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제 26회 신곡문학상 大賞 수상

느림보 이방주 2021. 1. 29. 06:37

신곡문학상

신곡문학상은 수필과비평사에서 연 1회 시상하는 문학상이다.  수필가 신곡 라대곤 선생의 수필문학에 대한 열정을 기리기 위해서 제정된 문학상으로 알고 있다. 수필과비평사와 수필과비평 작가회가 개최하는 수필과비평 동계 세미나가 열리는 2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시상한다. 주로 수필과 수필평론 부문에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사람에게 대상 1명, 본상 1,2명을 선정한다. 수상자의 프로필과 수상 작품, 작품평, 수상 소감은 수필과비평 2월호에 게재된다. 이번 제 26회 심사위원은 유한근 교수, 박양근 교수, 허상문 교수, 유인실 주간, 서정환 사장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그동안 수필집을 몇 권 냈으나 어떤 책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는지 몰랐다. 더구나 작년에는  수필집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가림성 사랑나무>의 개정 신판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산성산사 찾아> 수필선집<덩굴꽃이 자유를 주네> 세 권을 냈기에 어떤 책이 선정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구랍 26일 경 유인실 주간이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를 5권만 보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 때 좀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유주간에게는 이미 책을 보내드렸고, 같이 있는 한경선 편집장이나 서정환 사장께도 보내드렸는데 새삼스럽게 책을 원해서 '무슨 일인가요?'하고 물으니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요.'라고만 했다. 궁금했지만 보고 싶은 이들이 있다는 것만도 감사해서 얼른 보내 드렸다.

잊고 지냈는데 1월 26일 서정환 사장께서 축전을 보내셨다. 내용은 '이방주님,  귀하께서 제 26회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필과비평사≫ 발행인 서정환'이었다. 나는 너무 뜻밖이라 수필과비평사와 관계가 깊은 박영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보니 당신도 모른다면서 축하한다고 한다. 믿기지 않아 유인실 주간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맞다.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이 맞다. 그리고 수상작은 뜻밖에도 선집<덩굴꽃이 자유를 주네>이다. <가림성 사랑나무>와 선집을 두고 심사위원 간에 의견이 분분했나 보다. 신곡문학상을 선집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럼 왜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는 수상작이 못 되었을까. 아니 고려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을까. 참 의문스러웠다. 그러면서 왜 그 책을 보내달라고 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는 아무래도 빠르면 한 5년 쯤 늦으면 10년 쯤 지나야 인정받을 것 같다. 테마 수필이란 점은 인정하지만 멈칫거리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에코페미니즘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21세기 수필의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근대가 물질 문명을 위해 치달렸다면 이제는 그것을 반성하고 절제하여 생태주의와 모성주의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늦었다. 시나 소설은 이미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데 수필은 그것을 무슨 금기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수필에서 섹슈얼리티를 금기로 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수필에서 허용가능한 섹슈얼리티한 표현을 시도하고 이미 일반독자들도 그것을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수필가들은 곁눈으로 훔쳐보면서 드러내놓고 인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셋째 수필적 상상이다. 예를 들면 전복에서 으름을, 으름 열매에서 여성의 성기를 그리고 그것을 임하부인으로 생각하는 성적 상상을 허구로 인식했는지도 모른다. 동백꽃에서 힌두교의 미투나상을 보는 것도 그렇고 그런 상상을 아마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선집에 실린 작품들을 좋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심사가 끝나고 다 결정된 이후에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는 왜 읽고 싶었을까. 이것이 궁금하다. 점잖고 조용하게 예상컨대 내가 시도한 에코페미니즘, 수필에서 섹슈얼리즘의 수용, 수필적 상상은 21세기 수필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이라 보아준 것일까.

나는 문학상에 대하여 크게 욕구는 없다. 상을 받았다 해서 대단하게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들이 줄줄이 받는 문학상을 별로 받지 못했다. 어떤 때는 사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꼭 받고 싶은 상 두 가지만 꼽으라면 신곡문학상과 한국수필문학상이다.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상을 받았을 때 '정말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다.' 든지 상을 준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영광스러울 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수필문학상에서는 아직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신곡문학상을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받으니 황망하다.

신곡문학상은 이렇게 본인도 모르는 중에 전국의 수필가 중에서 찾아서 시상한다. 지금까지 대상을 받은 수필가나 수필평론가들을 살펴보면 나는 감히 낄 수 없는 자리이며 전혀 예상할 수도 없었던 상이다. 그래도 내게 준다니 황송한 마음으로 받기는 하지만 앞으로 수필문단에서 처신이 걱정된다. 

아직도 수필과비평 2월호에는 심사위원 중에 어느 분이 심사평을 쓰고 대표작으로 어느 글을 실었는지 모른다. 모두 심사위원 마음이다. 크게 궁금하지도 않다. 2월호가 나와 보면 알겠지. 그냥 거기서 원하는대로 수상소감과 약력만을 보냈다. 

 

제 26회 신곡문학상 발표

대상    이방주

수상 수필집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

대표작 <해우소解憂所에서> <풀등에 뜬 그림자>

작품론 자연친화, 불교수필의 미학 - 유한근(문학평론가)

시상식 : 2021년 2월 27일 오후 3시  전주 라한호텔

 

수상 소감

‘수필은 밥이다.’

이 말은 문학 앞에 앉은 저의 발원입니다. 수필은 육체의 에너지가 되고 영혼에 영양을 주는 밥이라 생각합니다. 수필은 창작하는 순간에 영혼이 치유되고, 읽는 동안 아픔의 치유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수필 앞에서는 밥 앞에 앉았을 때만큼 절실하고 겸허한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수필隨筆은 곧 수필修筆이란 생각으로 1998년 수필 밥상을 받은 이래 무수히 붓을 닦고 빨아도 마음뿐이지 미적 울림을 주는 글 한편 제대로 내놓지 못했습니다. 수필을 밥이라고 생각해온 것이 잘못은 아닐까 나를 돌아보고 있을 때,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축하전보를 받았습니다. 문학상을 받아본 일이 별로 없는 저로서는 너무나 황망하여 멍하니 비 내리는 정원을 바라보았습니다.

등단 이후 20여년을 돌아봅니다. 돌아보니 내가 내 길을 찾아 걸어왔다기보다 함께 해온 문우들의 손에 이끌리고 등에 업혀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직 은퇴 이후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수필창작교실을 개설하면서 만난 문우들과 함께 글을 쓰고 읽으면서 이른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덕을 혼자 본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신곡 라대곤 선생님의 문학을 향한 열정과 사랑을 배우지도 못한 채 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상을 받게 되니 감사한 마음에 앞서 문단 선배여러분께 송구하고 저와 나란히 걷는 무심수필문학회 문우들에게 민망합니다.

이 상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이방주’라는 이름을 떠올린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한 말씀을 드립니다. 잘 닦은 붓은 부드러우나 더 힘찬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붓을 닦으며 ‘신곡문학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아름다운 수필 같은 삶을 살겠습니다.

 

약력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충북도내 초중고등학교 교사 40.05년 근무

월간 한국수필 수필 등단(1998), 창조문학 평론 등단(2014),

충북수필문학회장(전), 내륙문학회장(전)

무심수필문학회, 충북수필문학회, 내륙문학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내륙문학상, 충북수필문학상, 인산기행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여시들의 반란≫≪풀등에 뜬 그림자≫≪가림성 사랑나무≫≪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부흥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산성산사 찾아≫

수필선집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

고소설 해설서 《윤지경전》

공저  인터넷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어≫(수필 단원 집필)

현재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지도교수

         한국수필가협회 감사 , 월간 한국수필 편집위원

 

 

제 26회 신곡문학상 심사 경위(해당 부분만 요약)

한국문단에서 차지하는 신곡문학상의 취지와 위상은 남다르다. 4반세기가 넘는 연륜을 이어오는 가운데 한국수필계를 빛낸 대표작가들에게 매년 주어진 신곡문학상의 이력은 너무나 소중하다. 나아가 현재 부단하게 창작하는 역량도 중시한다. 그리하여 심사위원과 후보자에게 남다른 책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역량은 종합적이다. 한 권의 작품집은 과거의 실적과 현재의 작품성과 미래의 잠재력을 고스란히 반영하기 마련이다. 작가의 문학적 진지성, 창작에 대한 열정, 미적 실험성도 심사 대상이 된다. 이 말은 인간적 고뇌를 능가하는 작가적 번뇌를 가질 때 수상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2021년 제 26회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이방주 작가를 선정하였다. 수상 작품은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2020)이다. 이방주 작가는 1998년 《한국수필》에서 등단하고 첫 수필집《축 읽는 아이》(2003)부터 테마 수필집《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2020)에 이르기까지 7권의 수필집과 기타 저서를 발표한 작가이다. 삶의 체험을 초월하고 백제의 유적, 산사, 풀꽃, 등 다채롭게영역을 넓혀온 그의 노력은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필력이라는 것에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신곡문학상 본상 대상작으로 이은화의 《철학으로 풀어보는 내맘대로의 세계사》------(생략)-------

이번에 선정된 작품집은 앞으로의 신곡문학상 후보 선정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앞으로는 더더욱 작가의 개성적 변용과 철학적 해석과 장르간의 통섭과 인문학적 입경을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그만큼 현 시대의 자가는 문학적 수인 囚人이면서 철학적 탈옥수 脫獄囚라는 고뇌의 짐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숭엄한 한국 수필의 진로를 넓힌 두 분의 수상을 축하드리면서 신곡문학상의 고지가 더 높아졌다는 말을 첨언하고 싶다.

 

제 26회 신곡문학상 심사

심사위원장 : 박양근

심사위원 : 유한근  허상문  서정환  유인실

2021년   2월    일

 

신곡문학상 역대 수상자 명단

제 1회(1995) - 김 학(대상), 박영희(본상)

제 2회(1996) - 없 음(대상), 김순영, 김홍은, 한상렬(본상)

제 3회(1997) - 김시헌, 정진권(대상), 안재진, 허정자(본상)

제 4회(1998) - 정봉구, 김병권(대상), 김정화, 박성옥(본상)

제 5회(1999) - 박재식, 이정림(대상), 박영수(본상)

제 6회(2000) - 유병근(대상), 주란숙, 민경대(본상)

제 7회(2001) - 정목일(대상), 장세진, 김종완(본상)

제 8회(2003) - 김규련(대상), 은옥진(본상)

제 9회(2004) - 정호경(대상), 김애자, 양미경(본상)

제10회(2005) - 박양근(대상), 김지헌, 엄현옥(본상)

제11회(2006) - 강돈묵(대상), 김용옥, 정여송(본상)

제12회(2007) - 김상태(대상), 황인용(본상)

제13회(2008) - 오양호(대상), 서경림, 김이경(본상)

제14회(2009) - 변해명(대상), 남지은, 신재기(본상)

제15회(2010) - 최병호(대상), 김재훈(본상)

제16회(2011) - 유한근(대상), 김향자, 윤석희, 심선경(본상)

제17회(2012) - 맹난자(대상), 이은희, 조병렬(본상)

제18회(2013) - 송명희(대상), 남호탁, 정선모(본상)

제19회(2014) - 안성수(대상), 김정화(본상)

제20회(2015) - 허상문(대상), 오순자, 임동옥(본상)

제21회(2016) - 장기오(대상),

제22회(2017) - 최승범(대상), 문윤정, 이명진(본상)

제23회(2018) - 최원현(대상), 송복련(본상)

제24회(2019) - 최화웅(대상), 하재열(본상)

제25회(2020) - 구 활(대상), 백남일(본상)

제26회(2021) - 이방주(대상), 이은화(본상)

 

 

해우소解憂所에서

 

산에 가지 못하는 일요일이다.

이 나이에는 조금이라도 땀을 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우암산에라도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시내버스를 타고 상당공원에서 내려 삼일공원에 올라가려니 진땀이 바작바작 났다. 동상은 넘어진 정춘수 목사의 좌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랫배가 쌀쌀 아파 왔다. 어제 저녁의 탐욕이 말썽을 부리는가 보다. 급히 공원 주차장 옆에 있는 간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타락의 오지奧地를 잘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급하니까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자니 플라스틱 상판이 ‘우지직’ 죽는소리를 내었다. 아랫배에서 꿈틀대는 그놈이 그새 몸무게를 늘였나 보다.

갑자기 아프던 배가 사르르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냥 올라가자. 올라가면 시민들이 많이 오니까 간이 화장실이라도 있겠지. 아니 전에 올랐을 때 있었지 않았나? 아니 있었어.

그냥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10 분쯤 올라가니 어떤 사람이 진달랜지 철쭉인지 심어 놓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아마도 시에서 하청 받은 듯하다. 호스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시원한 물줄기를 보니 반사적으로 갑자기 아랫배가 ‘싸르르’ 아프고 뒤가 묵직해 온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몸을 가릴 데라곤 없다. 그냥 뛰어 올랐다. 먹거리에 대한 나의 탐욕이 방망이가 되어 꼿꼿하게 내뻗치면서 아랫배의 여기저기를 꾹꾹 찌르는 듯하다. 도저히 걸음을 걸을 수 없다. 통나무를 잘라 만든 앉을깨가 있다. 거기 앉았다. 그렇게라도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내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아마 인간 최초의 괴로움의 표정은 이렇게 나타났을 것이다. 굶주리는 이들에 대한 자비를 잃은 죄의 대가가 괴로움이 되어 돌아온 것일까? 또 다시 부드럽게 또 가라앉는다.

그렇게 참으며 송신소까지 올랐다. 온몸이 땀에 젖는다. 송신소에 가면 대피소가 있겠지. 그러나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높은 철조망만이 그 높이만큼의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냥 돌아내려가려니 송신소 건물이 원망스럽고 닥쳐올 일이 두려웠다. 몇 번이나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는지 모른다.

이제 정상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짙은 숲이라도 있을 테니까’하고 자위하며 가파른 마지막 정상으로 계단을 오른다. 아랫배는 더욱 무거워진다.

하늘을 찌르는 나무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에 계단 옆 떡갈나무 잎이 정말로 실하게 보였다. 넓고 토실토실하고……. 뜯어 떡을 쌀 일도 없는데 자꾸 그리로 눈길이 간다. 주머니에 휴지가 없는 게 아까부터 걱정이었다. 등산객들이 보지 않을 때 떡갈나무 잎 몇 개를 따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만약을 위해서. 이 정도의 자연 훼손은 그냥 용서되겠지. 누가 탐욕은 근심이 되어 또 다른 탐욕을 낳는다고 욕할 사람이 있겠는가.

등줄기에 땀이 밴다.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나의 근심을 풀어줄 화장실은 없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절망은 뒤꽁무니에 뻗치는 방망이를 더욱 곤두서게 하였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야 한다. 떡갈나무 잎도 준비되었으니까. 그러나 정상에는 사람이 더 많다. 여자들은 왜 그리 많은가. 오늘 같이 좋은날 젊은이들이 갈 데 없어 여기까지 왜 그리 많이 왔는가.

오솔길을 찾아도 빨간 내 셔츠를 숨길 곳은 없다. 할 수 없다. 경사진 오솔길을 엎어질 듯 뛰었다. 낭패를 보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송신소를 드나드는 시멘트 길을 뛰었다. 등이 땀에 젖는다. 마을에 이르니 화장실인 듯한 곳이 보인다. 구세주를 만난 듯했으나 주먹만한 자물쇠가 땅에 떨어지면 지구가 깨어질 듯 절망의 무게처럼 매달려 있다.

무당집에는 푸닥거리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무당집 아래에 초파일을 지나 고요한 사찰이 있었다. 멀리 화장실인 듯한 건물이 보였다. 도량은 너무나 고요하다.

나는 아랫배에 죄를 끌어안은 채 부처님께 들킬세라 오금을 굽혀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대웅전 앞을 지났다. 정말로 가까스로 아무 일 없이 화장실 문고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문짝에 쓰인 ‘解憂所’란 명필이 눈에 띠었다. ― 근심을 푸는 곳 ― 정말로 깨끗하다. 정랑淨廊이란 말이 무색하다. 화장지까지 가지런하게 준비되었다. 옛날 시골 변소같이 잠자리만한 시커먼 모기가 덤빌 듯도 한데 까마득하게 먼 정랑에는 파리 한 마리 없다. 인간의 탐욕만이 누렇게 정화되어 쌓여있다.

고통스럽게 이 순간을 기다렸던 탐욕의 덩어리는 노골노골한 가래떡이 되어 정랑으로 떨어진다. 후련하다. 극락이 따로 없다. 이렇게 극락은 바로 발아래 있는 것을……. 사람들은 저 혼자만이 극락을 가려는 듯이 발버둥친다.

이렇게 근심을 풀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놓고 나를 기다려오신 부처님의 은혜에 정말 절실한 감사를 드렸다. 부처님은 나의 죄를 다 용서하신 것인가? 굳었던 아랫배는 평정을 되찾았다.

해우소解憂所를 나와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며 근심의 방망이 때문에 잊었던 부처님 은혜에 새삼 감사하며 조용히 삼배를 올렸다.

(2000. 축 읽는 아이)

 

풀등에 뜬 그림자

 

대이작도 풀등에 갔다. 아침 햇살이 바다 위에 은빛 은혜를 쏟아 붓고 있었다. 풀등은 해안에서 모터보트로 3분쯤 거리에 있는 나지막한 모래톱이다. 배에서 내려서니 파도에 다져진 모래언덕이 딱딱하다. 파도가 씻어 놓은 모래는 물결무늬가 그대로 남아 파도인지 모래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맨발로 나긋나긋한 촉감을 느끼며 걸었다.

아침 그림자가 길게 앞장을 선다. 엄청나게 길다. 내 그림자가 이렇게 길고 큰가? 내가 이렇게 커질 수도 있는 인물이었나? 나는 내 그림자의 키가 너무 크고 긴 데 놀랐다. 태양이 은혜의 빛을 얼마만큼 주는가에 따라 생명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만 알았었다. 그런데 태양이 존재하는 위치에 따라 이렇게 커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태양이여, 이제라도 그곳에서 영원이 나를 비추어 주소서. 이런 지나친 욕망을 가져 보았다.

나는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나는 내 그림자인데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내가 밟을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림자의 발등뿐이다. 무릎은 너무 멀고 장딴지라도 밟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밟으면 거기는 바로 발등이 된다. 나는 내 그림자의 장딴지를 밟을 수 없다. 따르고 싶은 곳을 따를 수 없어 안타깝다. 아, 나는 그림조차도 따를 수 없구나. 그러고 보니 태양이 등 뒤에 있으면 내가 그림자를 따르게 되지만 따르고 싶은 곳을 따를 수 없다. 내가 따를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림자의 발등뿐이다.

태양이 나의 앞에서 비추어 주면 어떨까? 내 그림자의 크기는 마찬가지이겠지. 내가 태양을 안고 있으면 나는 그림자를 데리고 내 길을 떠나야 한다. 그림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발등 이상을 따를 수 없다. 태양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얼마만큼만 능력을 허용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섭리일 뿐이다.

모래섬 위에 아직도 흘러가지 못한 작은 호수가 있어서 발을 담가 본다. 웅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워 호수라고 부른다. 물이 장딴지까지 올라온다. 거기에 서 보았다. 그림자가 앞에 선다. 그림자가 아까만큼 크고 길다. 그런데 빛이 다르다. 그림자에 기름이 돈다. 맑은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얇은 명주에 그려놓은 수묵화 같다. 내 안의 더러움이 소금물에 씻겨버린 것이다. 깨끗하다. 맑고 투명하다.

그렇구나. 태양은 내가 설 자리는 어쩌지 못하는구나. 나를 키워주는 것은 태양이지만서 있는 모습은 내 의지적 선택에 따를 뿐이다. 나는 어디에 무엇으로 서 있어야 할까? 어디에 서는 것, 무엇으로 서는 것, 어떤 크기로 서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내가 알 수도 없다. 다만 좀 더 투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만을 풀등에서 그림자에게 배운다.

(2013. 풀등에 뜬 그림자)

 

신곡문학상 대상/ 이방주 작품론

자연 친화, 불교수필 미학

-이방주 수필 세계

 

유한근

 

이방주는 최근의 수필집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2020)의 ‘여는 글’(서문)에서 자신의 창작 비밀 혹은 개인적 모티프를 토로한다. “꽃이나 나비는 내 생명의 에너지원이다. 상생이 삶의 지혜이다./ 진리는 이만큼 밝은데 수필쓰기의 화두는 온통 의문투성이이다. (…) 수필을 쓰려면 의혹을 깨고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에 이르러야 한다. (…) 나에겐 들꽃이 스승이고 들풀이 길잡이이다. (…)들꽃 들풀은 우주를 담고 피어나서 남을 살림에 에너지가 되고 스스로 살이의 방도를 안다. 들꽃 들풀이 우주이고 인간 생명의 원동력이다. 들꽃 들풀이 우리네 살림살이 본질을 거짓도 없이 보여준다. 들꽃 들풀은 내 형제이고 대지가 나의 어머니이다.”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한 권의 수필집에서 그 실체와 본질을 입증해 준다. 또한 이전의 수필집 《가림성 사랑나무》(2017)에서는 백제의 산성과 산사를 시간의 경계를 넘어 답사하면서 당대의 문화와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자연과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이방주는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1998)과 계간 《창조문학》 문학평론(2014)으로 등단하여 수필가와 평론가로 활동한다. 등단 이후 수필집 《축 읽는 아이》(2003), 《손맛》(2009), 《여시들의 반란》(2010), 《풀등에 뜬 그림자》(2014), 《가림성 사랑나무》(2017),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2020), 그리고 수필선집《덩굴꽃이 자유를 주네》를 펴낸 중견 작가로 “수필은 체험과 사실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들려주는 치유의 속삭임이라 (…) 언젠가 모든 문학은 수필에 수렴될 것이라 믿고 있”는 작가이다. 모 수필 전문지 월평에서는 그는 “시인은 평범한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대신 기도하는 사제司祭라 한다면, 수필가는 이웃과 아픔을 나누는 곡비哭婢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작가이다(《한국수필》2021. 1. 월평에서) 또한 “우리 수필은 서구의 에세이와 다른 우리만의 인식으로 우리 식의 형상과 구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수필공부를 하며 문우들에게도 그렇게 전”하는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에서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고는 이방주 작가의 수필선《덩굴꽃이 자유를 주네》를 텍스트로 하여 그의 수필세계를 일별하려 한다. 이방주 작가는 부제 ‘나의 문학, 나의 고뇌’가 붙은 <눈길에서>라는 수필에서 자신의 문학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이 수필은 사무실로 가는 차 속에서 문학에 대한 상념과 눈길의 풍경을 지그재그로 구조하여 보여준다. 밤사이에 포근하게 쌓인 눈길의 풍경을 바라보며 작가는 이렇게 사유한다. “사람들은 이런 눈 쌓인 풍경을 바라보며, 농담처럼 시상詩想이 떠오른다고 한다. 詩, 그건 태초의 문학이다. 속된 세상의 아름다움을 신에게 전하는 주술이다. 가슴에 하나씩 신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시상이 떠오르게 마련이겠지.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은 기질이 아니라 본능이라 하나보다. (…) 해마다 보는 눈 쌓인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상을 떠올리는 게 사람이다. 본 것이 있고 본 것에 대한 사색이 있고, 사색에 옷을 입히면 그것이 시가 되겠지. 그렇게 문학은 햇살에 눈발이 반짝이듯 반짝이면서 포근히 쌓여 가는 것인 줄 알았다. 문학은 그렇게 질서 있고 조심스럽게 행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 줄만 알았다.”라는 사유가 그것이다. 문학의 원초적인 개념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햇살에 반짝이는 눈밭에 대비시켜 은유적 표현 구조로 사유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뒤 그는 잠깐 창작 외적인 문학 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제도나 규범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등단'이라는 고개를 만들어 놓고, 호젓한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거나, 오롯이 둑길에 서서 연잎을 구경하며 혼자만의 정취에 심취한 문인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고갯길에 오르면 너른 들판이 다 내려다보이듯 삐죽삐죽 솟아오는 마른 수수깡을 발견하고, 훤하지도 못한 세계에 실망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온통 백색만은 아닌 것에 절망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문단에 대한 절망적 상황, 그리고 언어유희가 난무하는 정치와 문학과의 관계, ‘관조와 인식 대신에 패거리가 있고, 논리와 형상 대신에 협잡과 궤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문학에 대해서 되돌아본다.

 

나의 문학은 올곧게 나가고 있는가? 조간에서 박경리 선생이 오늘날 문학을 삶의 위안으로 삼는 유희적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고 아프게 반성한 글을 읽었다. 나의 글은 생활의 넋두리나 아닌가? 나의 수필은 자신에 대한 실망을 포장하는 3차 포장지는 아닌가? 나의 글은 부당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비겁한 궤변은 아닌가? 나의 글은 나타懶惰와 비열한 삶의 낯 뜨거운 정당화는 아닌가? 나의 글은 자조와 열등의식의 돌파구는 아닌가? 내 글에는 세계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담고 있는가? 박경리 선생의 말처럼 이런 모든 것들을 위안 받기 위한 언어유희는 아닌가? 나의 문학은 넋두리, 궤변, 변명, 언어유희의 나락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건 아닌가?
- 수필 <눈길에서>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의 키워드는 ‘언어유희’이다. 여기에서 언어유희는 표현구조로서의 아이러니의 하나인 언어유희, 트릭이 아닌 언어유희(pun)이다. 위의 인용문에 의하면, “문학을 삶의 위안으로 삼는 유희적 도구로 전락”으로서의, ‘넋두리’으로서의, ‘부당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비겁한 궤변’, ‘나타懶惰와 비열한 낯 뜨거운 정당화, 자조와 열등의식의 돌파구’로서의 언어유희를 의미한다. 세계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고 거짓된 넋두리, 궤변, 변명에 지나지 않은 언어유희가 아닌가 하는 자기 문학에 대한 점검의식의 이 수필의 키워드이다.

그 뿐 아니라 작가는 이 수필의 결말 부분에서도 다시 자아를 확인한다. “나의 문학은 과연 텅 빈 껍데기는 아닐까? 두렵다. 내가 머물러 있는 눈 쌓인 마당이 두렵다. 눈길에서 나의 고뇌는 가슴을 찌르는데, 뜨거운 커피는 더욱 뜨겁고, 흰 눈은 내 안경을 더욱 차갑게 한다./ 바람도 없는 뒷산의 참나무에서 한 무더기 눈이 쏟아진다.”로 마무리하면서 냉기가 비수같이 스며드는 눈길에서 냉정하게 문학을 점검, 환기한다.

 

1. 불교와 자연친화적 상상력

 

불교수필은 불교적 소재나 화소로 한 수필이라기보다는 불교적인 인식과 그 상상력으로 영성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수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경하지 않은 불교 교리를 설파하기보다는 불교사상이 육화된 수필을 우리는 좋은 불교 수필로 인식한다. 이런 맥락의 이방주 수필은 <인연>, <섬초롱 인연>, <해우소에서> 등이다.

수필 <인연>은 작가와 청주 용암동에 소재한 절 ‘보살사’와의 인연을 쓴 수필이다. 이 수필은 “퇴근길에 절에 들렀다. 청아한 목탁소리가 정적을 울린다. 뜰에 서 있는 보리수 잎이 떨리는 듯하다. 잦은 비로 골짜기 물소리도 제법 화음을 이룬다.”로 시작된다. 그리고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한 것 같지만 아름다운 포도원을 거쳐 갈 수 있어서 좋다. 도심에서 시오리 길, 여기에 이런 고요가 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은혜롭다. 극락보전에서 거룩한 아미타부처님을 바라보며 삼배를 올린다. 나의 신앙은 고작 삼배일 뿐이다. 탑돌이도 삼성각 참배도 할 줄 모른다. 삼배의 순간만이라도 진정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돌아 나오는 가슴을 쓰다듬어 본다.”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불교에 조예가 깊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나는 불교의 교리를 모른다. 그런데 나의 신앙과의 인연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살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개구쟁이 마음으로 학교에서 이십 리도 더 되는 산골짜기에 있는 고찰을 걸어서 가는 길이 꽤나 짜증스러웠을 텐데도 그렇게 멀미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봐도 다른 절과 별다른 것이 없듯이, 그 때도 고찰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린 나이에 진한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라고 고백한 것으로 보아 작가와 보살사와의 인연은 각별한 것으로 보인다. 유학자였던 아버지와 신심이 깊은 할머니와의 보살사와의 인연, 그리고 부임한 종산 스님과의 인연, 그리고 학생과 교사들의 대입 기원의 모임 등 작가는 보살사와의 인연을 기술한다. 불교 교리에 대해서는 ‘불망언不妄言’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다. 모두 알고 있지만 ‘불망언不妄言’은 불교 오계의 네 번째 계율로 “거짓말 하지 마라.”이다. 그리고 이는 기독교의 십계명 중 아홉 번째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하지 마라.”라는 말과도 통한다. 이렇듯 이방주의 불교 수필에서는 생경한 불교 교리보다는 일상적인 삶의 지혜가 되는 아포리즘적 언어를 제시할 뿐이다. 이 수필의 모티프인 인연에 대한 지혜의 언어로 결말 부분에 이르러 심정적 방점을 찍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실주의자였던 내가 내세來世에 대해서 확연하지는 않지만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이란 말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는 터이다. 피나는 노력에 따라 운명의 가닥을 빨리 잡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보살사와의 만남을 통해서 지혜의 생명을 얻었고, 신앙을 만났고, 내 삶이 지향해야 하는 십자성을 찾았으며, 인연 그 자체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다.
나의 육신을 점지하고 영혼의 문을 열어준 보살사에는 오늘도 산새소리가 스님의 목탁 소리와 화음을 이룬다.
-수필 <인연> 결말 부분

 

위의 인용문은 이 수필의 요체이다. 내세를 믿게 된 작가의 토로, 진정한 인연의 의미, 그리고 할머니의 기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고 있는 작가의 탄생과 영혼의 문을 열어준 보살사와 인연을 산새 소리와 목탁 소리로 감각적 표현을 표현하는 것으로 불교적 상상력의 수필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수필과 같은 맥락의 수필 <섬초롱꽃 인연>에서는 ‘인연’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연因緣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인因과 연緣에 의해서 또 하나의 인연이 일어난다. 인因이란 내가 지은 것이고 연緣이란 주변의 환경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가 그것이다. 이 수필은 작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정원 담 너머”와 자신의 아파트에 핀 섬초롱꽃을 모티프로 한 수필이다. 섬초롱꽃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것에 대한 사유과정을 서술한 수필이다.

 

“섬초롱꽃만 보지 않았다면”, “라면 봉지만 줍지 않았다면”, “나무에 버팀목만 없었다면”, 나는 머리를 부딪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섬초롱꽃에서 시간을 끌었기에 라면 봉지를 만났고 그걸 줍다가 버팀목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섬초롱꽃을 보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머리를 부딪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연因緣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인因과 연緣에 의해서 또 하나의 인연이 일어난다. 因이란 내가 지은 것이고 緣이란 주변의 환경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섬초롱꽃에 북을 주느라 시간을 끌거나 라면봉지를 주우려고 머리를 구부린 것은 因이라면, 섬초롱꽃의 거친 환경이나 버팀목의 존재는 緣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머리를 부딪치는 일이 나타난 것이다.
‘액땜’이란 말이 있다. 내가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업보는 언젠가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인연이고 연기라면, 오늘 머리를 부딪치는 것으로 ‘액땜’을 한 것이다. 과거에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엄청난 과오에 대하여 그만한 업보를 받아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는데 머리 부딪치는 것으로 땜질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 수필 <섬초롱꽃 인연> 중에서

 

위의 인용문은 인연에 대한 실체적인 설명과 그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액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부연할 말은 없다. 다만 이 수필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범사에 감사하라던 말씀”과 “인연은 복으로 올 수도 있고 재앙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환기의 언어이고, 작가가 《장아함경長阿含經》 ‘대본 경하중 12연기’를 인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차유고피유 차기고피기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차무고피무 차멸고피멸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또한 저것도 멸한다.)”라는 연기론을 통해 공생 혹은 상생의 원리를 힘주어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방주 작가는 위에서 언급한 월평<‘관계’의 해석으로 영혼을 치유하는 철학적 속삭임>(《한국수필》, 2021. 2)에서도 타 작가의 작품을 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21년 새로운 시대 한국수필의 지향점은 아무래도 관계와 치유가 아닌가 한다. (…) 관계의 원형적 해석이 영혼의 치유를 이룬다면 그것은 곧 상생相生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시대, 관계와 치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생태주의와 상생을 고민하는 작품이 기대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관계의 원형적 해석”의 하나로 인연을 들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정신적 치유라는 문제와 연관시켜 극복할 수 있는 방편으로 상생을 들고 있는 셈이다. 상생 이론은 불교에서보다는 주역의 음양오행설에서 주로 차용하게 있다. 오행의 상생과 상극이론을 바탕으로 인체의 생리生理와 병리病理를 설명하는 이론이 그것인데,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과연의 상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상상력에서 가능해지는 국면을 의미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2. 풀등의 그림자의 표상성

 

이방주 수필의 두 번째 특성은 자연친화적인 상상력의 수필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네 번째 수필집인 《풀등에 뜬 그림자》(2014) 이후 최근의 수필집《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2020)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고수해온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탐색해 보려하는 <해우소에서>는 그의 첫 수필집인 《축 읽는 아이》(2003)에 수록된 수필이지만 여기에서도 불교적인 상상력과 자연친화 상상력이 나타난다.

‘해우소解憂所’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의미로, 절에서 ‘화장실’ ‘변소’를 이르는 말이다. 이 수필은 작가가 어느 일요일에 가까운 우암산에 올라갔다가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서술한 수필이다. 불편한 이야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감사하게(?) 이야기한 수필이다.

 

무당집에는 푸닥거리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무당집 아래에 초파일을 지나 고요한 사찰이 있었다. 멀리 화장실인 듯한 건물이 보였다. 도량은 너무나 고요하다.
나는 아랫배에 죄를 끌어안은 채 부처님께 들킬세라 오금을 굽혀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대웅전 앞을 지났다. 정말로 가까스로 아무 일 없이 화장실 문고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문짝에 쓰인 ‘解憂所’란 명필이 눈에 띠었다. ― 근심을 푸는 곳 ― 정말로 깨끗하다. 정랑淨廊이란 말이 무색하다. 화장지까지 가지런하게 준비되었다. 옛날 시골 변소같이 잠자리만한 시커먼 모기가 덤빌 듯도 한데 까마득하게 먼 정랑에는 파리 한 마리 없다. 인간의 탐욕만이 누렇게 정화되어 쌓여있다.
고통스럽게 이 순간을 기다렸던 탐욕의 덩어리는 노골노골한 가래떡이 되어 정랑으로 떨어진다. 후련하다. 극락이 따로 없다. 이렇게 극락은 바로 발아래 있는 것을……. 사람들은 저 혼자만이 극락을 가려는 듯이 발버둥친다.
이렇게 근심을 풀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놓고 나를 기다려오신 부처님의 은혜에 정말 절실한 감사를 드렸다. 부처님은 나의 죄를 다 용서하신 것인가? 굳었던 아랫배는 평정을 되찾았다.
해우소解憂所를 나와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며 근심의 방망이 때문에 잊었던 부처님 은혜에 새삼 감사하며 조용히 삼배를 올렸다.
-<해우소에서> 결말 부분

 

‘해우소’는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깨끗할 정淨과 사랑채 랑廊을 합쳐 정랑이라고도 부른다. 그곳에는 “고통스럽게 이 순간을 기다렸던 탐욕의 덩어리”만이 “노골노골한 가래떡이 되어” 쌓여 있는 곳이다. 쌓여 있는 그것들은 탐욕의 덩어리이며, 근심의 덩어리이고, 죄의 덩어리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문이 없다. 경계가 없다. 자연과 연결된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극락으로 가기 위해 탐욕을 버리는 곳이다. 근심을 풀 수 있는 곳이다. 그것을 작가는 부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웅전 앞마당에서 삼배를 한다.

<풀등에 뜬 그림자>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이작도 풀등에 갔다. 아침 햇살이 바다 위에 은빛 은혜를 쏟아 붓고 있었다. 풀등은 해안에서 모터보트로 3분쯤 거리에 있는 나지막한 모래톱이다. 배에서 내려서니 파도에 다져진 모래언덕이 딱딱하다. 파도가 씻어 놓은 모래는 물결무늬가 그대로 남아 파도인지 모래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가 그것이다. 풀등은 강 하류 물속에 모래가 쌓여 그곳에 풀이 수북하게 솟아오른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수필의 제목인 ‘풀등에 뜬 그림자’는 그곳을 걷고 있는 작가 자신의 그림자를 의미한다.

 

맨발로 나긋나긋한 촉감을 느끼며 걸었다. 아침 그림자가 길게 앞장을 선다. 엄청나게 길다. 내 그림자가 이렇게 길고 큰가? 내가 이렇게 커질 수도 있는 인물이었나? 나는 내 그림자의 키가 너무 크고 긴 데 놀랐다. 태양이 은혜의 빛을 얼마만큼 주는가에 따라 생명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만 알았었다. 그런데 태양이 존재하는 위치에 따라 이렇게 커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태양이여, 이제라도 그곳에서 영원이 나를 비추어 주소서. 이런 지나친 욕망을 가져 보았다.
나는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나는 내 그림자인데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내가 밟을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림자의 발등뿐이다. 무릎은 너무 멀고 장딴지라도 밟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밟으면 거기는 바로 발등이 된다. 나는 내 그림자의 장딴지를 밟을 수 없다. 따르고 싶은 곳을 따를 수 없어 안타깝다. 아, 나는 그림조차도 따를 수 없구나. 그러고 보니 태양이 등 뒤에 있으면 내가 그림자를 따르게 되지만 따르고 싶은 곳을 따를 수 없다. 내가 따를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림자의 발등뿐이다.
-<풀등에 뜬 그림자> 서두 부분

 

이 수필은 다분히 감각적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명증하다. 풀등에 서 있는 작가, 작가의 그림자는 아침 햇살로 인해 유난히 길다. 그 그림자를 작가는 태양이 준 은혜로 인식한다. 자신보다 먼저 걸어가는 그림자, 그림자를 밟고 따라가려 하지만 따를 수 없는 작가. 작가가 밟을 수 있는 것은 풀등에 뜬 그림자의 발등임을 인식하게 된다. 풀등의 그림자는 또 다른 작가의 표상이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자연 속으로 들어가 안주해야 할 대상임을 인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작가는 태양으로 표상되는 자연을 두고 결말 부분에서 이렇게 사유한다. “그렇구나. 태양은 내가 설 자리는 어쩌지 못하는구나. 나를 키워주는 것은 태양이지만서 있는 모습은 내 의지적 선택에 따를 뿐이다. 나는 어디에 무엇으로 서 있어야 할까? 어디에 서는 것, 무엇으로 서는 것, 어떤 크기로 서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내가 알 수도 없다. 다만 좀 더 투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만을 풀등에서 그림자에게 배운다.”로 이 수필을 마무리한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투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미는 이 수필에서 서술한 “내 안의 더러움이 소금물에 씻겨버린 것이다. 깨끗하다. 맑고 투명하다.”라는 표현을 보아 청결한 마음, 맑고 깨끗한 영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적멸의 순간, 그 마음을 의미할 것이다.

수필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는 ‘둥근잎유홍초꽃’이라는 부제가 붙은 수필이다. 이 꽃은 나팔꽃을 닮은 꽃으로 메꽃과에 속한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다. 어떤 환경도 가리지 않고 번식하는 꽃이다. 이 꽃에 대한 인식을 작가는 '자유'라는 키워드로 인식한다. “이른 아침 주중리에 갔다. 아침에 이슬이 맑다. 농로를 달리는 자전거 타이어에 이슬 젖은 흙이 묻어난다. 참 곱다. 어느새 벼이삭이 초록빛 잎사귀 사이로 노랗게 고개를 숙였다. 아침에는 이슬이 맑고 시원해도 한낮에는 이마를 벗겨낼 듯 볕이 따갑다. 페달을 서둘러 밟을 필요가 없다. 날마다 바뀌는 가을의 부름에 눈길을 보내느라 서두를 겨를도 없다.”라고 서두를 시작하면서 작가는 둥근잎유홍초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둥근잎유홍초는 논둑이나 밭둑에 아무렇게나 벋어가기도 하고, 잡초더미나 개바자를 올라타고 진홍색 꽃을 피우기도 한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 결코 게걸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콘크리트 전봇대를 끌어안고 올라가 소담스럽게 꽃을 피웠다. 둥근잎유홍초는 개바자에 피어야 하고 콘크리트 전봇대는 경직되어 있어야 하는 규범을 버렸다. 회색 전봇대는 제가 지닐 규범을 잊어버리고 둥근잎유홍초꽃 진홍색으로 온몸을 휘감았다. 규범도 버리고 관습도 버리고 온통 아름다운 사랑으로 치장한 것이다. 전봇대는 초록과 진홍색을 휘감고 딱딱한 회색으로부터 탈피했다. 아, 그렇구나. 규범과 관습으로부터 탈피하면 자유를 얻는구나. 나는 여기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둥근잎유홍초꽃> 서두 부분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이 수필은 ‘둥근잎유홍초꽃’에서 “규범과 관습으로부터 탈피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혜의 나신에 그려진 덩굴꽃 그림을 떠올리며 식물성 인간의 자유를 환기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황석영 저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의 광주민중항쟁의 의미도 환기한다. 그리고 덩굴식물에 대해서,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혜 대해서,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 사유한다.

덩굴식물은 대개 남을 감고 기어 올라가 남을 죽이게 되지만, “둥근잎유홍초는 때로 길가의 작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는 하지만 다른 덩굴식물처럼 말려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 영혜는 “고기를 먹는 관습, 사랑도 없이 성을 받아들이는 관습, 아버지의 명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관습, 이미 규범이 되어버린 관습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지름길임을 알”고, “규범과 관습을 탈피하여 얻어낸 원시적 자유를 아주 쉽게 행동으로 옮”기고, “형부가 발가벗은 몸에 덩굴꽃을 그려주자 자신이 폭력을 모르는 식물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 욕망은 “성적 쾌감이라기보다 원시로 돌아간 자유에서 오는 쾌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인식한다. 그리고 다시 이 수필의 결말 부분에서 작가는 둥근잎유홍초와 영혜의 사랑과 자유로 마무리한다.

 

자유를 깨달은 영혜는 인제는 아예 나무가 되고 싶어진다. 광합성으로 사는 것이 온전한 자유의 실현이라는 신념을 갖는다. 그래서 나무가 될 궁리를 한다. 웃옷을 벗고 가슴을 드러낸 채 볕을 쬐기도 하고, 태양을 향해 팔을 벌려 햇볕을 받는다. 발밑에서 뿌리가 나올 것이라 자랑한다. 채식주의자는 다만 채식으로 자신의 꿈을 끝낸 것은 아니었다. 문명이라는 허울을 쓴 사람들은 영혜가 획득한 영원한 사랑과 자유를 미쳐버린 것으로 착각한다.
둥근잎유홍초에게 그림처럼 휘감긴 딱딱한 전봇대는 얼마나 황홀할까? 규범의 옷을 벗어버린 본능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것이다. 나도 때로는 머리가 내리는 명령을 거부하고 가슴이나 몸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말은 진정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명령을 거역할 용기가 없다. 그런 내 자신이 치졸하게 느껴질 때마다 영혜의 용기가 부럽다. 형부의 탈선이 대견하다. 오늘 아침에는 콘크리트 전봇대를 칭칭 감고 올라간 덩굴꽃이 부럽다. 그렇게 경직을 깨어버린 용기가 부럽다. 규범도 관습도 없는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는 둥근잎유홍초꽃의 진홍색 입술이 부럽다.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둥근잎유홍초꽃> 결말 부분

 

위의 인용문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작가 이방주의 진솔한 고백이다. 원초적 본능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고, 규범과 관습에 경직된 제 삶을 깨트릴 수 없다는 고백이 그것이다. 영원한 사랑과 자유를 획득한 영혜의 용기가 부럽고, 마지막 문장인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는 둥근잎유홍초꽃의 진홍색 입술이 부럽다.”는 고백은 진정한 창작을 위한 자유정신이 부럽다는 말일 것이다. 이를 얻기 위해서 도전 정신이 필요하고, 기존의 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들이 부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듯 수필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는 문학비평적 에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로서의 수필, 그 하나의 유형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목되는 수필은 <낮달맞이꽃 사랑>이다.

 

3. 사랑과 삶의 원형

 

낮달맞이꽃은 원산지가 남미인 귀화식물로 낮에도 꽃이 피는 두해살이 풀이다. 꽃말은 ‘무언의 사랑’, ‘보이지 않는 사랑’, ‘기다림’이다.

이방주의 <낮달맞이꽃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이라 말하면 사랑의 달이 뜬다. 사랑이란 말 속에는 사랑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 말하고 기다려볼 일이다. 누구의 사랑에도 장벽은 없다.'가 그것인데, 이는 꽃말과 깊은 관련이 있는 다른 문장이다. 그리고 《대동운부군옥》에 전하는 선덕여왕과 지귀 이야기인 ’심화요탑心火繞塔‘을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권 4에도 간략하게 나오지만 영묘사 사건으로 기술되어 있다.

 

사랑의 장벽을 드러낸 이야기로 《대동운부군옥》에 전하는 ‘심화요탑心火繞塔’이 있다. 선덕여왕 때에 지귀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는 서라벌에 나갔다가 선덕여왕의 미모를 보고 사모하게 되었다. 그 뒤로부터 지귀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선덕여왕을 부르다가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여왕이 절에 행차하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지귀가 골목에서 선덕여왕을 부르면서 뛰어나오다가 군사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여왕은 지귀를 따라오도록 허락했다. 선덕여왕이 절에 이르러 기도를 드리는 동안 그는 탑 아래에 앉아서 기다리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여왕은 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탑 아래에 잠들어 있는 지귀를 보았다. 여왕은 그가 가여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금팔찌를 빼어 그의 가슴 위에 놓아준 다음 발길을 옮기었다. 선덕여왕은 지귀를 백성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비로소 잠이 깬 지귀는 금팔찌를 보고 놀랐다. 금팔찌를 꼭 껴안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기쁨도 잠시 방심으로 여왕을 보지 못한 회한이 심화心火가 되어 온몸이 활활 타올랐다. 선덕여왕을 향한 지귀의 사랑은 화신火神이 되어버린 것이다.
-<낮달맞이꽃 사랑> 서두에서

 

이 설화는 연기설화 혹은 영험설화로 보기도 한다. 그것은 끝부분에 부가된 민속적 기사 때문이다. 지귀가 타죽어 화신火神이 되고 민간 신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주사를 지어 문벽에 붙임으로써 화재를 막았다는 화신의 유래를 말하는 것으로 그러하다. 이 설화는 독특한 불교설화로 신라시대에 토착화되면서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결부되어 민간설화로 토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수필의 구조미학적인 측면에서 이 ‘심화요탑心火繞塔’ 설화를 서두에 구조한 것은 다소 무리한 구성미학이지만,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기에는 효과가 있다. 이 신화가 소개된 후, 작가는 이 수필을 쓰게 된 경위를 서술한다. 새벽 빗소리에 깨어 아파트 맞은편 마로니에시공원 동산 오솔길에서 청초한 여인과 달맞이꽃을 닮은 분홍색 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꽃은 새벽에는 노란 달맞이꽃과 함께 피어 있다가 해가 지면 지는 꽃이다. 그 꽃의 이름을 검색하다가 급기야는 그 이미지로 ‘낮달맞이꽃’이라 작가는 이름하고, “달이 없는 낮에도 피어 낮달을 기다리다 잠드는 지귀 같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 선덕여왕을 짝사랑했던 지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수필은 화제를 바뀌어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홍석중의 장편소설 《황진이》이라는 책 이야기를 한다. 그 소설의 이야기 중에서 진이 첫사랑이라 할 수 있는 ‘놈이’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요약하며, 작가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장벽이 두 사람에게 사랑의 아픔을 주’게 되는데, ‘그 후 진이는 청루에서 몸을 팔며 살’고 ‘놈이는 화적패가 되었다가 잡혀 처형당’하지만, ‘진이는 사랑을 깨닫고 놈이에게 절을 올리’고, ‘결국 놈이는 죽음에 이르러 계급이란 장벽을 허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사랑은 “낮달맞이꽃의 숙명적 사랑”으로 “말없이 진이를 사랑한 놈이 같은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기다리면 오는 것이니까.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처럼 황금 팔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무언의 사랑을 한 놈이처럼 진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사유한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곁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위로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의 사랑은 기다리면 돌아온다고 생각하자. 사랑이란 말 속에는 사랑이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사랑의 달이 뜬다고 믿자. 지귀에게도 놈이에게도 낮달맞이꽃처럼 말없이 기다리면 사랑의 달은 언젠가 뜨게 마련이니까 말이다.’라며 이 수필을 마무리한다. 낮달맞이꽃의 꽃말인 ‘무언의 사랑’, ‘보이지 않는 사랑’, ‘기다림의 사랑’을 한국인의 원형적인 사랑으로 인식하게 하는 수필이다.

신화나 설화 속에서 인간과 삶의 원형을 탐색하려는 창작적 노력은 현대에 와서 더욱더 소중하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인간의 정서와 사유, 그리고 삶의 원형이 그 속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방주 작가는 수필 <낮달맞이꽃 사랑>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쇠비름처럼 살아볼 일이다. 혹독한 환경은 신이 내린 시험일뿐이다. 신의 시험은 풀어내야하는 삶의 문제이지 주저앉으라는 핍박은 아니다. 대지는 어느 생명에게나 공평하게 은총을 내린다. 척박한 땅을 주면 끈질긴 생명력도 준다. 대지의 가르침대로 노란 꽃을 피우고 씨오쟁이를 터트려 새끼들을 키워갈 일이다. 나를 닮은 새끼들이 뿌리를 내리고 노란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릴 일이다. 다 디디고 일어서면 누가 나를 뽑아 시멘트 바닥에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내던져 버림받아 명줄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쇠비름’이란 이름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쇠비름처럼 모질게 살아볼 일이다. 쇠비름이 대지에서 모성을 받았다면 내 문학의 어머니는 문단이다. 나는 아직 미생未生이다. 그래도 쇠비름에게 배운 정석定石으로 살아볼 일이다. 누구에게든 영양이 되고 영약靈藥이 되게 살아볼 일이다.
- 수필<쇠비름처럼> 결말 부분

 

위의 인용문은 수필 <쇠비름처럼>의 결말 부분이다. 이 수필은 “쇠비름처럼 살아볼 일이다”로 시작해서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우리는 쇠비름처럼 살아볼 일이다.”, “쇠비름처럼 모질게 살아볼 일이다.”라는 마지막 단락으로 끝난다.

쇠비름은 어느 곳에서든 잘 자라는 잡초이다. 잎이 있는 줄기라면 꺾꽂이해도 번식이 가능한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이 잡초처럼 ‘우리 살아볼 일’이라고 반복적으로 구조한 패턴 수필이다. 작가는 위의 인용문에서 “혹독한 환경은 신이 내린 시험”이기 때문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인식한다. 그것은 “대지는 어느 생명에게나 공평하게 은총을 내”리고, “척박한 땅을 주면 끈질긴 생명력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대지의 가르침대로 노란 꽃을 피우고 씨오쟁이를 터트려 새끼들을 키워갈 일이”며, “나를 닮은 새끼들이 뿌리를 내리고 노란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릴 일이”라는 것이다. “다 디디고 일어서면 누가 나를 뽑아 시멘트 바닥에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내던져 버림받아 명줄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쇠비름’이란 이름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쇠비름처럼 모질게 살아볼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쇠비름이 대지에서 모성을 받”은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문학의 어머니는 문단”이라고 인식한다. 또한 이 수필의 중간 부분에서 문단에서 체험한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나도 한때 문학을 포기하려 한 적이 있었다. 이게 무언가. 이게 문단이라는 곳인가. 등단 초기를 넘어 첫 수필집 《축 읽는 아이》를 낼 때까지 시멘트콘크리트 아래에 깔려 있는 쇠비름이었다. 정말로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문단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러운 《축 읽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쯤 자비로운 문우의 소개로 수필 전문지로부터 청탁을 받았다. 가문 유월의 저녁에 내린 한 방울 이슬이었다.”라고 회고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이방주 작가는 이 수필의 끝부분에서 “나는 아직 미생未生이다. 그래도 쇠비름에서 배운 정석定石으로 살아볼 일이다. 누구에게든 영양이 되고 영약靈藥이 되게 살아볼 일이다.”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역량 있는 한 작가의 힘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이방주 작가가 수필 《불의 예술》에서 기술한 것처럼 도예의 “불의 예술이란, 흙으로 빚어 인간의 손길을 떠나 불에 맡겨져 운명처럼 기다려 나오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명장에 의해서 빚어진 흙이 다시 한 번 인간의 예술혼이 빚어내는 불길에 의해서 표출되는 자연을 떠난 자연”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주흘산이 버리고 간 여인의 어깨처럼 부드럽고 애잔한 산자락에는 지는 해가 뒷좌석 아내들의 흐뭇한 대화를 듣는지 마는지 이미 비취색으로 변한 하늘을 배경으로 또 하나의 불의 예술을 연출”되기 때문이다. 도예의 ‘또 하나의 불의 예술’의 힘은 자연 혹은 신의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방주 작가는 자연 친화상상력으로 자연을 관조하며 그 과정 속에서 삶의 언어를 탐색해 낸다. 그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서 불교적 상상력으로 삶의 원형까지도 추출해내는 시도를 하고 있어 주목할 수밖에 없다.

 

 

유한근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평론집 《문학의 모반과 모방》 《현대 불교문학의 이해》《한국수필과비평》《원 소스 멀티-유스, 문학 이야기》등 다수

명상언어집《별과 사막》

동화집《무지개는 내 친구》등 논문 다수

만해 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대상, 여신문학상, 동국문학상 등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

《인간과 문학》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