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수도원 답사

느림보 이방주 2019. 4. 6. 12:01


臥牛山 修道院 답사


명칭 : 대한불교 조게종 와우산 수도원

시대 : 고대/삼국 

건립시기 : 신라시대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67

요약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와우산(臥牛山)에 있는 절.

답사일 : 2019년 4월 3일 (수요일)

함께 간 사람 :



 

내용

대한불교수도원의 본산이다. 2,000평에 달하는 사지(寺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 번성하다가 조선 초기에 이르러 폐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기와가 거의 출토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폐허지로 남아 있던 이곳에 일본사람들은 신사(神社)를 지었으며, 1953년에 중창하여 대한불교수도원이라 하였다.

당우로는 대웅전·설법전·조사당(祖師堂종각·강당·요사채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미륵불상·석탑·쌍사자석등 등이 있다. 또한, 옛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석조연화대좌(石造蓮華臺座) 4, 불두(佛頭), 균정당초문(均整唐草文) 암막새 등이 있다.

이 중 석조연화대좌는 신라 말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앙련상대석(仰蓮上臺石)3중의 연꽃장식을 배치하여 특수한 문양을 보여주고 있다.

, 현재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불상과 불두 중 높이 17의 불두는 서원(西原)지방의 불상 모습 중 백미(白眉)에 속하는 가장 아름다운 상호를 가진 것이며, 이 지역의 조각예술을 대표하는 걸작이기도 하다. 대한불교수도원에서는 근래에 특히 청소년과 여성들을 위한 교리강좌 및 법회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2017년 대한불교 조계종 말사로 등록되었다.




오늘은 수도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수도원에 지금 수양벚꽃이 한창이라는 문우의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 있는데도 그동안 2,30년은 가보지 않은 곳이라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사실 그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것은 수도원이 전에는 사직동에 있는 용화사와 함께 청주에서는 용화사로 불렸다. 그래서 사직동 용화사와 구별하기 위해서 신용화사라고 하기도 했는데 조계종에서 나와서 대한불교 수도원이라는 새로운 종단을 창건하여 조계종으로부터 독립했다. 조계종이 아니라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분명 불도 이외의 어떤 이권이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어 무수히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올라가 보지 않았다. 이제 그것이 무슨 소용 있으랴. 그런데 오늘 올라가 보니 일주문에 와우산 수도원이라는 현판과 함께 대한불교조게종 수도원이라는 알림판이 있었다. 알고보니 2017년에 다시 조계종으로 등록하여 조계종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수많은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승용차를 타고 갔다. 수도원에 주차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걱정했으나 차를 여러대 주차할 만큼 마당이 널찍하다. 주차장 바로 앞에 설법전이라는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현대식 건물이다. 예전에는 보지 못한 건물이어서 돌아보았지만 문화재적이거나 예술적 가치는 없는 실용적인 건물이었다.

왼쪽 산기슭에 수양벚꽃이 휘늘어져 피어 있었다. 수양벚꽃은 벚꽃이 많은 곳에 간혹 한 그루식 섞여 있어서 군계일학처럼 눈길을 끄는 벚꽃나무이다. 그런데 여기는 삼성각에서부터 남향한 산기슭이 온통 다 수양벚꽃이 흐드러졌다. 미륵전 바로 뒤의 기슭에 사진작가 한 분이 수양벚꽃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서 미륵불 앞으로 갔다. 미륵부처님 앞에는 장독이 여럿 줄지어 있어 아침 햇살에 윤기가 반짝반짝 나고 있었다. 미륵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미륵부처님은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다. 미래에 오셔서 미래의 모든 사람에게 법을 전하고 그들의 홍복을 대신 빌어주실 부처님이신 것이다. 그래서 더 공손히 삼배를 올렸다.

미륵부처님 앞에서 사진 찍는 작가를 바라보았다. 사진에 열중하면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누구든 자기 일에 열중하면 주변을 돌아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장독과 미륵부처님을 몇 컷 찍고 바로 요사채를 지나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대웅전에 오르는 계단에 흔히 포대화상을 모시게 마련인데 포대 화상은 다른 곳에 모셨다. 대웅전 앞에 철봉을 세워 대웅전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인부들인지 신도들인지 남자 서너명이 그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초파일 연등 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웅전에 들어갔다. 석가모니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대웅전에는 예상대로 석가모니부처님을 주존불로하고 협시불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보살님들은 모두 탱화로 모셨다.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배를 올리고 이곳 저곳를 살피고 정말 처음으로 부처님을 카메라에 담아 모셨다.


삼성각 앞에서 연등을 달 시설을 작업하고 있어 가보지 못하고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았다. 혹시 심우도가 있을까 해서인데 심우도는 없었다. 남쪽 산 기슭에는 산목련이 피고 생강나무 꽃도 노랗게 피어났다. 남쪽 산기슭을 따라서 내려오니 영진각이 있었다. 안애 들어갈 수는 없는데 그 작은 전각에 심우도가 있다. 나는 심우도를 다 카메라에 담았다. 주변에 꽃이 만발하여 진리가 존재하는 곳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듯했다. 심우도를 자세히 보고 그 의미를 새겼다.


다시 미륵부처님 앞에 갔다. 미륵전에서 뭘 빌었는지 모르겠다. 불가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일은 미륵부처님의 허상이다. 미륵부처님을 존대하고 섬기는 것은 좋은데 어떤 스님이든 "내가 미륵이다"하거나 "내가 곧 미륵의 현신이다"라고 하면 그건 믿지 말아야 한다. 미래에 나타난다니까 스스로 그 미래에 나타날 미륵이 바로 자신이라면서 혹세무민한 허랑한 불자가 얼마나 많았는가? 아마도 이 수도원이라는 도량이 속세처럼 때로 세력 다툼의 싸움판이 되었던 것은 그런 헛된 미륵사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영진각에서 참을 보듯이 미륵부처님 앞에서 바른 미래불을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이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웅전 앞에서 사진작가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꽃 사진 접사하는 방법을 배웠다. 금방 실습까지 해서 사진이 그럴듯하게 찍혔으나 바로 잊어버렸다. 참을 보다가 놓친 거산큼이나 허랑하다. 이제 이곳도 이렇게 발걸음을 시작했으니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주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뒤돌아보니 오히려 예전의 화려함을 잃은 듯 퇴색되어서 마음이 아팠다.



와우산 수도원 일주문

대웅전

미륵불전 부근의 수양벚꽃


대웅전 내부

석가모니 부처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님


진영각


심우도 : 도를 찾아 떠남

   

수도원 전경

삼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