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제23회 내륙문학상 수상작 신금철의 수필집 『꽃수繡를 놓다』

느림보 이방주 2021. 9. 15. 12:26

23회 내륙문학상 수상작

 

수상자 : 신금철 수필가

수상 작품집 : 수필집 꽃수를 놓다

 

돈오점수頓悟漸修하는 일흔 살 소녀

 

이방주 (수필가 문학평론가)

 

무상無常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아무 보람도 없이 헛되고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무상의 철학적 의미는 ‘한 가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늘 변화한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다.’라는 의미로 생각보다 가르침이 크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수용하여 그 변화에 따라 도전함으로 자기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젊음을 잃지 않는다.

신금철 수필가는 고희에도 소녀의 꿈을 꾸며 소녀의 미소를 짓고 소녀의 목소리를 낸다. 그의 수필집 『꽃수繡를 놓다』는 일흔에도 소녀로 사는 무상한 삶의 비결을 따뜻한 목소리로 일깨워준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사춘기 소녀이고 싶다’는 소망처럼 날마다 깨달음을 위해 서두르지도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는 ‘벙근 꽃이고 풋내 나는 과일’이다.

수필은 수행의 문학이다. 수필은 붓을 따라가기만 하면 탄생하는 잡기雜記가 아니라 붓을 갈고 닦고 다듬는 과정에 가치를 두는 수행의 문학이다. 잘 닦은 붓은 용틀임하듯 힘찬 글씨를 쓸 수 있듯이 좋은 수필을 쓰려면 정진하는 수행으로 삶의 세계를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른바 돈오점수頓悟漸修하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깨달음은 문득 얻어지는 것 같지만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이루어내는 수행과정이 더 소중하다. 차분하게 정진하여 얻어낸 깨달음은 시끄럽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다. 내면의 변환과 성숙이 있을 뿐이다.

신금철의 수필집 『꽃수繡를 놓다』에 수록된 49편의 작품을 천천히 읽노라면 그의 작품은 수필隨筆이면서 돈오점수의 자세가 드러난 수필修筆임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내적 천착에서 노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정신세계가 그렇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다음 작품 창작에 이르는 과정에서 젊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문학적 성숙이 그렇다.

『꽃수繡를 놓다』에 담긴 변환과 성숙은 ‘사랑’이라는 화두로부터 시작한다. 수필의 제재로서는 다분히 일상이라고 생각되는 사랑 제재가 일상에 머무르지 않는 점이 남과 다르다. 신금철의 사랑은 가족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믿음, 손자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가족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웃 사랑, 인간사랑, 사회사랑, 역사에 대한 사랑,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확산된다. 작품「스님의 신발」을 예로 들어보면 개심사에서 ‘휘도록 찬바람을 견디고 인내로 환한 꽃을 피워 올린 매화 송이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나 ‘내 어머니처럼 넉넉한 품으로 피어난 목련’으로 보는 시선은 ‘청매화 가지를 부여잡고 포즈를 취하는 내 또래 여인의 웃음’이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향하고, 다시 ‘스님의 눈에 비치는 중생들의 행위는 어떤 모습일까’라며 작가의 시선이 스님의 시선으로 확장된다. 스님의 시선이 되어 스님의 신발을 바라보니 일상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게 된다. ‘패션 감각이 뒤떨어진 스님의 낡은 털신’에서 ‘세속의 유혹을 끊고 절제하는’ 스님의 삶이 보이고, 신발의 본질 천착에 이른다. 그의 눈은 드디어 ‘내 허영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신발장에 갇혀있는 신발들에 미안한 마음’이라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매화나 목련이나 왕벚꽃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시선은 스님의 신발에 이르고 자신의 신발을 돌아보게 되고 인간의 허영과 욕심의 허허로움을 성찰하게 된다. 결국 꽃을 보러 갔다가 ‘스님의 털신이 수많은 인파를 유혹하는 개심사 뜰의 왕벚꽃보다 더 짙은 잔영’으로 남아 세계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삶의 모습으로 개념화한다. 이것은 꽃이라는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제재에 대한 사랑이 철학적인 가치에 대한 추구로 변환과 성숙을 가져온 것이라 해석된다.

수필은 허구가 아니라 사실과 체험의 문학이다. 그러나 사실과 체험만으로 예술적 미감을 갖기는 어렵다. 수필도 문학이고 예술이므로 상상에 의한 형상화는 창작의 필수 요건이다. 체험한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으로 수필적 상상이 시작된다. 이러한 상상의 과정에 의해서 문학적 긴장감을 얻어낸다. 신금철 수필가의 작품에서는 예술적 공명共鳴을 불러오는 상상의 전략이라는 공약수를 발견할 수 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형상화 기법이 숨어있다는 말이다. 우선 자신의 눈에 소재로 사로잡힌 의미 있는 일상에 몰입한다. 그리고 대상의 본질을 추구한다. 格物하여 치지致知에 이르면 진정성 있는 공간에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입한다. 그러면 곧 대상을 통찰하고 통찰의 시선으로 자아를 성찰하게 된다. 삶의 세계에 존재하는 자아의 모습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우주적 영적 통찰에 의해 깨달음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원형적 사고를 문학적으로 재현하는 긴 시간을 돈오頓悟를 위한 점수漸修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수필은 개인적인 일상을 풀어낸 잡기로 폄훼한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해석과 상상의 과정에 의해 개인적인 체험이 삶의 철학으로 개념화하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신금철의 문학은 하나의 작품에서 변환과 성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반숙자 수필가의 추천으로 2000년 『한국문인』수필부문으로 등단한 이래 『숨어서 피는 꽃』(2008)『호랑나비 우화羽化』(2017)『가족 그 아름다운 화소話素』(2020)『꽃수繡를 놓다』(2020)등 작품집을 펴내는 동안 꾸준히 변환과 성숙을 이루었다. 그의 변환과 성숙은 사춘기 소녀만큼 빠르고 눈부시다. 최근에 월간『한국수필』9월호에 발표한 수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에서 죽음이라는 제재를 새로운 안목으로 해석하여 21세기 수필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오늘도 소녀처럼 주 1일은 수필교실에서 창작을 학습하고, 1일은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사업의 강사로 후배에게 수필쓰기를 전하고 있는 칠십 세 소녀이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수여하는 제23회 내륙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소녀로서의 소망이 끊임없는 변환과 성숙을 가져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예심을 통하여 신청호 시인의 시집『홀로 걷는 길』홍현숙 시인의『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과 함께 세 분이 수상후보자로 올라왔다. 두 분의 작품도 모두 훌륭하였으나, 개인의 일상을 보편적 삶의 철학으로 해석하여 형상화한 신금철 수필가의『꽃수繡를 놓다』를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수상작으로 정하였음을 밝혀둔다.

 

심사위원 : 이방주 전병호 이종대 김은숙

 

 

스님의 신발

 

신금철

 

개심사 뜰, 소담스러운 연분홍 눈꽃 송이를 매단 가지초리가 힘겹다. 고단한 삶에 굽은 노인의 등처럼 휘어진 가지가 애처롭다. 등이 휘도록 찬바람을 견디고 인내로 환한 꽃을 피워 올린 매화 송이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다.

소곳소곳 고개 숙인 왕벚꽃 아래 자갈자갈 웃음꽃을 피운 다정한 몸짓들이 분주하다. 얼마 만인가? 코로나라는 불청객 때문에 온 세상이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느라 봄이 손짓을 하는데도 선뜻 찾아오지 못했다. 겨우겨우 걷히는 안개를 뚫고 모처럼 봄을 찾은 대웅전 뜰 안에 행복한 웃음들이 활짝 피어난다.

대웅전 요사채 뜰엔, 내 어머니처럼 넉넉한 품으로 피어난 목련이 자비롭다. 반듯한 문살이 판화처럼 걸려있는 툇마루 앞, 목련을 배경으로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앞에 앉았다. 서너 달, 나들이의 유혹을 짓누르며 살다 해방된 마음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난다. 조롱조롱 매달린 소원등所願燈도 들뜬 마음처럼 행복해 보인다.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것 같은 마음에 소박한 소원 하나 매달며 등을 단 사람들의 바람이 다 함께 이루어지길 빈다.

인파 속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꽃들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몸짓이 꽃물결을 가르듯 날렵하다. 나 또한 주연이 되고 싶은 마음에 불쑥 나타나는 조연들을 향해 보이지 않는 눈총을 보내며 인색하던 웃음을 불러낸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착각이 나이를 잊고, 염치없는 사람으로 몰아넣을 때가 있다. 많이 남지 않는 세월의 조급함 때문이리라.

회색빛 가사 장삼을 입은 스님이 사진을 찍기 위해 어색한 몸동작을 놀리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조금 전까지 들떠있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운을 잃는다. 흐드러지게 핀 청매화 가지를 부여잡고 포즈를 취하는 내 또래 여인의 웃음이 허허롭다. 나는 무엇을 남기려 어색한 몸짓을 연출하는 것일까?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주인공이 되고 싶던 마음에 볼을 붉히며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을 찾았다.

스님의 눈에 비치는 중생들의 행위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나는 짐짓 사진 찍기를 멈추고 스님을 향해 합장한다. 스님의 발에 시선이 멈춰진다. 계절을 모르는 낡은 검정 털신이 태연하게 스님의 발길을 따라나섰다. 오만하던 내 마음이 돌부리에 걸려 고꾸라진다. 남편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리고 멋을 차리느라 신었던 빨간 구두가 부끄럽다고 슬며시 꽁무니를 뺀다. 일찍 찾아온 봄 날씨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하늘하늘 화려한 옷차림으로 멋을 부리고 꽃놀이를 즐기는데 털신을 신으셨다니….

계절과 이목에 무관심하고 패션 감각이 뒤떨어진 스님의 낡은 털신은 신발 이상의 의미로 나를 잡아끌었다. 세상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탈속한 스님에겐 오직 도를 깨닫고 수행하며 중생과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희생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계절 따라 유행 따라 어울리는 의복도, 육을 살찌우는 산해진미도, 세속의 유혹을 끊고 절제하는 삶이 배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님의 얼굴은 복잡한 세상을 모르는 아기처럼 평온해 보인다. 삶이 부끄럽지 않거늘 계절을 잃은 털신이 부끄러울 리 없으실 게다.

개심사 지붕 밑에 매달려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허영으로 들떠있던 내 마음에 회초리를 든다. 꽃 속에 묻힌 사람들의 고운 신발들이 자꾸 시선을 끌어 심기가 불편하다. 스님의 신발이 온종일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내 신발 위에 겹쳐진다.

신발장을 열고 보니 햇빛을 자주 보지 못해 창백한 신발들이 뽀얗게 먼지를 덮고 울상을 짓고 있다. 계절 따라 날씨 따라 수북이 사다 놓은 신발들이다. 내 허영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신발장에 갇혀있는 신발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신발의 본질이 무엇인가, 신발을 신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신발은 반짝이는 빛깔과 세련된 모양의 겉치레가 아니라, 발을 보호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우선이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앞장서는 인도자이다. 아무리 예쁘고 멋진 신발도 편하지 않다면 신발의 가치를 잃은 것이요, 고급 신발을 신고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바른길을 걷는 이들의 짚신보다도 못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내가 신었던 신발들은 내가 걸어온 길을 잘 알고 있다. 신발장 가득 들어있는 신발 중에서 바른길로 인도해준 신발은 몇 켤레나 될까?

어찌 신발 욕심뿐이랴. 나보다 더 가진 자들이 부러웠고, 나보다 높이 있는 자들을 시샘했으며, 욕심의 그릇이 채워지지 않아 분노에 찬 날도 많았다. 요란한 포장으로 나를 드러내며 겉치레로 살아온 날들을 세어본다. 스님의 털신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어떻게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일까? 속을 다 비우면서도 하늘을 향해 떳떳하게 자라는 푸른 대나무처럼 욕심을 버리리라.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의 털신이 수많은 인파를 유혹하는 개심사 뜰의 왕벚꽃보다 더 짙은 잔영으로 남는 하루였다.

(2020)

 

천상재회天上再會

 

신금철

 

붉은 광장이다.

연둣빛 가녀린 꽃대에 빨간 모자를 쓴 상사화가 목을 길게 늘이고 그리운 이를 기다린다. 꽃무덤을 이루고 긴 기다림으로 서 있는 그들이 행여 그리움에 지칠까 애처롭다. 꽃나비가 되어 그들의 그리움을 달래주고 싶다.

해마다 이맘때면 불갑사를 향해 달린다. 일요일인 오늘, 불갑사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경내에서 떨어진 먼 거리에 주차한 후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인파 속을 헤치며 만난 상사화는 화려함 저 깊은 곳에 슬픔을 안고 있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상사화는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여 말 한마디 못한 스님의 애절한 사랑의 전설을 따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남겼다. 잎이 나와서 모두 시든 다음에야 꽃대가 올라와 피어나니 평생 만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뿐, 만날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전설이 있어, 보는 이들은 그 고운 꽃을 아픔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은 아름답다. 그러나 만날 수 없는 사랑은 슬픔을 동반한다.

무리 지어 피어있는 상사화를 뒤로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한적한 숲속 상수리나무 밑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두 송이의 상사화가 나를 반갑게 맞는다. 마치 내 어머니 같은 꽃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분이셨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보다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셨고, 참음과 배려심이 많으신 고운 분이셨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한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부부의 연을 맺고 스물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내 아버지를 잃었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앳된 나이에 남편을 잃었으니 땅이 꺼지는 슬픔과 함께 앞으로의 삶이 두려우셨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세상에 두 살배기 딸과 단둘이 되셨다.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87세까지 상사화로 사시며 혈육인 외동딸 하나를 고운 꽃으로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천상재회 天上再會로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나누시길 바라며 슬픔을 달랬다. 저세상을 모르기에 두 분이 만나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두 분이 재회하여 행복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상상한다.

가끔 어머니가 혼자 남겨두고 일찍 떠나신 아버지를 원망도 하시고 그동안 고생하신 수고에 칭찬도 해달라고 어린애처럼 떼도 쓰셨으면 좋겠다. 여니 부부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여행도 다니시고 부부로서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시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시길 매일 기도한다.

그리운 어머니와 두 살 때 돌아가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다정히 손잡고 상사화로 피어나 나를 향해 웃고 계신다. 환영으로 보이는 두 분의 모습이 너무도 다정하여 조용한 미소를 짓는다.

상사화의 아름다운 정경 사진을 찍고 있던 남편이 나를 향해 렌즈를 맞추고 있다. 나는 양손을 올려 하트로 포즈를 취하고 사랑을 날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어 행복하다. 아니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며 더 행복하다.

사진을 찍는 남편을 따라 사계절 아름다운 곳을 누빈다. 샛노란 유채의 해맑음, 황홀함에 취하게 하는 분홍빛 진달래, 하얀 옥양목 치마를 입은 어머니처럼 청순한 메밀꽃, 어머니를 만나는 슬픈 전설의 상사화, 고운 단풍 그리고 설국의 아름다움까지 사계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텔레비전의 큰 화면에 비춰보는 즐거움은 황혼에 접어든 우리 부부의 낙이다. 그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재혼의 유혹을 뿌리치고 혼자 몸으로 나를 키우시느라 셀 수 없이 흘리셨을 어머니의 땀과 눈물 덕분이다. 어머니의 생전에 효도를 못했음에 후회가 깊다. 항상 어머니는 내 마음속에 상사화로 피어있다. 어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은 아름답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은 곁에서 함께 나누어야 더 행복하다.

평생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상사화가 가엾다. 영원한 이별의 사랑이 애처롭다. 상사화의 꽃대 밑에 사랑의 잎을 달아 그들을 동여 매 주고 싶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천상에 계신 아버질 만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듯 가녀린 꽃대를 감싸 안은 파란 잎과 한 몸이 되어 활짝 웃는 상사화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대웅전에서 불경을 외우는 스님의 목탁 소리가 슬프게 들리고 그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스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초월하여 상사화의 아픔을 겪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