창작 수강
. 효동문학상 수상(2017)
. 푸른솔문학 신인문학상 수상(2018)
. 푸른솔문학 카페문학상(2021)
'비평과 서재 > 문학과 수필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제(司祭)의 시선으로 발견하는 사랑(29회 충북수필문학상 심사평) (0) | 2022.08.10 |
---|---|
빅 데이터 시대의 수필쓰기/ 최원현--- 수필의 영역 확장을 위한 행동전략/이방주 (0) | 2022.04.13 |
제23회 내륙문학상 수상작 신금철의 수필집 『꽃수繡를 놓다』 (0) | 2021.09.15 |
제28회 충북수필문학상 심사평 - 정상옥의 <꽃 진 자리>외 1편 (0) | 2021.09.10 |
(월평)수행과 성찰의 문학 - 『한국수필』 9월호를 읽고 - (0) | 2021.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