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청주정하동마애비로자나불좌상(淸州井下里磨崖毘盧舍那佛坐像) 답사

느림보 이방주 2017. 6. 25. 23:06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淸州 井下洞 磨崖毘盧舍那佛坐像) 답사



명칭 :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淸州 井下洞 磨崖毘盧舍那佛坐像)

소재지 :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하동 산9-1

문화재 지정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3(1982.12.17. )

분류 : 불상

시대 : 고려 초기

답사일 : 2017625

   

불상 높이 323, 대좌 높이 45.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3. 정하동 도로변에 인접한 폐사지(廢寺址)의 높이 3.23m, 너비 2.8m에 달하는 바위의 남면(南面)에 음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엄격한 정면관(正面觀 : 앞에서 바라본 모습)에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의 얼굴은 단정하면서도 평판적이다. 살이 오른 양 뺨과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서는 생기와 양감이 느껴진다. 두부(頭部)에는 관()을 쓰고 있어 보살형의 비로자나불이라고 하겠다. 신라 말기에 출현하는 여래형 비로자나불상과는 거리가 있어 주목된다. 반타원형의 눈은 마멸이 심하여 불분명한데 눈초리가 살짝 비켜 올라갔다. 깊숙이 파 각선(刻線)이 선명한 양 눈썹은 수평에 가까운 완만한 호를 그리고 있다.

다소 좁아 답답한 느낌을 주는 이마에는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의 흔적이 남아 있다. 미간에서 곧바로 뻗어 내린 코는 주저앉은 듯한 부드러운 윤곽을 보여 주고 있다. 작은 입술은 앞으로 빼어 물고 있다. 막대 같은 기름한 귀가 양쪽으로 늘어졌는데 사실성이 결여된 약식화된 표현을 보여 준다.

머리의 뒤로는 원형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이 있다. 테두리를 굵은 음각선으로 파내어 경계를 지었을 뿐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을 가하지 않은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불신(佛身)은 상체가 다소 연장되어 늘씬한 실루엣을 이루는데 견고한 어깨와 넓은 무릎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착의 형식은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다. 양어깨에서 대칭으로 접혀진 서너 줄의 굵은 옷주름이 소맷자락으로 내려가면서 간격이 조밀한 평행 사선으로 넓게 펼쳐지고 있다. 무릎 위 복부로는 두 겹의 둥근 U자형 주름이 늘어지고 있다. 둔중한 음각의 의문(衣文 : 옷자락 무늬)이 어지럽게 양 무릎을 감싸 덮고 있다.

양손은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둥글게 감싼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있다. 소매 속에서 나와 몸 앞으로 연결되고 있는 손목 부위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조각 수법에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빠진 형식화된 표현을 보여 준다.

불상 하단의 연화대좌는 일정한 굵기로 선각된 단판(單瓣 : 홑잎)의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암반의 상단에는 네모난 홈이 파여 있어 원래는 목조 가구의 전실(前室)과 같은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간략화된 조각 수법과 도상 표현에서 미루어 볼 때 신라 말기에 출현하는 일련의 비로자나불좌상들과 구분되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낭비성 답사를 하고 돌아오는 중에 정하동에 있는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을 보러 갔다. 법신불이며 화엄종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마애불로 모시는 것은 아주 드문 예이다. 정하동에 마애불이 있다는 것은 그냥 스쳐 알고 있었고 그 앞으로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잠깐 내려 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자료검색을 하다가 정하동 마애불이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은 최근에 알고 관심을 더 갖게 되었다.

청주시에서는 정북동 토성과 함께 근처의 무심천을 개발하여 시민의 휴식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정하동마애비로자나불 좌상은 숨어 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시민의 바로 곁에 있는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북이면 부연리에서 돌아오면서 집에 가지 않고 아파트를 돌아 새동네 사거리로 갔다. 새동네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정북토성쪽으로 가면 바로 산줄기 끄트머리에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이 길에서도 보인다. 두리번거리며 공터를 찾았다. 길갓집을 하나 건너니 중장비를 세워놓는 주차공간이 있었다.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바로 마애불상 앞으로 갔다.


마애불은 지나다니며 보는 것보다 비교적 주변 정리를 잘 해놓았다. 그러나 다른 불상들이 수난을 당하듯이 이 불상도 온전하지는 않았다. 코와 눈이 크게 훼손되었다. 속설에 의하면 부처님의 코를 갈아다가 물에 타서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자손을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대개의 마매불은 산의 일부인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비해 정하동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커다란 돌에 새겨 세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산과 바위가 떨어져 있다. 그러면서 마치 마애불을 보호하듯 바로 뒤에 바위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혹시 배후에 있는 바위벽에 무슨 그림이나 글씨 같은 흔적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발견하지는 못했다. 주변에 사찰이 있었는지도 안내판에서 설명하지 않았다. 혹시 바위 벽을 뒷 배경으로 하고 마애불까지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구조물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마애불이라기보다 그냥 불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살펴 보았다. 불상은 서남 쪽을 향하고 있었다. 산에서부터 좀 떨어져 나온 것은 본래 산에 붙어 있었는데 산이 허물어진 것인지 애초부터 그렇게 떨어져 있는 돌에 부조한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불사의 높이가 323cm라고 한다. 대좌 높이 45cm, 폭은 280cm라고 한다. 상당히 큰 편이다. 불상은 좌상인데 연꽃을 엎어 놓은 복련으로 되어 있었다. 대개 좌상은 연대이고 입상은 복련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약간 다르다.

불상은 분명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었다. 오른손이 왼손의 검지를 감싸 쥐고 있었다. 지권인은 오른손으로 왼손의 검지를 감싸쥐고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하나로 만들고 있다. 왼손은 중생을 의미하는 손이고 오른손은 부처님을 의미하는 손이다. 왼손은 사바세계를 오른손은 불법의 세계를 의미한다. 결국 중생과 부처님이 하나이고 속계와 불계가 하나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곧 진리이고 법이다. 마애불 중에 비로사나불은 매우 드물다. 아마도 정하동 근처에 화엄종의 상당히 큰 사찰이 있었으며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셨었나 보다. 근처를 돌아보아도 사찰 터로 보이는 대지는 찾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청주시의 근교로 이미 개발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부처님은 상호는 몸에 비해 매우 큰 편이었다. 게다가 몸에 비해 얼굴의 윤곽을 더 뚜렷하게 강조하였다. 눈이 크고 코도 크다. 왼쪽 눈과  코가 많이 훼손되었다. 이마에 백호 자리가 매우 깊은 것으로 보아 수정 같은 매우 큰 보석이 박혀 있었던 것 같다. 얼굴은 퉁퉁한 사각형이다. 볼까지 오동통하게 솟아올라 귀여운 열여덟 처녀애 같은 느낌이다. 귀가 거의 얼굴의 길이만큼 크다. 몸은 두툼한 어깨와 무릎이 넉넉하여 균형을 이룬다. 가슴과 배에 비해 어깨가 강조되었고 어깨로부터 내려오는 옷주름선이 음각되어 있어 선명하다.  옷을 입은 모습은 장삼을 어깨에 걸쳐 입는 통견형식이다. 어깨에 걸친 옷자락이 무릎을 덥고 있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서산 마애삼존불상이 인간적인 모습이라면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실제 사람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이상적 인간상을 그린 신격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눈 언저리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애써 찾아야 한다. 미소를 억지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도 보는 이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정하동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볼수록 진귀한 불교예술품이다. 주변에 큰 길이 생기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생기면 더욱 소중하게 보호할 정책적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2017.6.25.)