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된장이나 끼리쥬

느림보 이방주 2019. 3. 1. 11:16

된장이나 끼리쥬

 

이방주

 

 

저녁이는 멀 해 먹을겨?”

장이나 끼리쥬.”

그려 토장이나 끼려가꾸 짠지 찌져 느쿠서 꼬치장에 쓱쓱 비벼 먹능기 질루 낫지. 시상이 토장만한 게 머가 있겄어.”

끼니 때만 되믄 마누라넌 걱정이 끝이 읎유. 그르키 또래 토장이 읎으믄 안 되능겨. 마누라 토장 끼리넌 솜씨럴 따러올 아낙언 시상이 읎을 겨. 일단 토장 맛이 일품이니께.

우리 집 된장으로 말할 것 같으먼 일단 미주 쑤는 콩이 보통이 아니니께. 옥천 사둔이 직접 미주콩 농사를 져가꾸 손수 콩을 쒀서 미주를 깨깟하게 띠우니 워떻것슈? 사부인께서 장얼 당궈 주신다구 하는디두 굳이 미주를 가꾸와서 직접 당구는 것두 또 뜻이 있더라구유. 미주 띠워주는 사부인 어리움도 어리움이지만 돌아가신 엄니한티 전수 받은 방법이 있으니께 그대루 당궈야 식구덜 입에 맞을 거 아닝개배. 안 그류? 그 대신 꼬치장은 공기 맑고 햇기 밝은 사둔네 장꽝에서 벹얼 실컷 쪼여설랑 반짝반짝 윤기가 흘를 때꺼정 뒀다가 지대로 익으먼 가꾸오지유. 아파트 베란다서 당궜어도 엄니한티 전수 받었으니 그 맛이 워떻것슈. 아파트라 벹얼 잘 못 봐서 그런지 지맛이 들라먼 한해럴 더 뮉혀야 뎌유. 당년에 먹으믄 약간 딻따롬하걸랑유. 아무튼 내가 워낙 토장 귀신이니께 아내가 어려움얼 마다않고 해마담 식량마냥 장을 당구지유. 나야 머 고마울 뿐이쥬. 언제꺼정 먹을 수 있을런지. 죽으먼 아무개 밥숟갈 놨다구 하잖유. 밥숟갈 놀 때꺼정 먹을 수 있을규.

멀 늑쿠 끼려유? 짠지 늑쿠 끼려유, 애호박 늑쿠 끼려유. 멜치 육수는 내 놨으니께 말만 해유.”

아이 뭐 재주껏 끼려 봐. 장 끼리는 솜씨야 누가 따러 가겄어.”

그럼 씨래기나 늑쿠 끼릴께유.”

그려 여름이는 새곰새곰한 열무짐치 늑쿠 끼리먼 지맛이 나지만서두 지금이야 머 열무짐치가 있어야지. 예전이는 진잎짐치를 늑쿠 끼리먼 그 맛도 쓸 만했는디. 씨래기먼 그만이지.”

열무짐치도 읎구 진잎짐치도 읎으니 머 워트캬. 그냥 쓰래기나 늑쿠 끼릴께유. 풋꼬추나 즘 늫구.”

그려 그만해두 좋지. 꼬치장 쬐끔 늫는 것두 잊어뿌리지 말구.”

그런디 당신언 왜 토장이믄 그만유? 입맛두 참 이상시러워.”

토장 존 거 몰러서 그랴? 예전이는 화릿불에다 먹다 냉긴 장투가리를 올려 노먼 죙일 끓다가 짜그라 붙으먼 구슴하고도 짭짜롬한 그 맛이 워뗬는디 그랴.”

토장이건 꼬치장이건 지랑물이건 장에는 덕이 있능거 몰러유? 사램이 된장만큼만 덕을 지니먼 공자님보담두 더한 승인 군자가 되능규.

생각해 봐유. 된장은 말유 어떤 음식에 느두 지맛을 잃어뿌리지 않는다니께유. 아니 외려 다른 먹거리덜이 지맛을 지대로 낼 수 있게 북돋워 주맨서두 토장언 지맛은 잃어뻔지지 않으니 춘향이보담두 더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지유. 봐유. 비린 거로 찌개를 끼릴 때두 된장을 콩알만큼만 뗘 느먼 비린 맛은 읎어지구 생선에 짚은 맛을 살려내잖유. 몰렀슈? 아니 그것도 몰르맨서 워티키 부엌살림얼 했댜아.

또 있슈. 된장은 암만 오래두고 먹어도 벤하덜 안하능규. 아 왜 보은 선씨네인가 그 집에는 백년도 더 묵은 씨간장이 있다잖유. 지랑물 말유. 지랑물이 뭐유. 토장에서 나온 거 아뉴? 그래서 된장을 우리 마을에서는 토장이라구 하잖유. 한 번 마음 주믄 벤할 줄 몰르는 행심恒心이랄까. 우리네 심성도 토장마냥 그맇잖유. 토장 먹어 그린개벼.

돼지괴기 궈 먹을 때 된장을 찍어 먹어야 지맛이 나쥬. 널찍한 부루 한 장얼 손바닥에 올려놔유. 거기다가 밥 한 숟갈 놓고 돼지괴기 한 쪼각얼 척 걸쳐 놓구설랑 풋꼬추랑 생마늘로 치장얼 해유. 그르카구 노르스름한 토장얼 괴기에 발라가지구 부루쌈얼 꼭꼭 예며설랑 눈깔이 뒤집어지고 볼팅이가 며지게 우기적우기적 씹어 봐유. 돼지괴기 씹힐 때보담두 토장이 셋바닥에 묻어날 때 을마나 개운한가. 이르키 된장언 괴기 비린 맛을 씻어 준다니께유. 인간덜의 지름진 욕망얼 깨깟하게 씻쳐주니 그기 부처님 맘이지 머것슈. 불심佛心이란 말유. 무슨 괴기던지 괴기를 먹고 된장얼 먹어봐유. 입안이 개운하쥬. 부처님 마음 같은 된장이 아닝개뷰.

또 있슈. 승인만치 큰 토장의 덕 말유. 매운 꼬추 먹을 때 머 찍어 먹어유. 꼬치장 아니먼 토장이쥬. 매운디두 매운 꼬치장을 찍으먼 들 맵구 토장을 찍으먼 더 안 맵구 그렇잖유. 이거 다 토장이 꼬추의 매운 맛얼 다스려서 그렇다니께유. 된장의 선심善心이라 해두 되것쥬. 옛 승인들 말씀마냥 선을 권하는 덕업상권德業相勸이쥬. 안 그류?

일본 가니께 미소 돈가스라능게 있대유. 돈가스럴 된장국하고 먹더라구요. 왜늠덜 된장이 우리 된장얼 워티기 따러 오겄슈. 그런디 갸덜두 괴기럴 된장이랑 먹으먼 개운하다능 걸 알대유. 그런디 서양 음식인 햄버거나 피자도 콩나물된장국이랑 먹으니께 어울리던디유. 아이덜 말루다가 환상의 짝꿍이더라구요. 솔직히 지는 피자가 별룬디 된장이랑 먹으니께 그냥 먹것던디유. 밍밍한 왜식이나 지름진 양식하고도 어울리니 음식 중에 토장이 왕초유. 덕이 있단 말이쥬. 그려두 지맛은 안 잊어뿌리걸랑유. 된장은 워디꺼정이나 된장인규. 화이부동和而不同 아니것어유.

저녁 다 됐내뷰. 된장 자랑하다 보니께 온 집안에 된장 냄새네유. 된장얼 끼렸으니께 비벼 먹으먼 돼유.

저녁인디 내외간에 늙어가믄서 몸 비빌 일언 읎으니께 토장 같은 맘이나 비비지유 머. 된장마냥 단심丹心, 항심恒心, 불심佛心, 선심善心, 화심和心으로다가 말유.

 (2019. 2. 28.)




월간 《좋은수필》2019년 5월호 사투리 수필 청탁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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