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산 석천암 石泉庵 찾아가기
대야산 석천암
위치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삼송길 205-182
대한불교 조계종 제 5교구 법주사 말사
주지는 지웅 스님
답사 : 2019년 1월 1일 아내와 함께
석천암 나옹화상이 수도했다는 약사굴
석천암은 931m 대야산 줄기에 있다. 문화공간 우리에서 역사와 영화에 관심이 있는 최우정선생님이 언젠가 내게 이 절에 관하여 정보를 알려 주었다. 다만 삼송리에 있다는 것만 이야기하고 다른 정보보다 아주 특이한 절이라는 말을 해서 내게 호기심만 자극했다. 그래서 한 번 가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아내가 최근에 몸이 약해진 내게 바깥바람을 쐬어 주고자 할 때 가는 곳이 있다. 괴산으로 쌍곡계곡으로 달려서 소금강 휴게소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둘이 나누어 마신 다음 관평재(제수리재)를 넘어 송면으로 다시 사기막리로 돌아 괴산으로 들어와 괴산고 삼거리에서 청주로 달리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계절의 변화와 절경을 다만 몇 시간에 맛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정에서 송면에서 화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왕소나무로 유명한 삼송리가 있다.
삼송리로 들어가 폐교된 삼송초등학교 건물을 오른쪽에 두고 달리다 보면 농바위마을 쉼터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가면 대야산 밀재로 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찻길이 없었는데 아스콘 포장까지 되어 있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쭉 올라가면 외길이다. 이 외길이 끝나는 지점에 석천암이 있다.
전에 대야산에 빠져서 한달이면 두번 정도는 올라갔다. 아니 쉬는 날만 있으면 혼자서도 자주 갔다. 그럴 때는 경북 문경 쪽의 선유동 범바위 마을에서 용추폭포를 거쳐 밀재로 오르거나 피아골로 오르는 길도 절경이지만 나는 삼송 농바위 마을에서 밀재까지 50분을 걷고 올라가는 길을 좋아했다. 대로 거칠게 중대봉으로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석천암은 그러니까 대야산의 남서쪽 봉우리인 중대봉 아래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중대봉은 절경이지만 혼자서 오르기는 조금 위험한 곳이다.
농바위 마을 예전에 내가 차를 세워놓고 가던 공터는 그대로이다. 시멘트를 잘 발라 놓아서 차 세우기가 더 좋을 것 같았다. 대야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아직도 맑게 흐르고 있다. 이 계수는 대야산 남쪽 기슭의 맥반석 위를 오르기 때문에 농바위 마을 사람들은 전국에서도 장수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아주 좁은 마을 길로 접어 들었다. 처음 가는 길은 이런 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차가 가는 곳은 분명 주차할 곳도 있고 돌아나올 수도 있고 마주치는 차와 교행할 곳도 있게 마련이다. 단양 황정산 원통암, 계룡산 고왕암 같은 곳은 차가 가지 못하는 곳에 있다. 아마도 석천암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는 꼬불꼬불 계곡으로 들어간다. 경작지가 끝나는 무렵에 주차장이 있고 부탑이 있었다. 여기부터는 걸어야 한다는 내용의 주지 스님의 안내문이 있다.
주차장인지 공터인지 제법 넓다.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차다. 하늘이 뿌옇다. 시멘트포장도로가 가파르다. 그러나 미세먼지 나쁨이라는 예보와 달리 공기가 맑다. 앞으로 가파는 암벽에 붉은 장송이 우뚝하다. 뒤로 돌아서면 백악산이 거뭇하다. 어디를 봐도 절경 아닌 곳이 없다. 숨이 가쁜 줄을 모른다. 아내는 무거운 공양미를 건네지 않고 들고 간다. 내게 대한 배려이다. 나는 나를 늙은이로 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루를 빼앗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낭을 메고 오는 건데 그랬다고 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도 하지만 모처럼 바라보는 중대봉이 신기해서 바로 절집 지붕이 보인다.
절집 아래에 에쿠스 승용차가 보인다. 스님의 차가 고급차인가 고급스런 신도가 왔는가. 계단을 밟고 오르니 요사채 뒤에 대웅전보다 먼저 암굴이 보인다. 암굴은 그냥 작은 굴이 아니다. 커다란 바위 아래 100평도 넘을 것 같은 공간이 있다. 공간은 매우 평평하여 그 곳에 약사여래 삼존불을 모셨다. 제단이 50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옆에 아주 작은 대웅전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 먼저 참배를 해야겠기에 공양미를 들고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2칸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대웅전에 작은 부처님을 모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서를 등에 지고 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드리고 약사굴로 향했다.
약사전에 삼배를 올렸다. 절에 부처님께 절공양을 해도 크게 뭔가 기원한 적이 없다. 그냥 거룩하신 가르침을 향해 공경의 뜻만 올리는 것이 나의 참배 자세였다. 그런데 엎드려 절하면서 "올해는 정말 몸이 잘 보전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원을 했다. 이제 나도 늙고 병들어 약해진 몸이 되니 마음까지 미미해졌나 보다. 바위에는 어마어마한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약사 여래 옆에서 샘이 솟아 물이 흐르다 얼어붙었다. 이 믈이 다 얼어 붙으면 스님은 물을 어찌 쓰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바라보니 산령각이 보였다.
계단을 내려서니 남으로 백악산이 마주 보인다. 그 너머로 속리산 산줄기기 첩첩하다. 요사채 앞에 두세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옹위하고 있다. 커다란 개가 컹컹 짖는다. 개는 깔금하고 잘 생겼다. 두어번 짖더니 날보고 크게 하품을 한다. 하품하는 개도 수행자처럼 보였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더니 석천암 산사의 개는 행자가 되는 모양이다." 낯선 사람에게 경계를 치워버리고 하품을 하는 것을 보면 중대봉 중턱에서 세상 물정을 다 통달한 것처럼 보인다.
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돌아나오려니 문을 열고 스님이 나오신다. 신도가 오지 않으니 매우 반가워 한다. 차 한잔 하고 가십시오. 예 차 한잔 주십시오. 합장 인사보다 세속의 인사가 먼저 나왔다.
방은 눅눅하고 서늘하다. 스님이 가스난로에 불을 붙이니 이내 따듯해져서 땀이 났다. 우리는 쉽게 커피를 엷게 타서 마셨다. 스님의 말은 거침이 없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이 낯익다. 아 그렇다. 황정산 원통암 바위길을 오를 때 바위 위에 시멘트 강통을 들고 다니며 손으로 계단을 만들던 그 스님이다. 폭우에 쓸려나간 오솔길에 신도가 올 수 없어 아니면 신도가 오다 헛디딜 발걸음을 걱정하며 길을 내던 스님이다. 입은 걸어도 마음은 길을 내는 마음 그 자체이다. 역사를 이야기 하다보니 나랑 역사를 보는 시선이 한 방향이다. 아내를 곁에 두고 우리는 시간반 정도는 소리를 높여 토론했다. 나도 그 분이 좋고 그 분도 나를 좋아했다.
그럴 때 일어서야 한다. 좋은 감정을 지니고 일어서야 한다. 나는 불쑥 이제 일어서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돌계단을 내려서는데 함박눈이 내린다. 하늘이 온통 까만 나비들이 춤을 춘다. 온세상이 환희이다.
이제 올 곳이 한 곳 생겼다. 세상이 속 터질 때 속을 터뜨리지 말고 여기 와서 하늘을 터뜨리면 된다. 나옹화상이 참선에 들었었다는 약사굴 아래 내가 앉아 있으면 된다.
모롱를 돌아내려올 때까지 개가 담장 위에 올라가 배웅하고 있었다.
어둔 하늘이 환하게 밝아온다. 차를 세워 놓은 곳까지 걸어 내려올 때 함박눈이 은빛 꽃가루처럼 계속 쏟아진다. 눈은 솔멩이를 돌아올 때까지 내리더니 사기막에 오니 그쳤다. 己亥年 첫날 속이 탁 트인다. 올해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일주문을 대신하는 불탑
고드름이 소담한 약사굴과 대웅전
풍경과 연등
하품하며 맞는 견처사
느티나무 사이로 우리를 배웅하는 견처사
지웅 스님이 보내 주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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